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01
영적 감동(18) 이렇게 양육하라 룻기 1:1-5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면서요. 지난 번 구약시리즈 말씀 가운데 가정의 달을 위해 남겨 두었던 룻기를 다루게 될 텐데요. 특별히 우리는 오늘 또 다시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녀들의 선한 청지기로서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영적 양육을 해야 하는데요. 오늘 본문 가운데에는 이러한 영적 양육에 실패한 엘리멜렉과 나오미라는 한 부모가 나옵니다. 그들이 어떠한 점에서 영적 양육에 실패했는가를 보면서요. 결단코 이것을 따르거나 되풀이해서는 안 될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우리에게 맡겨주신 자녀들을 어떻게 영적으로 양육해야 할 것인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고난 속에서 인내해야 함
먼저 본문 1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사사(재판관)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사사시대 즉 주전 1380-1050년에 이르는 약 300년 사이에 흉년이 들게 된 거예요. 유다 땅 베들레헴에 살던 한 남편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으로 떠나가게 돼요. 적어도 이 부부는 양식이 풍부하고 기름진 곳이어서 ‘떡집’이라고 불리우던 베들레헴에서 흉년이 들었다고 할지라도요. 고난 속에서 인내하면서 그들의 신앙의 땅은 지켰어야 했어요.

그래서 피난을 가더라도 유다 땅이나 북쪽 이스라엘로 가야 했는데요. 그들은 요단강을 건너 모압 지방으로 가요. 모압 지방이 어떤 땅이에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육적인 조카 롯이 아브라함의 중보적 기도에 힘입어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서 살아난 후 술에 취해 그의 큰 딸과 관계하여 낳은 후손이 모압 족속이고요. 그 모압 족속이 살던 이방 땅이 모압 지방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 육적인 사람들이 머무는 모압 지방으로 구걸하러 가느냐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의 첫 번째 자녀 양육의 실패했던 거예요.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실직이나 사업의 실패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도 겪고요. 신체의 질병의 고통도 겪고요. 가정의 불행의 눈물은 흘릴 때도 있어요. 그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금식하면서 기도하고요. 통곡하면서 통회자복하고요. 이제 남은 여생은 주님과 고통 당하는 이웃을 위해 살 것을 서원하면서 믿음으로 결단해야 해요. 그런데 인생의 고난을 당하면 대부분의 교인들은 이와는 반대로 불평하거나 원망하고요. 낙심하거나 좌절해서요. 가정을 떠나거나 심지어 교회까지 떠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나 우리가 고난 속에서 인내하지 못하고 주님을 떠나는 것은 물을 떠난 물고기와 같은 인생이 되어버리고 말아요. 그리하여 그들의 인생이 더욱 더 불행해지고요. 고통스러워지고요.파멸에 이르고 말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인생의 고난을 당할 때 야고보서 1:2-4의 말씀을 기억해야 해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수많은 시험(trials of many kinds)’을 당해도요. 이 고난들을 “온전한 기쁨으로 여기라(Consider it pure joy)”라는 거예요. 여러분, 상상을 해보세요. 고난 속에서 어떻게 온전히 기뻐할 수 있어요? 이것이 바로 세상 사람들과 달리 십자가의 죽음의 고난을 이겨내신 주님을 믿는 자들의 믿음인 거예요. 이렇게 우리가 고난들 속에서도 온전히 기쁘게 여길 때 이러한 믿음의 시련이 우리로 하여금 인내하게 하면서요.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친히 신앙의 연단을 하신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이 신앙의 연단을 끝까지 잘 인내하면요.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신앙의 연단이 끝난 후 우리를 정금 같은 믿음으로 나오게 하셔서요. 우리로 하여금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인생의 고난 속에서도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고요. 그 십자가를 붙잡고요. 고난의 세월을 끝까지 인내해 나갈수 있길 바랍니다.
<예화>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인 니콜로 파가니니(Niccolo Paganini)

여러분, 파가니니가 바이올린 한 줄만을 붙잡고도 명연주를 잘 마칠 수 있었던 것처럼요. 우리도 십자가의 주님 한 분만 바라보고요. 그의 십자가만 붙잡고요. 어떠한 고난의 세월 가운데에도 인내하면서요. 우리의 주어진 명연주를 해나가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어떠한 고난 속에서 끝까지 인내하는 이러한 모범을 자녀들에게 보일 때 자녀들은 큰 감동을 받고요. 부모님의 신앙의 모범을 따라서요. 자신의 인생에 이러한 고난이 닥쳤을 때 자신들도 인내하면서 능히 이겨내게 되는 거예요.
<예화> 회사 부도가난 한 아버지의 이야기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4:15-16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외치고 있지 않아요? 그러므로 우리 부모들이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인내하는 신앙의 모범이 우리 자녀들을 위한 어떠한 영적인 양육보다도 더 위대한 감동적인 자녀 양육이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거룩함을 지켜 나가야 함
계속해서 본문 2절 상반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여기 남편의 이름이 엘리멜렉이라고 밝히는데요. 히브리어로 ךְלֶמֶילִאֶ(엘리멜레크)라고 해서 ‘엘리’는 ‘나의 하나님’이라는 뜻이고요. ‘멜렉’은 ‘왕’이란 뜻이어서요. ‘엘리멜렉’은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라는 뜻이었어요. 아내의 이름이 나오미인데요. 히브리어로 ‘ימִעְנָ(노오미)’로서 ‘기쁨’이란 뜻이었어요. 그들의 이름대로라면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고 고백을 하며 사니깐요. ‘기쁨’이 넘쳐날 수밖에 없었을 텐데요. 그 부모들이 그 자신들의 신앙의 거룩함을 지켜나가지 못하니깐요. 그 자녀들이 어떻게 되었어요? 그 큰 아들의 이름이 말론 즉 히브리어로 ‘ןולֹחְמַ(마홀론)’이라고 해서 ‘질병’이란 뜻이고요. 둘째 아들의 이름이 기룐 즉 히브리어로 ‘ןויֹלְכִ(킬르온)’이라고 해서 ‘쇠악’이란 뜻이에요. 이처럼 부모의 거룩성의 상실이 아들들의 질병과 쇠악을 가져오고요. 결국 모두 다 죽음에 이르게 하고 만 거예요. 이 얼마나 비극적이고 불행한 가정의 종말이에요? 그러므로 말세 마지막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 부모들을 향해 외쳐요. 베드로전서 1:16에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고 분명히 명령하시지 않아요? 우리 부모들이 영적으로 거룩하지 않으면 자녀들의 장래를 다 허물어뜨리고 말아요. 그래서 자녀들이 잘못된 길로 갈 때에 우리 부모 자신들부터 통회 자복하면서 엎드려야 해요. 그리할 때 우리 자녀들이 살아날 길을 찾게 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좋은 가문에 결혼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요. 그들이 먼저 구원 받고요. 영육간에 치유 받고요. 주님과 고통 당하는 이웃을 위해 헌신된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는 거예요.

<예화> 국민일보에 나온 우리 자녀들의 현실
그렇다면 우리 자녀들과 함께 부모들이 어떻게 하면 치유를 받고 거룩함을 지켜나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디모데전서 4:4-5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고 분명히 증거하시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의 모든 것들은 선한 거예요.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어요. 그래서 보수적인 목사들은 TV가 마귀상자라고 하면서 절대 못 보게 해요. 여러분, TV에서 우리가 보지 말아야 할 귀신(Ghost), 섹스(Sex), 폭력(Violence) 등이 나오는 내용들에 빠져 들어가니까 그렇지요. TV에서 웃음과 눈물의 치유프로그램들을 보면요. 영육간에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굳어진 마음문을 열어주어서요. 치유의 은혜를 체험케 하는 거예요. 그래서 매주 웃음의 프로그램 하나, 눈물의 프로그램 하나 이상을 통해서라도 치유가 절실한 거예요. 그리하여야 마음의 평안과 진정한 삶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어요. 그리고 더 나아가 열려진 마음에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치유를 받는 경건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한 주간 내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멀리 하고 주일에만 예수 믿는 ‘주일교인(Sunday Christian)’이 되어버리고요.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되어버려서요. 자신도 은혜도 못 받고 축복도 못 누릴 뿐만 아니라요. 행복의 감격도 없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인생을 끝내버려요. 그러나 우리가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살아갈 때 우리 자신은 거룩함을 지키며 일어설 수 있을 뿐만 아니라요.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변하지 않던 우리 자녀들까지도 함께 거룩한 믿음으로 일어서게 되는 거예요. 그리하여 창세 이래의 역사를 보면 우리가 평생토록 성공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우리의 자녀들 가운데 신실한 신앙의 주의 종이나 장로님들이나 권사님들이나 집사님들이 모두 다 이렇게 말씀과 기도로 자라난 가운데 나오게 된 거예요.

<책> 오륜교회 주경훈 목사님이 쓴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꼭 한 번 하는 「52주 가정예배」
<예화> 위임목사님의 자녀 큐티양육방법

그러므로 우리가 부모로서 진정으로 자녀양육에 성공하는 것은 우리의 자녀들이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요. 일생토록 하나님의 나라의 소중한 일군으로 쓰임 받아야 하는데요. 우리가 날마다 웃음과 눈물의 감동 속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의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가면 우리도 일생토록 우리의 거룩함을 지켜나가고요. 우리 자녀들까지도 말세 마지막 때 이렇게 타락한 세상 가운데서도 그 거룩함을 지켜 나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죄악 세상에 빠져들어선 안 됨
마지막으로 본문 2절 하반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여러분, 왜 신앙의 택함 받은 땅에서 불신 이방 땅으로 들어가 사느냐는 거예요. 한 때 흉년의 고난 속에서 잠시 피난을 갔다고 하더래도요. 다시 유다 땅 베들레헴으로 돌아와야 할 것 아니에요? 그런데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모압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게 된 데서부터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가정의 불행이 깊어만 갔고요. 고통이 심해져만 갔던 거예요. 그리하여 먼저 남편인 엘리멜렉이 세상을 떠나고요. 더 나아가 사랑하는 두 아들이 이방 땅의 모압 여자들과 결혼을 하였는데요. 결국에 모압 지방에 거주한 지 10년 쯤 되었을 때 두 아들 말론과 기룐까지도 죽고 말아요. 그러니 그 나오미의 가정에 그 이상의 비극적인 불행이 어디에 있었겠어요? 여러분, 왜 그토록 평안하던 가정에 이런 날벼락과 같은 가정의 고통과 불행을 겪어야 했나요? 그들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모압이라는 죄악 세상으로 들어가 빠져든 데 결정적인 원인이 있었던 거예요. 여기서 우리는 고린도후서 6:14, 18의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래서 적어도 우리 자녀들을 결혼시킬 때 사위나 며느리감의 외모나 학력이나 경제적 능력이 좋고요. 그 가문이 세상에서 다 놓고 떠나갈 부귀나 영화나 권세가 아무리 높아도요. 우리는 그들의 신앙의 가정 배경과 구원의 확신과 헌신의 믿음을 최우선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더 이상 죄악 세상에서 불행과 고통을 겪지 않고요. 천국의 축복과 행복의 자리로 나아오도록 해야 해요. 그렇지 않고 세상적인 외모나 배경을 보고 결혼하게 되면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까지 평생 피눈물을 흘리며 불행과 고통 가운데 살게 돼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 받으시고 모든 복의 통로인 예배의 자리로 나아와야 하고요. 말씀의 자리로 나아와야 하고요. 기도의 자리로 나아와야 하고요. 헌신의 자리로 나아와야 하고요. 봉사의 자리로 나아와야 하고요. 전도의 자리로 나아와야 해요. 그리할 때 우리의 자녀들도 우리의 충성된 신앙생활을 다 보고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다 보고 배우게 되고요. 거기서부터 인생의 진정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임하고요. 넘치는 축복이 임하고요. 감격의 행복이 임하게 되는 거예요. 우리는 그러한 성경의 약속의 확실한 증거를 유태인들의 6,000년 역사 가운데서 확실하게 목격할 수 있어요. 
<예화> 유태인의 철저한 신앙교육의 결과

이러한 역사적 증거들을 보면서 우리는 시편 84:4의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는 말씀을 확신하지 않을 수 없어요. 더 나아가 시편 73:28의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는 말씀을 체험하며 살아가지 않을 수 없어요. 말세 마지막 때가 되도록 절대 믿음 없는 사람들같이 모이기를 폐해서는 안 되고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붙잡고 주님 앞에 나아오라고 명령하고 계세요. 그런데 너무도 가슴 아픈 것은 코로나19가 두려워서 교회에 안 나오다가 코로나19나 갖가지 질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는 거예요. 우리는 지난 2년 4개월 코로나19를 두려워하지 않고 한 주도 빠짐없이 나왔는데도요.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기적적으로 건강하게 살아있는데요. 그렇게 예배도 안 드리다가 갑자기 세상 떠나게 되면 주님 앞에 설 때 뭐라고 대답할 수 있겠어요?
<예화> 한 장로님의 아들 이야기

여러분, 말세 마지막 때 라오디게아교회처럼 차지도, 덥지도 아니한 신앙을 가지고 우리가 성경의 가르침대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 성전에 모이지 않고요. 비성경적이고, 인본적이고, 세속적인 비대면예배를 보게 되면요. 우리는 모두 다 영적으로 충만한 은혜도, 축복도, 행복도 다 잃어버리고요. 지난 날 유럽교회나 미국교회처럼 영적으로 점점 잠들고 병들고 죽어가고 마는 거예요.
<예화> 금요치유집회에 나온 한 가정 이야기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애쓰고 수고해도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복을 누리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지난 2년 4개월 동안 우리가 예배를 잘 드렸더니 저와 여러분이 우리 생애 가운데 얼마나 큰 복들을 받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더욱 더 체험의 확신을 가지고 강하게 증거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러므로 말세 마지막 때 복음적인 우리 부모부터 먼저 신앙생활의 모범을 보임으로 불행과 고통을 안겨다 주는 죄악 세상에 더 이상 빠져 있지 말고요. 하나님의 성전으로 나아올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 자녀들도 우리의 뒤를 이어 진정한 은혜와 축복과 행복의 자리로 나아오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우리 이혼했어요’에 나온 한 이혼부부 이야기

사실 우리가 이렇게 자녀를 영적으로 양육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는 것이 아니에요.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이 있듯이요. 자녀가 우리의 품 안에 있을 때 말이라도 듣지요. 품 밖으로 떠나면 점점 멀어지고 말아요. 더욱이 결혼을 하게 되면 더욱 더 멀어지고 말아요. 그런데 이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자녀들이 우리보다 먼저 떠나가는 거예요.
<예화> 딸을 위암으로 떠나 보낸 어머니 성도님의 이야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부모들에게 사랑하는 자녀들을 맡겨주셨는데 우리가 잘못 기름으로 인해 그들이 곁길로 간다면 우리는 연자맷돌을 목에 매고 깊은 바다에 빠뜨려져야 할 거예요. 그러므로 남은 여생 맡겨주신 우리 자녀들에 대해서 영적으로 잘 양육하기 위해서요. 우리 부모들이 먼저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인내하고요. 거룩함을 지켜 나가고요. 죄악 세상에 결단코 빠지지 않을 때 우리의 자녀들도 영적으로 우리의 뒤를 따라서요. 머지않아 우리가 땀과 눈물로 길러낸 자녀들과 함께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하는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모두 다 누리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