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감동(3)-무엇이 문제인가Ⅱ
사무엘하 6:12-23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 성 예루살렘으로 옮기다가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의 죽음을 맞이하고 말아요. 그러나 그의 죽음은 다윗과 그의 일행에게 영적으로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고요. 그들이 당면하는 또 다른 문제까지 다 극복하게 돼요. 우리의 인생도 새해에 계속해서 부딪혀오는 문제들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가를 직면하면서요. 지난 주일에 이어서 이러한 신앙생활의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영적인 회복이 이루어져야 함
 먼저 본문 12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다윗 왕에게 있어서 오벧에돔의 집에서의 세 달 동안 하나님의 법궤의 안치는 웃사의 죽음을 통해 지난 날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어요. 그래서 지난 날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출 25:14, 민 4:15)대로 이제는 법궤를 수레에 싣지 않고요. 여호와의 법궤를 어깨에 메었어요. 그때 법궤를 멘 사람은 역대상 15장에 보면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과 레위인 우리엘, 아사야, 요엘, 스마야, 엘리엘, 암미나답 등 8명이었어요(대상 15:11). 그들은 먼저 몸을 성결케 하고 모세의 율법에 말씀하신대로 법궤를 멘 거예요(대상 15:12-15). 그리고 여섯 걸음을 행한 후에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자 죽지 않고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감격하면서요.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으로 감사의 제사를 드려요(대상 15:26).


그리고 다윗은 온 백성과 함께 나팔(trumpet) 등 각종 악기로 찬양을 하며 춤을 추며 소리를 높여 환호하며 다윗 성에 이르게 된 거예요. 다시 말하면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먼저 영적인 회복을 이룬 후 다윗 성으로 나아갈 수 있었어요.


 우리도 말세 마지막 때 인생의 실패와 가난과 절망과 불행을 겪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지난 날의 영적인 문제가 무엇이었는가를 먼저 깨닫고요. 용기를 내어 통회자복하면서요. 믿음으로 결단하고요. 새로운 변화의 삶을 살아가면서요. 성령충만한 삶의 영적인 회복이 이루어져야 해요. 이것만이 우리를 일생토록 더 이상 실패하거나 불행과 고통을 겪지 않고요. 진정으로 주님 안에서 은혜롭고요. 축복되고요. 행복의 감격 속에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에요.


 요즘 국민일보의 ‘역경의 열매’라는 코너에 ‘치유목회의 개척자 치유하는 교회 김의식 목사’라는 제목으로 연재가 되고 있는데요. 부족한 종이 치유목회를 개척하면서요. 그 첫 번째를 영성목회를 앞세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우리가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영적인 충만함을 회복해야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고요. 온전히 하나님의 일을 이루고요. 풍성하게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 목회자들부터 매일 새벽 적어도 1시간씩 기도하게 하고요. 그것도 자다가 졸다가 가는 아무런 응답도 없고 기적도 일어나지 않은 무기력한 기도가 아니라요.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성령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 가운데 충만하게 역사하시도록 온전히 내어드려야 해요. 그리할 때 우리가 먼저 영적인 회복을 이루고요. 날마다 성령님으로 충만해져서요. 주님께서 살아 역사하시는 기적의 승리의 삶을 살게 될 뿐만 아니라요. 에베소서 5:19-21의 말씀과 같이 성령 충만한 삶의 3가지 증거가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되는 거예요.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우리의 성령충만한 삶의 증거는 다른 것이 아니에요.


첫째, 찬양의 기쁨(:19)이 넘쳐나고요. 둘째, 감사의 행복(:20)이 넘쳐나고요. 셋째, 복종의 섬김(:21)의 삶을 평생토록 기쁘게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그리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누리게 되는 거예요. 그러나 이러한 영적인 삶의 증거들이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의 신앙생활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철저히 통회자복하면서요. 간절히 부르짖으며 진정으로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회복해야 해요. 저는 금년 들어 우리 목사님들이 새벽기도회에 뜨겁게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면서요. 저의 기대한 만큼 영적인 회복이 되었다는 보람과 기쁨이 있어요.
<예화: 전주 신일교회 유정인 목사>


 우리 성도님들도 다 마찬가지에요. 날마다 말씀과 기도의 영적인 회복이 이루어지면요. 성령충만해질 수밖에 없고요. 그 결과 하나님과 영통하면 모든 일이 형통해져서요. 영원한 천국에 이를 때까지 날마다 천국의 축복과  행복의 감격 속에 복되게 살아가고요. 귀하게 쓰임 받고요. 크게 영광 돌리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마음의 감정도 치유를 받아야 함
 계속해서 본문 16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여호와의 법궤가 다윗 성 예루살렘으로 들어온 후 국민들은 열화와 같이 찬양을 하며 춤을 추며 환호하였어요. 유대 민족들은 성경의 절기 때마나 국가적 경사를 맞을 때 온 국민들이 찬양을 하며 춤을 추었어요. 그런데 이 모습을 창문으로 내다보던 사울 왕의 딸 미갈이 있었어요. 다윗이 사울 왕의 둘째 딸인 미갈과 결혼을 하게 된 것은 사무엘상 18장에 보면 다윗이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물리치고 돌아왔을 때 이스라엘의 모든 성읍의 여인들이 길거리로 나와서 찬양을 하며 춤을 추며 사울 왕을 환영하는데요. “사울이 죽인 자는 수천 명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수만 명이라”는 노래를 들으면서요. 사울 왕의 마음이 심히 불쾌하고 분노하게 되었어요. 더 나아가 다윗을 주목하며 시기하고 질투하게 되었어요(삼상 18:6-9). 그래서 사울 왕은 그의 첫 딸 메랍을 주어서 정략 결혼을 시도하고자 해요. 그런데 다윗이 “나와 우리 가문이 무엇이관대 왕의 사위가 될 수 있겠습니까?”하고 망설이는 사이에 첫 딸 메랍을 므홀랏 사람 아드리엘에게 시집을 보내게 되고요. 둘째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되자 둘째 딸을 다윗에게 보내서 정략결혼을 시킨 거예요. 그런데 미갈은 왕의 딸인 공주로서 영적인 교만이 가득한 사람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가 왕비가 된 후에도 다윗의 옛날 평민시절만 생각하고요.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을 추는 것을 보고 마음 속으로 그를 업신여기게 된 거예요. 여기 ‘업신여기다’는 단어가 ‘זבֶתִּוַ(왓티베즈)라고 해서요. ‘זבֶתְ(티베즈)’의 미완료형 동사인데요. 원뜻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라는 뜻인데요. 이는 사람을 멸시함과 동시에 모욕하는 의미를 갖고 있어요. 미갈은 다윗이 베 에봇(세마포 겉옷, 대상 15:27)만 입고 흥겹게 춤을 추는 것이 왕의 품위를 해치는 경망스런 행동이라고 보았던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마음 속에 다윗을 무시하는 감정을 품게 된 거예요. 바로 이러한 감정을 품고 있었던 것이 미갈이 불행과 고통에 이르는 첫걸음이 되었던 거예요.


 말세 마지막 때 우리의 또 하나의 문제는 마음의 감정의 문제에요. 여러분,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되면 우리의 영혼의 죄악과 마음의 상처와 육신의 질병이 십자가의 능력으로 치유를 받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마음 속에 불만과 불평의 감정들이 솟구쳐도요.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의 용서에 의해서 치유 받고요. 상대방의 어떠한 못마땅한 행위를 보아도요. 그들의 영적 상태를 이해하게 되고요. 불쌍히 여기고요. 끝까지 주님의 사랑으로 허물을 덮어주며 섬기게 되면서요. 그들이 치유받고 변화될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자신이 치유 받지 못하니까 자신도 평안하지 못하고요. 행복하지 못하고요. 축복되지 못한 것을 돌이키지 않고요.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만 불만을 품고요. 감정을 끌어안고요. 남의 허물이나 들추면서요. 평생을 지옥의 불행과 고통 가운데 살다가요. 인생을 끝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예화: 포항 장성교회 제직세미나>


 우리의 상한 마음의 치유를 위해서는 에베소서 4:31-32의 말씀대로만 하면 돼요.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순간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조금도 남김없이 다 버리고요. 그 빈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간구함으로써 친절하게 대하고 불쌍히 여길 수 있길 바랍니다. 더 나아가 어떠한 원수라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용서하심같이 용서하면요. 우리의 지난 날의 어떠한 불만과 불행과 고통까지도 순식간에 다 치유받고요. 평생토록 날마다 순간마다 이 놀라운 천국의 축복과 행복의 감격 속에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은혜로운 말만 해야 함
 마지막으로 본문 20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여호와의 법궤를 메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요. 다윗 왕이 법궤를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특별히 예비 된 자리에 법궤를 안치를 하였어요. 사실 이 장막은 성막이 아니었어요. 당시 성막은 기브온에 있었어요(대상 16:39, 21:29). 이곳은 솔로몬 왕에 의해 성전이 건축될 때까지 임시 거처였던 거예요. 다윗도 그 장막에서 법궤를 모시고 헌신의 제사인 번제(레 1장)와 감사제인 화목제(레 3장)를 드리고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을 하고요. 화목제물인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 모든 백성에게 나눠주고요(레 7:15-18). 법궤를 모신 제사를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게 한 거예요. 그런데 다윗 왕은 자신의 가족들에게 축복을 하러 돌아오자 이렇게 치유 받지 못한 그의 부인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면서 하는 말이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하고 비아냥거린 거예요. 여기 ‘자기 몸을 드러낸 것’은 다윗이 왕복을 입지 않고 세마포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을 말해요. 또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고 한 것은 다윗이 종들의 계집종(תוהֹמְאַ, 아므호트)들, 다시 말하면 당시 여종들을 천시하는 칭호로서 그런 비천한 여자종들 앞에서 그 몸을 함부로 드러내어 왕의 권위를 잃었다는 비난이었어요. 그러자 다윗이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21-22)고 하면서요. “당신은 나를 미천하게 취급하지만 더 미천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하나님 앞에서 한 것이니 하나님께서 높이시겠고 또 하나님께 바른 신앙을 가진 계집종들에게는 높임도 받을 것이다.”라고 반박을 해요. 이 말은 “당신은 어떻게 왕의 딸인 왕비라고 하면서 그렇게 믿음이 없어서 저 비천한 계집종들만도 못하요?”하는 가슴 폐부를 찌르는 의미가 담겨져 있었던 거예요. 결국 하나님께서는 교만에 가득 차서 믿음 없이 함부로 말하며 다윗 왕을 무시한 미갈에게는 당시 이스라엘 여자로서 가장 수치스러운 치욕이었던 자식을 낳지 못하는 불행을 겪게 하고 말아요(삼상 1:6-8). 결국 미갈의 남에게 상처 주는 말들이 자신에게 큰 불행을 안겨다 주고 만 거예요.


 말세 마지막 때 우리의 마지막 문제는 말의 문제에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옛 속담도 있지만요. 온갖 거짓된 말로 상처를 주고 사람을 인격 살인하는 일들이 우리 주위에서 얼마나 많이 일어나요? 결국 사탄이 말세 마지막 때 가장 잘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비밀병기인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남은 인생이라도 이제는 말을 결단코 함부로 해선 안돼요.
<책: 「여자의 뇌, 여자의 발견」, 루안 브리젠딘>
<책: 「세 황금문(Three Golden Gates)」, 베스 데이(Beth Day)


 이렇게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아세요? 다 자신이 최고인 것처럼 영적 교만에 빠져서 그래요. 자신의 삶은 더 많은 영적인 문제를 안고요. 자신이 말로 떠는 것과 달리 자신의 삶이 받쳐주지 못하니깐요. 함께 사는 남편이나 마누라조차도 인정을 안해주는데요. 교회의 주의 종들이나 영적인 교인들 누가 인정을 해주겠어요? 그러니 세상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다면요. 에베소서 4:29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명령하고 계세요. 그러므로 우리의 얼마 남지 않은 남은 여생이라도 더 이상 사탄에게 속아서요. 자신만 의로운 체하면서요. 매사가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고요. 남을 험담하고요. 비방하고요. 공격하는 말들을 멈추고요. 더 이상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요. 서로 용서하고요. 사랑하고요. 위로하고요. 격려하고요. 칭찬하는 선한 말만 해서요. 듣는 자들이 위로 받고요. 새 힘을 얻고요. 희망을 얻고요. 용기를 내도록 은혜를 끼치게 하라는 거예요.
<예화: 할아버지의 통 큰 선물>
<예화: 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 오영수 배우 >
 이제는 우리의 더러운 말이 아닌 선한 말을 통해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할 때 우리 심령도, 가정도, 교회도, 세상도 날마다 천국의 축복과 행복의 감격 속에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포항 장성교회 박석진 목사, 꿈꾸는 교회 故 박수진 목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도 언젠가는 떠나가요. 언제 떠나갈지만 몰라요. 그런데 살아있는 동안 우리의 삶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가장 먼저 영적인 회복이 이루어지고요. 상한 마음의 감정이 치유를 받고요. 은혜로운 말만 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신앙생활의 모든 문제를 극복하게 되고요. 날마다 천국의 축복과 행복의 감격 속에 살게 하여 주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