영적 모범(46)                                                                            
어두운 세상 속의 증거 사무엘상 29:1-11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세상을 떠나서는 생존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이 어둡고 썩어가는 세상 속에서 어떠한 증거를 남기느냐에 따라 우리의 일생을 좌우하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은 이방 땅의 불신 세상 속에서도 믿음의 사람으로서 결코 세속화되지 않고 어떠한 증거를 나누었는가를 보면서요. 우리도 남은 여생 어두운 세상 속에서 어떠한 증거를 나누며 살 것인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자신에 대해서 허물이 없음을 증거해야 함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이르되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하니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에게 이르되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본문 3절)
  당시 블레셋은 가사(Gaza), 아스글론(Ashkelon), 아스돗(Ashdod), 가드(Gath), 에글론(Ekron)이라는 다섯 개의 도시국가로 이루어져 있었고 각 도시국가마다 왕이 있었습니다. 블레셋 연합군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을 쳤는데 이때 다윗은 가드의 아기스 왕의 경호대장(삼상 28:2)으로 아기스 왕과 함께 나간 거예요. 그런데 블레셋 군의 방백 즉 지휘관(commander)들이 아기스 왕에게 다윗과 부하들을 향해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고 물으니깐 아기스가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고 증언을 합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허물 없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자신의 허물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경건한 신앙의 사람인가를 증거해 보인 거예요

(예화) “우리 모두 다 때가 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말이나 행동의 많은 허물을 보이면서 살아가고 또한 바로 그 허물 때문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고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허물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우리 자신에 대해서 끊임없이 말씀과 기도의 경건의 훈련을 쌓아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우리의 허물을 줄이는 경건한 삶의 증거를 보일 수가 있습니다. 지난 날 은혜 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우리의 영적 건강을 위해서도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갖고 영적인 양식과 영적인 운동과 영적인 휴식의 경건의 훈련을 쌓아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디모데전서 4:7-8에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강조한 거예요.

(예화) 팝페라 가수 최성봉의 잘못된 삶
(예화) 어느 집사님의 ‘십팔 빵구’ 간증


우리가 말씀과 기도의 경건훈련을 바로 받게 될 때 자연스럽게 경건의 삶을 살아가게 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삶 가운데 허물이 점점 사라지고요.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본받아 성화(sanctification)의 삶을 살아가게 되어서요. 자신의 삶을 통해 허물이 없음을 스스로 증거함으로 인해서요. 일생토록 사랑받고 존경받는 삶을 살아가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이웃에 대해서도 악이 없음을 증거해야 함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진중에 출입하는 것이 내 생각에는 좋으나 수령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이제 너는 평안히 돌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에게 거슬러 보이게 하지말라 하니라”(본문 6-7절)
  아기스 왕의 다윗에 대한 증거에 블레셋 군의 방백 즉 지휘관들이 반발하며 분노하게 되고 그가 사울 왕과 한 편이 되어 자기들을 역공격을 할 수 있다고 의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아기스 왕이 다윗을 불러서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진중에 출입하는 것이 내 생각에는 좋으나 수령 즉 지도자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이제 너는 평안히 돌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지도자들에게 거슬러 보이게 하지 말라”고 권면을 해요. 우리가 여기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다윗이 주위 사람들에게 악을 행한 적이 없음을 아기스 왕이 증거한 거예요.
  우리도 혼자 허물이 없는 경건의 삶을 살아야 하지만요.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주위 이웃에게 악이 없음도 증거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탄이 역사해서 악이 앞서면 주위 사람들과의 모든 관계를 다 무너뜨리고 말고 결국 사탄의 악의 도구로 쓰임 받고 마는 거예요. 우리가 평생 목사, 장로, 권사, 집사를 해도 그 신앙생활이 다 무너지고 마는 거예요. 이때 다른 길이 없어요. 우리의 자아의 감정이 앞서고 혈기에 사로잡힐 때 그 순간에 두 마디만 외치라니깐요. “주여! 주여!”하고 부르짖을 때 우리는 그때 바로 주님을 바라보게 되고주님의 치유와 회복을 분명히 체험하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날마다 순간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주님으로부터 치유받을 때에 그때 비로소 우리는 이웃에 대해서 악이 없이 복음의 통로로 온전히 쓰임 받을 수 있는 거예요.

(예화) ‘국민 아버지’ 배우 송재호 장로님의 별세


여러분, 우리의 일생을 지금 다 평가할 수가 없지만 일생을 다 산 후에 그가 얼마나 이웃에게 영적인 감화를 끼치는 삶을 살았는가는 장례식 때 결정이 나요. 첫째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슬퍼하는가를 보면 알고요. 둘째는 주의 종이 얼마나 눈물로 설교하며 애도하는가를 보면 알고요. 셋째는 그가 떠나간 후에도 교인들이나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그분을 못 잊는가를 보면 알 수 있고요. 마지막으로 주의 종들이 못 잊어하고 어디 가서나 두고 두고 말씀 가운데 간증할 수 있을 때 그가 얼마나 이웃들에게 감동적인 생애를 살았는가를 알 수가 있어요.
 (예화) 제106회 총회 주제와 치유하는교회 사역들


3. 하나님 앞에서도 선함을 증거해야 함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전령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본문 9절)
  블레셋의 아기스 왕이 다윗에게 시글락으로 평안히 돌아가서 블레셋 지휘관들의 뜻을 거역하지 말라고 부탁을 하니깐요. 다윗은 아기스 왕의 부탁까지 받아가면서 사울 왕과의 전쟁을 하는 난처한 입장에 처하는 어려움을 피할 수 있었던 거예요. 또한 그때 시글락에 있던 다윗과 부하들의 가족들이 아말렉의 침략을 받아 납치된 상태였으므로 그들을 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까지 된 거예요(삼상 30:1-20).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요 계획이셨던 거예요.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신실함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요. 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선함을 인정받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에요.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점점 다가오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지난 날 존 캘빈(John Calvin)을 비롯한 개혁자들의 신앙이 ‘코람데오(Coram Deo, In the Presence of God)’ 즉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神前神仰, 신전신앙)’이었던 거예요.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으로 살아갈 때 우리가 죽은 후 뿐만 아니라요.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에도 선악간에 다 심판을 받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갈라디아서 6:7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분명히 증거하지 않습니까?

(예화)「깨어진 그릇」저자 김태훈 선교사 이야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해도 우리의 여생이 자신에 대해서 허물이 없음을 증거하고 이웃에 대해서도 악이 없음을 증거하고 하나님 앞에서도 선함을 증거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언젠가는 주위의 오해도, 비난도, 험담도 다 풀려지고요.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귀하게 쓰임 받으면서요. 어두운 세상 가운데서 이보다 더 의미있고 보람되고 복된 인생이 없는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