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감동(1)- 영적 감동 로마서 12:15


 2022년 임인년(검은 호랑이의 해) 새해 첫 주일이 밝아왔어요. 우리는 작년에 ‘다음 세대를 위한 영적 비전’을 선포하고요. 가장 먼저 우리 부모세대가 ‘영적 모범’을 보이자고 했어요. 우리가 자녀들의 영적 모범이 되어야 온전한 양육이 이루어질 수 있어요. 더 나아가 올해에는 우리 자녀들에게 이 영적 모범을 통해 ‘영적 감동’을 주어야 하는데요.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을 포함해서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어떻게 영적 감동을 줄 수 있는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웃음의 감동을 체험해야 함
 먼저 본문 15절 상반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웃음은 영적 감동을 일으키기 위한 첫 번째 치유의 자원이에요. 웃음은 우리의 닫혔던 마음을 열어주고요. 마음에 쌓인 감정을 퍼뜨려 주어서요. 스트레스 해소를 돕고요. 기분 전환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요. 혈액순환, 심장 강화, 온 몸의 기능의 회복, 다이어트 등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요. 엔돌핀(Endorphin)이라는 호르몬까지 분비시켜 통증완화와 면역력을 강화를 하여서요. 웃음이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옛 말에 일노일노 일소일소(一怒一老 一笑一少) 즉 “한 번 화내면 한 번 늙어지고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진다”는 말이 있어요.
<예화: 연세대 교수 故 황수관 장로>
<도서: 헨리 입센 ‘인형의 집’>


 우리가 웃을 때 마음 문이 열러지고 복이 임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마태복음 11:16-16 상반절에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라고 증거하고 있어요. 말세의 마지막 때가 되어서 점점 사람들의 마음이 강퍅해지고 완악해지니깐요.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고요. 우스운 이야기를 해도 웃지를 않고요. 웃을려다가 말아버려요. 이 얼마나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예화: 우울증을 앓고 있던 찰리 체플린>


 여러분, 우리가 진정한 웃음의 감동을 체험하려면 이제는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에 대해 사랑하고요. 모든 환경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 거예요. 이처럼 우리가 모든 사람이나 환경에 대해서 삶의 두 기둥인 사랑과 감사로 받아들일 때 웃음의 기쁨이 넘치게 하고요.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말이 있듯이요. 사랑과 감사의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되는 거예요.
<예화: 나폴레옹을 믿어 준 식당직원>


 우리의 마음부터 사랑과 감사부터 회복해야 진정으로 우리가 치유되고 회복되는 거예요. 그리하여 사랑과 감사의 행복을 회복하게 될 때 우리의 삶 가운데 자연스럽게 웃음꽃이 피어나고요. 그리하여 사랑하는 가족들이나 주위 사람들과 유머를 통해 그 웃음의 감동을 나눌 수가 있어요. 우리의 마음에 웃음의 감동이 회복될 때 우리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하면서 행복의 감동을 함께 나누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눈물의 감동을 체험해야 함
 계속해서 본문 15절 하반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우리의 삶 가운데 웃음보다 더욱 큰 감동을 주는 것은 눈물이에요. 눈물은 우리의 마음에 쌓인 스트레스와 감정들을 다 씻어 내리는 정화작용(Catharsis)의 효과가 있어요. 특별히 우리가 감동의 눈물을 흘릴 때 엔돌핀의 4,000배의 위력이 있는 다이돌핀(Diorphin)이라는 감동호르몬이 분비되어 우리의 통증을 완화시켜주고 면역력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요. 우리를 영육간에 치유하고 회복시켜주는 거예요. 그래서 눈물의 감동은 각박하고 메말라가는 말세 마지막 때 우리의 삶 가운데 더욱 뜨거운 감동의 은혜를 전해주는 거예요. 그런데 마태복음 11:17 하반절에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고 경고하시지 않아요? 다시 말하면 말세 마지막 때 사람들의 마음이 점점 강퍅하고 완악해지니깐요. 주위에서 슬피 울어도 우리는 가슴을 치기는커녕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아요. 그러니 어떻게 가슴 아파하고 눈물 흘리는 사랑하는 가족이나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위로할 수 있겠어요? 이 때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을 먼저 체험하고요. 그 사랑으로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이나 이웃을 바라보게 될 때 그 아픔을 함께 느끼게 되고요. 불쌍히 여기게 되고요. 우는 자들과 함께 울면서요. 그들을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어요.
<예화: 치유목회 이야기>
  <도서:「상한 마음의 치유」, 「상한 가정의 치유」, 「상한 교회의 치유」, 「상한 세상의 치유」>
  <도서:「예수님은 치유하십니다」 1, 2, 3, 4, 5권>
  <도서:「성령님은 선교를 이루십니다」 1, 2권>
  <도서:「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1, 2권>
  <한반도통일공헌대상 수상>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와 여러분을 웃음과 눈물의 감동 속에 매 주일마다 치유하시고요. 더 나아가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민족과 열방을 치유하길 원하시는 깊으신 하나님의 뜻이 있으셨던 거예요. 이처럼 눈물의 감동을 통해 우리의 강퍅하고 완악한 마음을 다 깨뜨리고요. 부숴뜨리고요. 무너뜨려서요. 통회자복하면서요. 우리 자신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상처 입은 심령들을 치유하면요. 우리 자신의 성격이나 행동이나 신앙의 변화가 일어나서요. 우는 자와 더불어 울며 천국의 축복과 행복의 감격을 회복하는 것을 놀랍게 체험하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결단의 감동을 체험해야 함
 마지막으로 고린도후서 6:2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우리가 웃음의 감동과 눈물의 감동을 경험했다 할지라도 마지막 우리 자신이 믿음의 결단의 감동을 체험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삶의 변화를 기대할 수가 없고 말아요.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이 은혜 받을만한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요. 오늘의 결단의 감동을 통해서 삶이 변화될 때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이나 이웃들에게 진정한 영적 감동을 안겨다 주고요. 그들도 변화시킬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치유하는교회에서는 복음의 말씀을 통해 웃음과 눈물의 감동을 나눈 다음에 마지막으로 통성기도를 하면서요.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통해 치유 받은 것을 철저히 통회자복하면서 믿음으로 결단을 하고요. 마지막 찬양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며 결단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거예요. 그리하여 더 이상 아무런 감동도, 변화도, 열매도 없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같은 현대판 종교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요. 매 주일, 매 예배마다 무언가 한 가지라도 영적 감동을 받고요. 변화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믿음의 결단을 하는 거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남을 탓하거나 비판하지 말고요. 나 자신이 철저히 깨어지고 부서지고 죽어지도록 통회자복해야 해요.
<예화: 순회산교단 대표 김용의 선교사>


 이제 주님이 여러분에게 질문할 기회를 드려야 해요. “사랑하는 딸아, 사랑하는 아들아, 나 예수는, 십자가의 예수는 너에게 무슨 의미이냐?”하고 물으실 거예요. 예수를 믿는다는 건 그냥 믿는 집에 태어났고 성경책 좀 끼고 다니고 예배당 좀 나왔고 예배시간 안 빠지고 헌금 좀 하고 성경 좀 공부했고 이런 거 아니에요. 이런 게 아니라는 거예요. 기독교는 세력도 아니고 건물도 아니고 역사도 아니고요. 십자가라는 거예요. 주님의 가장 존귀하고 가장 순수하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 가장 영원한 사랑, 여러분의 존재를 가장 빛나게 해줄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최고 최대의 선물이에요. “너 때문에 내가 죽었어 넌 내게 순서를 매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넌 나의 전부야” 그러면 주님의 마지막 질문을 기억하시나요? “나 예수는 너에게 무슨 의미니?” 생각나면 가끔 찾아 부르는 분 아니세요? 애인만 생겨도 넋을 잃고 몇 년은 깜빡 잊고 살아도 괜찮은 그런 정도의 예수님이 아니세요? 직장 하나만 걸려도 예수님 부끄러워서 얼른 뒤에다가 숨기는 그런 정도의 예수님이 아니세요? 가정에 조그만 어려운 일이 생겨도 금방 시험에 빠져 찾지도 않는 그런 예수님이 아니시라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한 번도 나를 부끄러워 해본 적이 없으세요. 예수님은 단 한 번도 부인해본 적이 없으세요. 형편 때문에 나를 부인하신 적이 없으셨어요. 심지어 내가 기가 막히게 죄 짓고 넘어지고 부끄러울 때에도 그는 “넌 여전히 내 아들이야! 내 딸이야!”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그런 주님이세요. 그 이하가 없어요. 십자가 이하가 없어요. 그런데 그 주님이 여러분에게 누구냐고요? 무슨 의미냐고요? 오늘은 좀 정직한 영혼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죽은 껍데기 같은 거 말고 이 하루를 넘기기 전에 내 생의 가장 최고의 경배와 사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세요. 그분은 나에게 나에게서 최고의 사랑을 받으셔야 되세요. 그리고 주님 앞에 정직하게 “주님, 저는 주님이 부끄러운 남편 호세아 선지자의 사랑을 배신한 고멜 같은 나였어요. 주님 잃어버리고 딴 짓하던 인간이었어요. 내 자신 자아 사랑에 푹 빠져있던 부끄러운 나였어요” 그래서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주님의 십자가가 저의 최고의 열매이고 가장 자랑이고 영원한 확증이요. 주님을 향한 저의 사랑은 그 이하가 없는, 주님께서 저의 전부가 되기까지 주여 내 영혼을 정결하게 해주시옵소서! 주여, 내 영혼을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하고 통회자복하며 날마다 믿음으로 결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얼마나 가슴을 파고드는 감동적인 강의였는지 몰라요. 그래서 시편 51:17에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고 증거하지 않아요? 이렇게 우리가 통회자복하며 결단의 감동을 체험하게 될 때 비로소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변화가 일어나고요. 열매 맺게 되고요.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이나 이웃에게 이르기까지 뜨거운 영적 감동을 안겨다 줄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고흥 매곡교회 정도성 목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에 영적 감동을 체험하지 않으면요. 나 자신의 신앙도 점점 잠들고 병들고 죽어가고요. 주님의 은혜와 행복과 축복을 다 잃어버리고요. 주위의 사랑하는 자녀들이나 가족들이나 이웃들에게까지도 어떠한 영적 감동도 주지 못하고요.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고요. 열매도 맺을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 그게 바로 지옥과 같은 종교생활인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먼저 웃음의 감동과 눈물의 감동과 결단의 감동을 체험하게 될 때 우리의 삶을 통해 사랑하는 가족들로부터 시작해서 주위 교인들이나 이웃들에 이르기까지 큰 영적 감동을 주며 놀라운 영적 변화를 일으키며 풍성한 영적 열매를 맺는 날이 꼭 다가오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