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모범(50)

우리가 왜 실패하는가
사무엘하 4:1-12


우리 인생은 모두 다 성공을 지향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축복을 내려주시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복되게 살아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실패를 거듭할 때가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우리의 가장 큰 불행은 그러한 실패의 원인을 깨닫지 못함으로 인해서 평생을 불행과 고통 속에 살아가는 거예요.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사울 왕의 뒤를 이은 이스보셋이 몰락해 가는가를 보면서요. 우리가 왜 실패하는가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살아가야 함

먼저 본문 6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가 밀을 가지러 온 체하고 집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의 배를   찌르고 도망하였더라” 아브넬은 이스라엘의 장군으로서 사울 왕과 그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 이스보셋 왕을 섬겼어요. 그리하여 아브넬은 이스라엘의 중심세력이 되었고 이스보셋 왕도 그가 왕으로 옹립했는데요. 이 아브넬이 다윗에 대항해 기브온 전투를 치렀으나 크게 패하고요. 사울 왕의 첩이었던 리스바를 범하는 사건이 일어나서요. 결국에는 이스보넷 왕을 배반하고 헤브론의 다윗 왕에게로 가고 말아요. 그런데 이 아브넬이 헤브론에서 다윗의 부하 요압 장군에게 암살을 당하게 되니깐요. 이스보셋 왕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충격을 받고요. 손의 맥이 풀리고요. 온 이스라엘도 놀라게 돼요. 그런데 그토록 믿었던 군지휘관인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가 집안의 침상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이스보셋 왕의 집에 군량 밀을 가지러 온 체하고 들어가서요. 이스보셋 왕의 배를 찌르고 도망간 거예요. 이스보셋 왕은 그동안 착하고 충성된 종들과 함께 했던 것이 아니라요. 그토록 믿었던 악하고 불의한 부하들로 인해서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만 거예요. 우리의 일생도 실패하여 불행과 고통 가운데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요. 그 주위에 결코 착하고 충성된 종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요. 악하고 불의한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것을 발견하게 돼요. 그래서 그러한 악하고 불의한 사람이 우리의 가족이나 이웃이나 교인 가운데 있으면요. 점점 그런 사람들에게 물들고요. 신앙이 퇴색 되어서요. 결국 삶이 추락하고 마는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후서 6:14-16, 16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 분명히 명령하시지 않아요? 악하고 불의한 자들과 함께 하게 되면요. 점점 사귀고요. 조화되고요. 상관하고요. 일치가 되고 말아요. 그래서 악하고 불의한 자들의 육신적이고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신앙에 우리까지도 다 무너지고 마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늘 우리 곁에서 한결같이 변함이 없이요. 영적인 모범이 되고요. 감동을 주고요. 변화를 가져다주는 착하고 충성된 사람들을 가까이 해야 해요. 그래서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이나 이웃이나 교인들 가운데 바로 이러한 착하고 충성된 사람들을 가까이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몰라요?
<예화: 김수영집사님 발인예배 때 읽은 감동적인 엄마를 향한 사랑의 편지>


이제는 우리가 먼저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살아가야 해요. 그리할 때 우리 자신부터 더 이상 인생의 실패를 거듭하지 않고요. 우리의 여생도 복되게 살아가고 하늘의 상을 누리게 될 뿐만 아니라요. 자손들에 이르기까지 이 믿음의 복을 계속해서 누리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영적 분별력을 잃지 말아야 함

계속해서 본문 8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 왕에게 이스보셋의 머리를 드리며 아뢰되 왕의 생명을 해하려 하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 주 되신 왕의 원수를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 갚으셨나이다 하니” 이렇게 이스보셋 왕의 배를 찔러 죽인 레갑과 바아나는 이스보셋 왕의 머리를 베어 들고 마하나임에서 아라바를 거쳐 다윗이 머물던 유다 지파의 수도였던 헤브론에 이르게 된 거예요. 그리고는 다윗에게 “왕의 생명을 해하려 하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 주 되신 왕의 원수를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 갚으셨나이다”(:8) 하고 말해요.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쉽게 속아 넘어가기가 쉬운 말인데요.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은 사실이지만요. 이스보셋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 기록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들은 이스보셋 왕을 죽인 것이 마치 여호와께서 다윗의 원수를 갚으셨다고 하고 있는 거예요. 그것도 다윗을 ‘우리 주’라고 부르면서요. 다윗에게 잘 보이기 위한 온갖 과장과 아첨의 발언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자 다윗은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한다고 하면서 최고의 대상으로 맹세를 하면서요(창 22:16, 마 5:34-36). 아말렉 사람(1:12-16)이 사울 왕의 죽음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줄로 생각하고 거짓으로 사울 왕을 죽였다고 전했다가 그가 도리어 죽임을 당했던 것처럼이요. 이스보셋 왕의 목까지 베어온 그들이 영적 분별력을 갖지 못해서 큰 착각을 했던 거예요. 오늘날에도 우리가 영적 분별력을 갖지 못함으로 인해서요. 인생이 실패하고 불행과 고통 가운데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아요?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사람을 만나든지요. 무슨 일을 하든지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고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고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요. 하나님의 뜻을 영적으로 잘 분별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로마서 12:2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분명히 증거하지 않아요? 우리가 십자가의 복음 이외에 이 세상 유행 풍토나 가치관이나 이념을 결단코 따라가선 안돼요. 오히려 우리 자신부터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새롭게 변화를 받아서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야 하는 거예요. 그리할 때 우리의 삶 가운데에는 더 이상의 인생이 실패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 행복의 감격이 자연스럽게 임하게 되는 거예요.
<예화: 김명환 전도사님의 「영·혼·육의 전인적인 치유일기」 목사님들의 이름을 딴 삼행시>


우리가 결코 육신적이고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신앙을 다 벗어버리고요. 날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새로워지고 충만해지면요.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면서요. 영적인 분별력을 잃지 않을 때 어떠한 인생의 실패의 위기도 벗어나서요. 날마다 승리하며 천국의 축복과 행복의 감격 속에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살리는 신앙으로 나아가야 함

마지막으로 본문 11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하물며 악인이 의인을 그의 집 침상 위에서 죽인 것이겠느냐 그런즉 내가 악인의 피 흘린 죄를 너희에게 갚아서 너희를 이 땅에서 없이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다윗은 이스보셋 왕을 의인이라고 하고 레갑과 바아나 군지휘관을 악인이라고 해요. 이스보셋 왕은 약하기는(weak) 했지만 악하지는(wicked) 않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두 지휘관은 그들의 이익과 명예를 위해 악인이 의인을 그의 집 침상에서 죽였으니 다윗이 악인의 피 흘린 죄를 그들에게 갚아서요. 그들을 이 땅에 없이하지 아니하겠느냐고 하면서요. 부하들에게 명령해서요. 고대 팔레스타인의 악인에 대한 중벌로 흔히 행했던 것처럼 그들을 죽이고요. 손과 발을 베어 헤브론 못가에 매달고요. 이스보셋의 머리는 가져다가요. 헤브론의 그의 장군 아브넬의 무덤에 장례를 치루도록 해요. 결국 남을 해하고 죽인 자들의 종말이 비참하게 끝이 나고 만 거예요. 우리도 믿음의 사람이라면 결코 남을 해하고요. 앞길을 막고요. 죽이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것은 다 사탄이 행하는 수법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성령의 사람은 어떠한 죄인이라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고 명령하셨듯이요. 불쌍히 여기고요. 용서하고요. 사랑하면서 살려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후서 3:6에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 분명히 증거하지 않아요? 지난 날 구약시대의 율법은 우리의 죄를 지적하고요. 정죄하고요. 심판하는 것이었다면요. 신약시대의 성령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요. 위로하시고요. 살리시는 거예요. 그래서 아직도 율법에 사로잡힌 자들은 언제나 남을 지적하고 정죄하고 심판하다가요. 스스로 자기 올무에 빠져서 심판 당하고 멸망하고 마는 거예요. 그러나 성령님으로 거듭나서 성령님에게 사로잡힌 삶을 사는 사람들은 어떠한 형제의 허물도 주님께서 나를 용서하셨듯이 용서하고요. 나를 사랑하셨듯이 사랑하고요. 나를 오래 참고 기다리셨듯이 기다리며 인내하며 살려나가는 거예요.
<예화: 김의식 위임목사님의 「치유목회 이야기」 출판감사예배>
<예화: TV조선 ‘내일은 국민가수’ 준결승 1R 승리 후 대결했던 가수를 격려한 박창근씨>


여러분, 이것이 바로 말세 마지막 때 가장 절실한 사람을 살리는 신앙인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도 가정이나 이웃이나 교회에서도 어떠한 원수라도 하나님의 심판에 다 맡기고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살리는 신앙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오히려 우리에게 인생의 실패를 다 이겨내게 하시고 복을 주시고요. 귀하게 쓰시고요. 크게 영광 거두어 주실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의 동해 청운교회 김병훈 목사님의 간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 실패가 닥치고 고난이 임해도요. 우리가 끝까지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살아가고요. 영적 분별력을 잃지 않고요. 살리는 신앙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인생의 어떠한 실패의 고난 속에서도 대역전의 승리를 거두고 전화위복의 계기를 삼으며 하나님 아버지께 크게 영광 돌리는 복된 여생을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