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모범(49)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이가
사무엘하 2:1-7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해답을 찾기를 원해요. 그런데 이 해답을 찾지 못하면 계속적인 실패와 방황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진정으로 주님 안에서 의미있고 보람되고 복되게 살 수 있을 것인가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다윗을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회복해야 함

먼저 본문 1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사울 왕의 일가가 길보아 전쟁에서 참패를 당하고요. 다 죽은 후에 다윗은 더 이상 이방 블레셋 땅인 시글락에 머물 이유가 없었어요. 그러나 그는 다 자신이 판단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요. 장래의 일을 먼저 하나님께 여쭈어 봐요. “주여, 제가 유다의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그러자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올라가라”고 하세요. 그러니까 다윗이 또 여호와께 여쭈어 봐요. “어디로 가리이까?” 그때 여호와께서 “헤브론으로 갈지니라”고 대답하세요. 그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묻힌 영적인 고향과 같은 바로 그 헤브론으로 돌아가라고 하세요. 그가 영적인 고향으로 돌아가 남은 여생 다시 새롭게 일어설 것을 명령하신 거예요.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스스로 다 판단하고 할 수 있는 일조차도 철저히 하나님을 인정하고요.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자 했던 믿음을 배울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것은 이번만이 아니라요. 다윗의 일생을 통해서 계속 되풀이 되었던 신앙의 삶이었어요(삼상 22:10, 30:7-8). 우리의 신앙생활은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의 영혼이 살아나면서요. 주님과의 영적 교제가 시작되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서 쉬지 말고 하라는 것은 딱 한 가지에요(살전 5:17). 기도에요.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고요. 기도를 드리는 영적인 교제가 멈추면요. 그때부터 그 사람은 영적으로 잠들고요. 병들고요. 죽어가고 마는 거예요. 그런데 많은 교인들이나 주의 종들까지도 이 영적인 교제를 소홀히 하다가요.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풍성한 은혜와 넘치는 축복과 행복의 감격을 다 놓쳐버리며 살아가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날마다 체험하면서요. 넘치는 축복을 누리면서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행복하게 쓰임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날마다 순간마다 끊임없이 하나님께 매어 달려서 기도하고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서요.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충만하게 이어가고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는 사람들이에요. 그리하여 그의 여생 뿐만 아니라 그의 자손들까지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복되게 쓰임 받는 거예요.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은혜와 축복과 행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왜 소홀히 하고요? 그토록 혼자의 힘으로 살아볼려고 애쓰고 수고하며 힘들게 살아가느냐는 거예요. 결국 인생의 한계를 느끼고요. 지치고 쓰러져서요. 그 인생이 다 무너지고 마는 거예요. 그런데도 말세의 마지막 때가 되어서 과거에 비해 기도의 무릎이 흐트러지고요. 기도의 시간이 무더져가고요. 기도의 기적이 다 사라지고 있어요. 그러니 평생 신앙생활을 해도 얼마나 불행하고 불쌍한 인생이냐는 거예요? 나중에 신앙생활이 힘들어졌다고 불평하지 마시고요. 이제라도 주님과의 말씀과 기도의 영적인 교제를 속히 회복해야 해요. 그래서 누가복음 10:41-42에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예수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신 거예요. 우리도 언니 마르다처럼 많은 일에 빠져서요. 염려하고 근심하고요. 분노하고 불평할 때가 얼마나 많아요? 그러나 동생 마리아처럼 단 한 가지 일 즉 주님과의 말씀과 기도의 교제를 하는 이 좋은 것을 택하면요. 이것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아니하고요. 영원히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 행복 속에 살아가게 될 것을 분명히 약속하세요.
<예화: 회개와 회복을 위한 한국교회 기도연대 세미나 및 기도연대를 통해 기도하는 치유하는 교회>


그러므로 우리가 코로나19의 이 극심한 위기 속에서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만병의 치료자가 되시고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며 모든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새롭게 회복하여 매어 달리는 길밖에 없어요. 그리할 때 우리의 인생의 모든 문제와 모든 복이 하나님으로부터 임함으로 인해 거기서부터 우리의 인생의 앞길이 복되게 열려질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온 가족을 영적으로 이끌어야 함

계속해서 본문 2-3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다윗이 그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을 데리고 그리로 올라갈 때에 또 자기와 함께 한 추종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다윗   이 다 데리고 올라가서 헤브론 각 성읍에 살게 하니라” 다윗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두 아내인 아히노암(삼상 25:43)과 아비가일(삼상 25:3)을 데리고 헤브론으로 이주를 하게 돼요. 그 뿐만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했던 600명의 추종자들(삼상 27:2)과 2,000-3,000명에 이르는 그들의 가족들까지 다 헤브론으로 데리고 가서요.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탈취한 가축들까지 있어서 한 곳에 다 거주하지 못하니깐요. 그곳의 성읍들에 다 흩어져 살게 해요. 다윗은 가족들을 영적으로 잘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요. 그와 뜻을 함께 했던 영적인 가족들까지도 잘 이끌었던 거예요. 옛말에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즉 “가정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이루어 진다”라는 말이 있지 않아요? 우리의 가정이 행복해야 모든 삶도 축복된 거예요. 그래서 사탄은 우리의 가정부터 허물려고 달려들어요.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 10:36)고 분명히 경고하시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우리가 이 가정의 시험에 빠져서요. 영적 가장으로써 신앙의 모범이 되지 못하니깐요. 우리의 가정부터 영적으로 잘 이끌지 못해서요. 남편이나 아내로부터 사랑도 못 받고요. 자식들로부터도 존경도 못 받고 살다가요. 노년이 불쌍해진 사람들이 이 땅 위에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예화: 박강민 목사 2살 된 딸의 아빠 홀릭 이야기>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노년을 대비해야 해요. 그래서 저는 지금부터 잘 할려고 해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안 쫓겨나고 잘 붙어살잖아요? 여러분,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신앙은 삶인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가정에서부터 삶의 모범이 안 되고요. 감동이 안 되고요. 열매를 못 맺으면요. 아무리 자신이 예수를 잘 믿는다고 큰소리를 쳐도 그것은 죽은 신앙인 거예요. 그리하여 우리의 가족들에게도 아무런 영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디모데전서 5:8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 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분명히 경고하지 않아요? 우리는 이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받아야 하는 거예요.
<예화: 김의식 위임목사님의 할아버님과 형님 구원을 위한 기도와 섬김>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이 영어성경에 보면 “you and your family will be saved
 (너와 네 가족이 구원을 받으리라)”가 아니라요. “you and your household will be saved (너와 네 가속 즉 가족과 종과 나그네까지도 구원을 받으리라)”는 거예요. 초대교회 성도들이 얼마나 영적인 삶의 영향력을 미쳤는가를 보여주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구원하고요. 치유하고요. 양육하여 주님의 제자를 삼고요. 영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기도의 불부터 붙여야 하고요. 사랑으로 섬기면서요.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요. 그들의 삶이 변화될 때까지 끝까지 인내하면서요. 영적으로 이끌어 나가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모든 영적인 섬김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오늘날 많은 가정들이 갈등과 불화를 겪는 근본적인 원인은 성경을 떠나 세속적 가치관에 흔들리기 때문이에요.
<예화: 안드레아스 쾨스텐버거(Andreas Köstenberger) 데이비드 존스(David Jones) 저서 「성경의 눈으로 본 결혼과 가정(God, Marriage, and Family)」 >
<예화: 고 김경옥권사님의 한 알의 밀알과 같은 헌신의 이야기>

여러분, 우리의 가족들이 아무리 강퍅하고 완악해도요. 성경에 속한 영적인 가족과 세상에 속한 육적인 가족이 영적 싸움을 해 나갈 때에 어느 쪽이 이긴다고요?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아니라요. 늘 강조하지만 끝까지 인내하고 버티는 가족이 이기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끝까지 인내하며 온 가족을 영적으로 이끌어갈 때 온 가정의 행복은 말할 것도 없고요. 온 가족의 인생이 주님 안에서 기필코 복되고 형통하게 열려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세상 사람들에게 영적인 삶을 보여야 함

마지막으로 본문 4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더라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을 장사한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니이다 하매” 다윗의 일행이 헤브론에 이르게 되니깐요. 지난 날 다윗이 20살 그 젊은 나이에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물리치고요. 사울 왕의 핍박 속에 10년에 이르는 피난생활을 하고요. 그래도 끝까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용서하고 결코 해하지 않고요. 신앙으로 인내하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것에 대해서요. 너무도 많이 듣고 잘 알고 있던 유다 사람들이 다윗을 사울 왕에 이어서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아야 한다고 나선 거예요. 그래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는데요. 사무엘 선지자가 베들레헴에서 다윗을 처음 만났을 때 그를 왕으로 선택하고 기름 부었던 때(삼상 16:13)로부터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서요. 30세에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으로 두 번째 기름 부음을 받고요. 다시 7년 후 헤브론에서 전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게 됨으로써(삼상 5:3) 세 번째 기름 부음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데요. 더욱 더 감동적인 것은 다윗은 그의 원수였던 사울 왕의 장례를 잘 치러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삼상 31:11-13)까지 축복하고 포상을 할 정도로 사랑의 마음이 깊고 넓어서요. 다윗은 주위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삶을 살았던 거예요. 그래서 그의 후손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는 최고의 영광스러운 축복을 누리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요.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가장 사랑받고 존경받는 왕이 되었고요. 이스라엘의 국기에까지 다윗의 별이 들어가 있지 않아요? 우리도 개인의 영성생활도 잘 하고요. 가정의 영적 생활도 잘 이끌어가야 하지만요. 세상에서 어떻게 영적인 삶을 보여주느냐 하는 것은 마지막으로 중요한 거예요. 많은 때 우리가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 해도요.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당하면요.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손가락질을 당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했다는 사람들이 다투고 싸우는 데 있어요.
<예화: 지하철안에서 젊은이들의 싸움을 보고 어르신들의 훈개>


여러분, 교회는 싸우는 곳이 아니에요. 세상에서 싸우던 분들도 교회에 나오면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고요.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하고요. 화해하고요. 일생토록 사랑으로 섬기며 살아가는 거예요. 그런데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불만을 갖고요. 불평을 하고요. 시비를 걸고요. 싸우도록 충동질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목사, 장로, 권사, 집사들은 사탄에게 다 속아 넘어가서요. 뭐든지 못 마땅해 하고요. 큰 소리 치고요. 싸우는 거예요. 이들은 이미 사탄의 시험에 다 넘어간 사람들이에요. 그러니 이처럼 이 땅에서 지옥처럼 그렇게 시비 걸고 싸우는 사람들이 목사, 장로, 권사, 집사가 되었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갈 줄 아세요? 절대 못 가요! (죽어 보세요! 내 말이 맞는가 틀린가 그때 다들 확실히 알게 될 거예요!) 왜냐하면 마태복음 7:21-23에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분명히 경고하시지 않아요?
<예화: 남선교회 전국연합회에서 설교>
<예화: 기독교인들이 영적인 삶을 보이지 못하여 교회가 비난받는 모습>


그러므로 이제라도 죽기 전에 육적인 삶을 다 회개하고요. 돌이켜야 해요. 그래야 우리가 남은여생을 영적으로 바로 살고요. 복되게 살고요. 우리 자손들까지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귀하게 쓰임 받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후서 2:15-16에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고 강조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남은여생이라도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의 영적인 삶을 보여주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으로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게 되고요. 주위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고요.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칭찬 듣고 존경 받는 삶을 일생토록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박강민목사의 병 나음과 목회자의 밑거름이 되었던 부모님 기도와 헌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은 금방 지나가요. 얼마 안 남았어요. 주의 종이 이렇게 간구하며 호소할 때 돌이켜야 해요. 그러므로 남은여생이라도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회복해야 하고요. 온 가족을 영적으로 이끌어가고요. 세상 사람들에게 영적인 삶을 보여주어야 해요. 그리할 때 우리의 일생이 진정으로 주님 안에서 의미있고 복되고 귀하게 쓰임 받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