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감동(31)                 우리가 버려야 할 신앙              열왕기상 3:1-3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3대 왕이 된 후 스스로 높여 왕위 즉위식을 가졌던 아도니야와 그를 따르던 육적인 무리들을 다 처단하고 그 다음에 첫 번째로 한 일부터 심각한 문제가 드러난 거예요. 그러므로 솔로몬 왕의 신앙에 무엇이 문제인가를 보면서 우리도 그러한 문제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말세 마지막 때 우리가 영적으로 잘 분별하여 버려야 할 잘못된 신앙이 무엇인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기복주의 신앙을 버려야 함
본문 1절 상반절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
솔로몬의 첫 번째 실수는 그가 왕이 되자마자 이방여인과 결혼한 것이었어요. 사실 그가 애굽(이집트)의 공주를 아내로 맞이한 것은 남방의 강국의 사위에 되어서 남방의 국방을 안정되게 하기 위한 정략결혼이었던 거예요. 그러나 이방여인과의 결혼은 신명기 7:3-4에서도 여호수아 23:12-13에서도 장래가 불행하게 될 것을 이미 경고하셨던 거예요. “혼인관계를 맺었다(made an alliance with)”는 ‘ןתֵּחַ(핫텐)’이라는 단어가 항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부정적인 의미의 결혼에 대해서 사용되었는데(신 7:3, 수 23:12). 결국 솔로몬 왕의 남방의 국방을 위한 정략결혼이 오히려 큰 역효과를 내어서 가장 먼저는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애굽 공주의 우상 숭배로부터 시작했지만 그 다음 계속해서 모압, 암몬, 에돔, 시돈, 헷 여인에 이르기까지 이방여인들에 의해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의 결정적인 악영향을 받고 말아요.

그리하여 결국 솔로몬 왕의 사후에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하게 될 것을 경고하시게 되고(왕상 11:1-13). 뿐만 아니라 바로 즉 애굽 왕의 백성들을 억압과 폭력으로 다스리는 영향을 받아서 그것이 그 아들 르호보암에게 결정적인 악영향을 미쳐서 결국 나라가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분열하는 큰 불행을 겪고 만 거예요. 이처럼 솔로몬 왕은 자신의 안정과 축복만을 구하는 기복주의 신앙을 버리지 못함으로 인해 애굽 공주와의 결혼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움으로 인해 그 자신과 자식의 종말의 불행을 예상케 하는 큰 패착을 두고 만 거예요.

그것은 말세 마지막 때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거예요. 우리가 복을 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나 자손들의 육신을 위해서 복을 구하는 것이 기복주의 신앙이고 주님과 고통 당하는 이웃을 복을 구하는 것은 복음주의 신앙인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후서 6:14-17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 단호히 명령하신 거예요.
예화)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의 결혼발표-결혼 상대는 JTBC TV의 ‘팬텀싱어’의 우승팀이었던 포레스텔라의 멤버인 성악가 고우림-부친이 대구 이주민선교센터의 고경수 목사님

그래서 요한일서 2:15-17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고 분명히 약속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자녀들의 영원한 은혜와 축복과 행복을 바란다면 인간의 기복주의 신앙에 의한 불신자와의 멍에를 함께 메는 것을 기필코 막아서 복음주의 신앙으로 오히려 주님과 고통당하는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며 살아갈 때 진정으로 일생토록 천국의 축복과 행복의 감격 속에 살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인본주의 신앙을 버려야 함
본문 1절 하반절 “......다윗 성에 데려다가 두고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
솔로몬 왕은 애굽 공주와 결혼을 했지만 왕궁이 없었어요. 그래서 다윗 성(예루살렘)에 머물면서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 건축을 시작해요. 그런데 우리가 열왕기상 6:38-7:1에 보면 “열한째 해 불월 곧 여덟째 달에 그 설계와 식양대로 성전 건축이 다 끝났으니 솔로몬이 칠 년 동안 성전을 건축하였더라 솔로몬이 자기의 왕궁을 십삼 년 동안 건축하여 그 전부를 준공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어요.

솔로몬 왕이 성전을 건축할 때는 7년이 걸리고 자신의 왕궁을 건축할 때는 13년 즉 약 두 배를 더 할애해요. 다시 말하면 성전건축에 걸린 시간이나 물자나 재정이나 수고나 정성까지도 두 배나 더 자신의 왕궁건축에 쏟았을 뿐만 아니라 마치 성전건축이 자신의 왕국 건축 때문에 방해를 받았다는 것처럼 암시해요. 실제로 솔로몬 왕은 성전 건축보다 자신의 왕궁을 건축하는데 더욱 마음을 두었다는 사실을 본문 가운데서 강조하고 있어요. 솔로몬 왕의 인간 위주의 인본주의 신앙이 그 자신의 또 다른 문제였던 거예요.

인간의 사고나 감정이나 의지 중심의 인본주의 신앙으로 인해 가장 많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우리의 삶 가운데 이렇게 생겨나요. 내 일과 주님의 일이 겹치고, 내 시간과 주님의 시간이 겹치고, 내 물질과 주님의 물질이 겹치고, 내 수고와 주님의 수고가 겹치고, 내 가정과 주님의 교회가 겹칠 때에 우리는 흔히 자신 중심의 인본주의 신앙을 가져요.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애쓰고 수고해도 결코 우리의 뜻대로 안돼요. 오히려 불행과 고통 가운데 하나님의 복을 잃어버릴 때가 얼마나 많아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인간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삶이 사람 중심이 아니라 주님 중심되어야 하고요. 사람의 편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희생을 해야 하고요. 사람의 뜻을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하는 거예요. 그리할 때 인생의 가장 소중한 지혜서인 잠언 16:3, 9에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고 분명히 우리를 깨닫게 해주시는 거예요.
예화) 천만우 안수집사님 · 김산록 권사님의 가정-아버지 목사님께서 평생 12개의 교회 개척

여러분, 우리가 육신적으로는 어리석고 미련해 보일지 모르지만 변함없이 하나님의 나라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헌신, 봉사, 충성을 다하면서 우리가 더 이상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 신앙의 삶을 살게 되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우리의 여생과 자손들을 책임져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에게 마태복음 6:33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분명히 약속하세요. 인간 중심으로 내 자신과 내 가정을 먼저 챙기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요.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통치, 인도, 섭리)와 하나님의 의(올바르고 기뻐하심)을 먼저 구하면서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고통 당하는 이웃을 먼저 섬길 때 나머지 우리의 모든 삶의 필요를 모두 다 분명히 채워주시는 거예요. 그러므로 말세 마지막 때에 우리가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 신앙을 완전히 버리고요.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 신앙으로 철저히 살아갈 때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모든 삶의 필요를 차고 넘치도록 부어주시고 채워주시고 갚아주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세속주의 신앙을 버려야 함
본문 2-3절 “그 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솔로몬 왕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그들이 성막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요. 성전이 건축이 안됐다고 다윗 성인 예루살렘으로부터 불과 서쪽으로 14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기렷여아림에 있는 성막에 가서 제사를 드리지 않고요. 산당에서 백성들이 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한 거예요.
솔로몬 왕은 백성들이 이방신을 섬겼던 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을 묵인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애굽 등 이방여인을 왕비로 맞이했기 때문에 그러한 산당에서의 제사가 그렇게 문제될 것이 없었던 거예요.

더구나 솔로몬 왕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했다고 하는데요. ‘다윗의 법도’라는 말은 구약성경에 본문에 한 번밖에 나오지 않는 특별한 표현이에요. 솔로몬 왕이 여호와를 사랑했다면 여호와의 법도를 따라 행해야 하지요. 왜 ‘아버지의 법도’를 따르냐는 거예요. 더구나 아버지 다윗 왕은 산당에서 제사를 드린 적이 없는데 왜 자신은 드리느냐는 거예요. 솔로몬 왕은 성전이 건축되기 전이라고 한다면 마땅히 성막에서 제사를 드렸어야 했는데요. 솔로몬 왕은 신앙이 없는 백성들과 똑같이 자신의 편의대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세속주의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어디서나 제사를 드려도 된다는 또 하나의 문제를 안고 만 거예요. 그리고 그러한 산당에서의 세속주의 신앙은 여호와의 성전이 건축된 후에도 그의 자손들인 아사 왕(왕상 15:14), 여호사밧 왕(왕상 22:43), 요아스 왕(왕하 12:3), 아마샤 왕(왕하 14:4), 아사랴 왕(왕하 15:4), 요담 왕(왕하 15:35)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불행을 겪고 말아요.

그것은 오늘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에요. 말세 마지막 때가 되니까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살아가는 모든 것이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는 세속주의 신앙이 점점 교인들의 마음을 뒤흔들어서요.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압력에 굴복하여서 결국에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 사람들의 기준이나 편의나 이익을 다 따라가고 말아요.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신앙이 아니에요. 세속주의인 거예요. 사실 우리가 아무리 애쓰고 수고하며 세상 방식으로 살아도 이 세상에서의 삶은 다 헛된 거예요. 그래서 평생을 세상의 부귀, 영화, 향락을 가장 많이 누렸던 솔로몬 왕이 인생의 말년에 전도서 1:2-3에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   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고 탄식하지 않아요? 그러고 나서 생의 마지막 순간에 전도서 12:13-14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고 그의 인생의 고백의 끝을 맺지 않아요? 
예화)성원용 선교사님이 쓴 「위그노처럼」이란 책- “위그노들은 예배에 생명을 걸었다”는 결론적인 선언

교회의 생명은 예배에요. 우리가 예배만 살면 다 살아나고 다 이겨내고 다 영광 돌리게 되는 거예요. 아합과 이세벨의 박해시대 때에도 외롭게 갈멜산 영적 전투를 겪었던 엘리야 선지자뿐만 아니라 바알 산에서 무릎을 꿇지 아니한 칠천 명을 남겨두었듯이 저희 치유하는 교회를 비롯해서 전국에 세속에 물들지 않은 복음주의 교회의 목사님, 성도님들이 끝까지 복음주의 신앙을 지켰던 거예요.

말세 마지막 때 주님의 재림이 더욱 가까울수록 앞으로도 더욱 극심한 전염병이나 지진이나 태풍이나 쓰나미나 기근이나 핍박이 계속해서 닥쳐올 거예요. 그때 우리가 이번처럼 더 이상 세속주의 신앙에 우리의 예배가 흔들려서도 안돼요. 오히려 우리는 끝까지 우리의 신앙생활의 표준이 되는 성경에 근거한 복음주의 신앙을 사수하면서요. 끝까지 흔들림이 없이 예배의 자리인 성전으로 나아와야 하는 거예요. 그래야 평생토록 주님 안에서 진정으로 은혜 받고 축복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예화)청년부 농촌전도보사활동-무사귀환/ 코로나 때 위임목사님의 결단으로 드린 카타콤 예배-지켜주신 하나님

우리는 말세 마지막 때 우리는 성경에 근거한 복음주의 신앙의 유사품들인 기복주의 신앙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바 되어 큰 영광을 돌리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