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감동(21)이렇게 행복하라룻기 3:1-5

오늘 우리는 또 다시 부부주일을 맞이하게 되었어요. 사실 어제가 부부가 하나 되어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5월 21일 부부의 날이었는데요. 오늘 본문에 일찍이 살아하는 남편을 잃고 두 아들까지 먼저 떠나보낸 시어머니 나오미가 며느리 룻을 재혼시키기 위해서 주시는 말씀 가운데 부부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마음의 안식처를 찾아야 함

먼저 본문 1절 상반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시어머니 나오미는 며느리 룻에게 부자 청년 보아스에게 청혼하게 하였는데요. 나오미는 룻을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했다고 말해요. NIV 영어성경에서 “My daughter, I must find a home for you”라고 번역을 해요. ‘안식할 곳’이란 바로 ‘가정(home)’이었던 거예요. 다시 말하면 우리의 가정이 우리가 영육간에 안식할 곳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가정에서 영육간의 안식을 얻어야 해요. 그런데 우리의 가정이 과연 ‘안식할 곳’입니까? 많은 경우에 우리의 가정이 진정한 안식처가 되지 못함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불화와 갈등을 겪고요? 불행과 고통을 느끼고요? 낙심과 절망 가운데 살아가요?

<예화> 거울을 보며 화장하던 아내와 남편

그래서 잠언 21:19에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고 고백하였고요. 잠언 25:24에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고 증거하였던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의 가정이 이처럼 마음의 안식처가 되지 못하는 그 근본적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근본적으로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하지 못해서요. 지난날의 상처의 치유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니깐요. 성격이나 행동이나 신앙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서요. 결국 성경적인 안식의 가정을 회복하지 못하고요. 평생을 불화와 분쟁 가운데서요. 끝없는 불행과 고통을 느끼면서요. 정서적 이혼(Emotional Divorce) 상태로 살아가는 거예요.

<예화>박호근 가정문화연구원 원장이 쓴 「머리 아픈 남편, 가슴 아픈 아내」 책 이야기
그러나 상담치유학적으로 볼 때 부부 자신의 지난 날의 상처부터 치유받지 않으면 자신부터 행복을 회복하지 못하고요.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서요. 진정으로 서로를 행복하게 하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 자신부터 치유를 받고요. 더 나아가 부부 사이의 모든 갈등과 불화를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치유의 길은 에베소서 4:31-32의 말씀과 같이만 하면 어떠한 불행과 고통의 가정도 치유 받을 수 있는 거예요.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수없이 듣고 잘 알고 있는데도요. 이 치유의 명령대로 믿지 않고요. 가슴으로 느끼지도 못하고요. 삶으로 실천하지 않기 때문에요. 우리가 더 이상 치유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고요. 삶의 변화가 없고요. 행복의 감격이 없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의 상처의 감정부터 더 이상 가슴 속에 끌어안고 있지 마시고요. 주님과 나만의 시간에 주님의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고요. 어떠한 원수라도 그들도 상처의 피해자요, 희생자임을 기억하면서요. 친절하게 대하고요. 불쌍히 여기면서요.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어떠한 원수라도 용서하게 될 때에 우리는 주님의 치유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고요. 지금까지 우리를 불행과 고통으로 몰고 갔던 사랑하는 부모님이나 남편이나 아내나 자녀들까지도 주님의 사랑으로 다 용납하고요. 화평케 됨으로 인해서요. 우리의 가정에서 진정으로 마음의 안식을 얻게 되는 거예요.

<예화>미국의 존 하워드 페인(John Howard Payne)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라도 원수 같은 남편이나 아내까지도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다 용서하고요.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마음의 안식처를 우리의 가정에서 찾게 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주님 안에서 행복한 여생을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육적으로 복되게 살아야 함

계속해서 본문 1절 하반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마음의 안식을 얻어도 물질적으로 어려우면 그것이 행복의 걸림돌이 되어 버릴 때가 얼마나 많아요?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절실한 거예요. 그러나 그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가 애쓰고 수고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결단코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셔야 가능한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복을 많이 받았다 할지라도 쓰지도 못하고 떠나는 것은 진정한 복이 아닌 거예요.

<예화> 생명보험을 7개나 들어놓고 과로로 쓰러져 죽은 남편

그러므로 이러한 물질이나 건강 등 육신의 모든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에요. 축복장인 신명기 28:2, 6의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고 증거하는 바와 같이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제일 좋지만요. 마음에 안 내켜도 청종, 즉 복종(obey)하면 하나님의 모든 복이 우리에게 임하여서요. 우리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게 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도 축복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복종하며 살아가야 진정으로 복되게 살게 되는 거예요,

<예화> 뉴질랜드에서 목회하시는 이은태 목사님 이야기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의 말씀을 확실히 믿고 바치고 나누고 베풀고 섬기며 실천하면서 살아갈 때 우리가 육적으로 건강하고 장수하게 축복되어서요. 진정으로 주님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사랑하며 행복해야 함

마지막으로 본문 3-4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보아스는 여종들까지 둔 부자였고요. 엘리멜렉의 친족이었어요. 여기 ‘친족’이라고 하는 것은 히브리어로 ‘תעַנַימֹ(모다아트)’라고 해서요. 영어로 ‘친족 속량자(Kinsman-Redeemer)’라고 하는데요. 사람이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의 아내를 취하여 자식을 낳아 대를 잇기도 하고요. 빚을 져서 종이 되면 빚을 갚아서 종의 신분에서 해방도 시켜주고요.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게 되면 그의 원한도 풀어주는 등 ‘기업을 무를 자(לאג, 고엘, 룻 2:20)’라고도 했는데요. 이는 우리를 죄악과 상처와 질병으로부터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영적으로 상징하는 거예요. 그런데 시어머니 나오미는 며느리 룻에게 이러한 ‘기업을 무를 자’ 되는 신랑 보아스에게 청혼을 하기 위해 타작을 하는 날 목욕을 하고요. 화장으로 하고요. 아름다운 옷을 입고 신부의 단장을 하라는 거였어요. 그리고 보아스의 타작마당으로 가서 타작이 끝나고요. 축하잔치가 끝나기를 기다리라는 거였어요. 그 당시 베들레헴의 타작마당은 높은 언덕 위에 있었고요. 타작 마당은 보통 직경 30m 정도의 원형으로 평평하게 다져진 마당이었는데요. 이 타작 마당에 같이 모여서 먹고 마시는 축하 잔치가 있었어요. 보아스가 축하 잔치가 끝나고 홀로 잠자리에 누울 때 룻에게 그 발을 덮는 이불을 들고 거기에 같이 누우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 후의 일은 보아스에게 맡기라는 거예요. 결국 믿음의 룻의 청혼을 보아스가 받아들이고요. 두 사람은 부부가 되어 행복하게 살게 된 거예요.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마음이 안식할 곳을 찾고요. 육적으로 복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요. 하루를 살아도 사랑하며 행복해야 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25에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시면서요. 아담과 하와를 부부로 맺어주신 후 사랑하며 행복을 누리며 살길 원하셨던 거예요. 그리고 잠언의 지혜서(잠 5:15-20)나 아가서에 보면 부부의 행복한 성생활을 강조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유교의 성관념에 사로잡혀서요. 성생활을 죄악시하거나 세속적으로 받아들여서요. 금욕주의에 사로잡히기 쉬워요. 그리하여 우리가 진정으로 그 사랑의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느냐는 거예요.

<예화> 새집으로 이사간 부부 이야기

그래서 이러한 부부의 사랑의 갈등에 대해서 고린도전서 7:3-5에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분명히 증거하시지 않아요? 이제라도 남편은 그 아내에 의한 성적 의무를 다하고요. 아내도 그 남편에 대한 성적 의무를 다하면서요. 우리가 기도나 금식을 하거나요. 몸이 아플 때나 마음이 많이 상했을 때를 제외하고요. 서로 원할 때 언제든지 응해줌으로써 서로 거절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서로를 사랑으로 받아줌으로써 사탄이 우리 부부 사이를 더 이상 시험하지 못하도록 해서요. 주님 안에서 행복해야 해요. 그리할 때 부부의 사랑이 더욱 더 깊어지면서 주님 안에서 진정으로 행복하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조지 존슨(George Johnson)과 마가렛 클라크(Margaret Clark)부부 이야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어요? 우리가 결혼한 지도 벌써 10년, 20년, 30년, 40년, 50년이 금방 다 지나가 버렸고요. 이제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도 모르고요. 그것마저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어느 날 갑자기 떠나가야 하는데요. 우리 가운데에는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내를 갑작스럽게 떠나보내고요. 후회와 슬픔 가운데 살아가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아요? 우리가 사랑하며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도 짧은 인생인데요. 이제 우리의 남은 여생이라도 마음의 안식처부터 찾고요. 육적으로도 복되게 살고요.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 때 우리 모두 다 진정으로 주님 안에서 행복한 가정을 회복하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