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감동(44)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열왕기상 13:1-10

북왕국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고요. 우상을 숭배할 산당들을 짓고요. 레위인이 아닌 보통 백성을 제사장으로 삼고요. 하나님의 절기도 자기마음대로 바꾸고요. 자신이 나서서 분향을 하게 되니깐요. 남왕국 유다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나 개혁하는 것을 보면서요. 오늘 제505주년 종교개혁주일을 맞이하는데요. 늘 말씀드리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종교(Religion) 개혁이 아니라 신앙(Faith) 개혁이기 때문에 ‘종교개혁주일’이라는 단어보다는 ‘신앙개혁주일’이라고 해야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칭명으로 종교개혁자들은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semper reformanda)”는 슬로건을 내걸고 개혁해 나갔는데요. 우리는 구약성경 순서대로 말씀을 나눠 가는데요. 어떻게 주님께서 우리가 종교개혁주일을 맞이한 것을 아시고요. 종교개혁주일에 꼭 맞는 말씀을 주시는지 다시 한 번 전율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러면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어떻게 개혁해야 할 것인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가장 먼저 자신부터 개혁되어야 함
먼저 본문 1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보라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제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 여기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은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렀어요. 마침 여로보암 왕이 벧엘의 단에서 직접 분향을 하여 우상숭배를 하였던 거예요. 이 하나님의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요. 교회 역사학자인 요세푸스(Josephus)는 ‘잇도’(대하 9:29)였다고 하기도 하고요. 초대 교부였던 터툴리안(Tertullian)은 ‘스마야’(대하 12:15)였다고 추측해요. 그러나 그가 비록 무명의 예언가였지만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요. 남왕국 유다에서 북왕국 이스라엘까지 가서요. 그것도 우상 숭배를 하던 여로보암 왕을 면전에서 책망할 정도로 용기있는 사람이었어요. 다시 말하면 그는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주목할 수 있길 바랍니다.
<예화: 중국 내륙 선교의 아버지,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 선교사>

그래서 주님께서 에베소서 5:8-9에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강조하였던 거예요. 우리가 어두운 세상에서 빛의 자녀가 되었다면요. 누가 보더래도 빛의 자녀로서 
빛의 열매인 착함(goodness) 즉 마음이 남을 해하려들며 악하지 않고요. 착해야 하고요. 의로움(righteousness) 즉 주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한다는 거예요. 이 의는 인간으로부터 인정받는 정의(Justice)가 아니라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공의(Righteousness)를 의미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간의 의를 요구하지 않으세요. 왜냐하면 인간의 의에는 한계가 있고요.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무리 의로운 인간도 다 ‘도토리 키재기’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는 칭의 즉 공의를 요구하신 거예요. 그렇게 의롭다 함을 인정받게 되면 더 나아가 진실함(truth) 즉 삶이 결단코 겉과 속이 다르거나 앞과 뒤가 다르거나 전과 후가 다르거나 하지 말고요. 초기일관 거짓되지 않고 진실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우리가 목사, 장로, 권사, 집사가 되었다고 하면서도요. 마음들이 얼마나 악하고요. 남을 해하려고 하고요. 죽일려고 달려들어요.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고요. 진실하지 못하며 거짓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러면서도 남에 대해서는 얼마나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고 공격적이에요? 완전히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듯이 남을 탓하는 사람들일수록 얼마나 자기 착각에 빠져서요. 자신은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고요. 거짓되고,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삶을 살다가요. 그러다가 어느 날 인생을 끝내고 마는 거예요. 그러한 사람들은 평생 종교생활을 한 종교인이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도 아니고요. 빛의 자녀도 아니어서요. 결단코 빛의 열매를 맺을 수가 없는 거예요.
<예화: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사나이’, 아모 하지 할아버지>

우리가 불신앙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인생의 구주요, 주님으로 영접하게 될 때 우리의 지난 날의 어떠한 죄악도 다 씻김을 받고요. 빛의 자녀가 되는 거예요. 이처럼 우리가 빛의 자녀가 될 때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빛의 열매는 자연스럽게 맺어지고요. 더 나아가 내가 개혁되지 않으면 우리의 가정도, 교회도, 세상도 더 더욱 변화를 기대할 수가 없는 거예요.
<예화: 체코의 종교개혁자 얀 후스>

그러므로 우리도 한 번 왔다가 떠나가는 인생, 우리 자신부터 개혁되고 변화되어서요. 우리의 남은 때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베드로후서 3:11-12 상반절에 잘 증거하고 있어요.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명령하셨던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요.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고요. 환난과 핍박이 닥쳐와도요. 남을 탓하기 이전에 가장 먼저 우리 자신부터 철저히 개혁해 나갈 때 여기에 우리의 종교개혁의 근본적인 의미가 있고요. 언젠가는 우리의 가정도, 교회도,  세상도 개혁될 그날이 꼭 다가오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하나님의 말씀으로 개혁을 해야 함
계속해서 본문 2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무명의 예언자는 제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치기 시작해요.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고 예언하게 돼요. 다시 말하면 남왕국 유다의 요시야 왕(주전 640-609)이 일어나서요. 제사장을 이 제단에서 불태운다는 예언이었어요. 이 예언은 정확하게 성취되어서요. 열왕기하 23:15-20에 보면 약 300년 후에 나타난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 때 벧엘의 제단과 산당을 불사르고요. 묘실의 해골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사르게 돼요.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무오하고 일점 일획도 변함없이 성취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의 신앙생활이나 교회생활의 모든 개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나가야 하는데요. 우리가 수많은 개혁을 시도하면서도요. 개혁에 실패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개혁을 평생토록 외치면서도요. 자신의 삶 가운데에는 어떠한 개혁도 이루지 못하고요. 어떠한 삶의 변화도 없어서요. 아무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한 신앙생활을 해온 거예요. 왜냐하면 자신의 이익이나 감정이나 인간관계에 의해서요. 인간의 여론이나 자기주장이나 말 뿐인 구호에만 그치기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불행과 고통으로 몰고 가는 영혼의 죄악과 마음의 상처와 육신의 질병을 치유받기 위해서요. 히브리서 4:12에 증거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하나님의 말씀의 치유의 은혜를 체험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이 하나님의 치유의 말씀에 근거해서요. 우리 자신을 치유하고 개혁해 나가야 하는 거예요. 그리하면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요.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변함없이 기필코 성취되고 실현되는 거예요. 
<예화: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
<도서: 「제네시스(Genesis, 시작, 기원, 기본)」, 이성희 목사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잘 증거 된 이 개혁신앙의 핵심 진리를 마음으로 확신하고요. 입술로 시인하면서요. 삶으로 체험하면요. 우리는 어떠한 환난 가운데서도 변함없이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흔들림이 없이 우리의 삶을 개혁시켜 나가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베드로전서 1:24-25에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고 분명히 증거하시지 않아요?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환난 속에서도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신앙을 개혁하고 지켜 나갈 때 기필코 일생토록 우리의 가정도 교회도 이 세상에서도 새롭게 변화되는 삶 을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예배를 중점적으로 개혁해야 함
마지막으로 본문 3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그 날에 그가 징조를 들어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징조라 제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하매” 그 날에 예언의 보증으로 징조(sign)를 보여주시는데요. 장차 이 벧엘의 제단이 갈라지고요. 그 위에 재가 쏟아져 버릴 것이라고 예언해요. 그러자 여로보암 왕은 그의 우상 종교를 확고히 세우기 위해 분향을 하는데요. 유다에서 온 무명의 예언자의 외침에 큰 충격을 받게 돼요. 그래서 그 예언자를 처치할 마음으로 그의 손을 펴서요. 체포령을 내렸는데요. 그 순간 자신의 편 손이 말라서 마비가 되어서요. 다시 거두지를 못해요. 이처럼 여로보암 왕의 편 손이 마름과 동시에 무명의 예언자의 외침대로 제단이 갈라지고요. 그 제단에 바친 제물이 다 타버린 재가 쏟아져요. 하나님께서 여로보암 왕이 우상종교를 용납지 않으셨다는 뜻이었어요. 결국 여로보암 왕은 여호와께 은혜를 구해서요. 마비되었던 손이 다시 풀려져요. 그래서 자신의 집의 절반을 주는 최대의 보상을 하겠다고 하지만요. 이 무명의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떡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요.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단을 개혁하고요. 다시 유다 땅으로 되돌아가게 돼요.
<예화: 이태원 할로윈 데이 참사>

우리는 10월 31일을 종교개혁주일로 기념합니다만 이 의미 깊고 중요한 날을 사탄은 ‘할로윈(Halloween)’이라는 날을 만들어 맞불을 붙이는 거예요. ‘Hallow’는 영어의 고어로 ‘성인(saint)’을 뜻하는데요. 캐톨릭교회의 모든 성인 대축일(만성절) 전 날인 10월 31일 밤을 모든 성일 대축일 전야제로 ‘All Hallows Even(ing)’를 줄여서 ‘Halloween’이라고 하는데요. 실제로는 이 날이 성인들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요. 오히려 귀신들의 축제로 변해서요. 그들이 착용하는 가면들을 보면 귀신가면이 대부분이고요. 세계적으로 유행을 시켜서요. 우리나라에까지 들어와서요. 어린아이들까지 이런 귀신놀이에 세뇌키시고 있어요. 이는 모두 다 종교개혁일을 퇴색시킬려는 사탄의 계략임을 영적으로 깊이 각성하고요. ‘할로윈 데이(Halloween Day)’ 대신 우리는 ‘할렐루야 데이(Hallelujah Day)’로 역맞불작전으로 나가야 하는 거예요. 
<예화: 장로교의 창시자인 존 캘빈(John Calvin)은 명저서인 「기독교강요」>

이를 위해서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되고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요.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복을 누리고요.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요한복음 4:24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고 강조하는 것은 예배 드리는 자가 영(the Spirit, 성령)과 진리(the truth, 성경)에 근거하여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마음의 자세를 강조했던 거예요. 다시 말하면 예배는 하나님의 성령과 말씀에 근거해서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려야지요. 내 자신이 원하는 욕구대로 내 자신을 만족시키는 예배를 드려서는 안된다는 거예요. 그것은 자기 만족을 위한 종교의식이나 무속행위에 불과한 거예요. 이렇게 진정한 예배의 신앙을 회복한 후에 우리가 세상 일에 애쓰고 힘들이지 말고요. 오히려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행복과 축복의 통로인 예배에 열심을 내어야 한다고 성경은 강조하고 있어요. 그래서 히브리서 10:23-25은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항상 있어야 할 것들인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결단코 잊지 말고요. 말세 마지막 때일수록 모이기를 폐하는 믿음 없는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따라가지 말고요. 초대교회 성도들이 매일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던 것처럼이요. 힘써 모여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예배생활의 열심을 강조하고 있어요. 다시 말하면 비대면(On-line)예배 등 인간의 편의 위주의 비성경적인 예배가 아니라요. 교회 예배당에 나가서요. 믿음의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정한 예배를 개혁하게 될 때 하늘 문이 열려지고요. 하나님과 영적으로 깊은 교제를 나누면서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 받으시는 진정한 은혜와 축복과 행복의 감격이 넘치는 살아있는 예배로 개혁되고 변화되고 열매 맺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영등포노회노회장으로 선출된 황진웅 장로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또 다시 개신교의 생일인 종교개혁주일을 맞이하면서요. 다른 사람의 신앙이나 삶에 대해서 탓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가장 먼저 우리 자신부터 철저히 개혁해 나가고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개혁해 나가고요. 예배를 중점적으로 개혁해 나갈 때에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 앞에서나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세상에서나 사랑받고 존경받고 감동을 주고 변화를 일으키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모두 다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