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열매(2)
위기를 극복하는 길 (열왕기상 17:17-24)

우리의 인생에는 갖가지 위기가 닥쳐와요. 우리가 살다보면 건강의 위기도 닥쳐오고요. 경제의 위기도 닥쳐오고요. 가정의 위기도 닥쳐오고요. 갖가지 위기들이 닥쳐와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가 외아들을 잃어버린 것은 가장 감당하기 어려운 인생의 가장 큰 위기 였을거예요. 그런데 이 사르밧 과부가 외아들을 잃은 최대의 위기를 어떻게 이겨내는가를 보면서요. 우리의 인생에 끊임없이 부딪혀오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불평이나 원망을 하지 말아야 함(18절)
본문에 ‘주모’라고 하니까 우리는 ‘술집 여자’를 착각하기 쉽습니다만 히브리어 원어에 ‘תלעֲַ֣בַּ(빠알라트)’라고 해서요. 영어로 ‘mistress’로서 ‘여주인’이란 뜻인데요. 바로 지난 번에 계속되는 사르밧 과부를 말하는 거예요. 이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병이 들어서요. 증세가 점점 심히 악화되다가요.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만 거예요. 그런데 이 여인은 하나님의 종 엘리야 선지자에게 가서요.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이러한 일이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요. 또 그 죗값으로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하고 불평과 원망을 쏟아부어요. 여러분, 오늘 본문 이전 12절에 보면 지난 날 이 사르밧 과부는 양식이 다 떨어져서 마지막 음식을 아들과 함께 해먹고 죽을려고 했잖아요? 그런데 주의 종을 먼저 대접하는 믿음으로 기적이 일어나서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는 기적이 일어나서요.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은 다 잊어버리고요.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니까 엘리야 선지자가 무슨 책임이 있다고요? 애꿎은 하나님의 종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을 보세요. 이것이 바로 지난날의 우리의 모습인거예요.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복음으로 거듭나고요. 십자가의 사랑으로 치유 받고요.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성령 충만하다고 하면요. 절대 지난 날 받은 은혜를 잊을 수가 없고요. 평생토록 다 갚아야 할 뿐만 아니라요. 더 이상 불평하거나 원망할 수가 없는 거예요. 더 나아가 성경은 오히려 상대방이 악하게 나온다고 할지라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라고 말씀하세요. 그래서 시편 37:7-8에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고 명령하시면서요. 여기에 우리가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할 3가지 이유를 말씀하시는데요. 가장 먼저는 여호와께서 분명히 살아계셔서 선악간에 심판하시기 때문에 잠잠히 참고 기다리라는 거예요. 더구나 상대방이 형통하고 악한 꾀를 이룬다고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 때문에 더 더욱 불평하지 말아야 하고요. 설령 상대방이 악하다고 해도 내가 분노하면서 불평하는 것 자체가 악한 일이기 때문에 더 이상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라는 거예요.

간증) 부모님이나 교인들, 목회자들 앞에서 억울한 일이 있어도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겨 참고 기다려 오히려 복을 받게 된 위임목사님 이야기
간증) 한 장로님에게 찾아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도 주님만 바라보고 맡겨진 사명에 충성만 다하자며 격려한 위임목사님의 이야기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어떠한 위기 가운데서도 주님의 은혜만 기억하고 감사하면서요. 결단코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요. 오히려 감사하며 충성만 다할 때에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선악간에 다 심판하시고요. 기적적인 은혜와 축복과 행복으로 어떠한 인생의 위기도 다 극복하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부르짖어야 함(20절)
여러분, 엘리야 선지자 입장에서 보면 사르밧 과부가 과거의 은혜를 잊지 못하고 달려들 때 정이 뚝 떨어졌을 거예요.
그리고 자신의 잘못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고요. 더욱이 이미 죽은 아이인데 이제 와서 어떻게 하느냐는 말이에요. 그래서 그냥 외면하고 지나쳐도 아무런 잘못이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엘리야 선지자는 선한 목자였기에 사르밧 과부에게 그녀의 아들을 달라고 해서서요. 자신이 거처하는 3층 다락방에 올라가요. 당시 이스라엘 집 구조는 1층에는 부엌, 창고, 가축 우리가 있었고요. 2층에 가족과 종들의 주거 공간이 있었고요. 3층 다락방은 다른 출입구로 드나들며 주로 창고로 사용하거나 곡식을 말리는 장소였는데요. 그 3층 다락방을 엘리야 선지자가 임시 거처로 사용했던 거예요. 아들을 안고 3층 다락방의 자기 침대 위에 누이고요.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해요.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님께서 이 땅에 3년 6개월 동안 가뭄을 내리신 것도 부족하셔서 또 제가 거하던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하고 울부짖은 거예요. 죽은 과부 외아들을 불쌍히 여기고요. 외아들의 생명을 주님께 맡기고요. 간절히 믿음으로 부르짖은 엘리야 선지자의 기도가 있었기에 다시 살아나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 거예요. 우리도 인생의 위기가 닥쳤을 때 기도하라는 주님의 뜻을 깨닫고요. 엎드려 기도해야 기적이 일어나는데요. 대부분 교인들은 지난 날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지 못한 교인들일수록 기도는 안하고 서로 불평하고 원망만 할 뿐만 아니라요. 낙심하고 좌절하고요. 절망하고 인생을 포기할 생각부터 하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는 어떠한 기적도 일어나지 않고요. 위기 속에서 헤어 나올 길이 없는 거예요.
예화) 불가능한 형편과 상황속에서도 어머니의 끈질긴 부르짖는 기도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게된 림형석 목사님의 3형제 이야기
간증) 지난 주 새벽기도 시간에 위임목사님께 안수기도 받고 다음날 기도응답을 받았다고 말씀해주신 성도님의 이야기

그러므로 아직까지도 기적의 응답을 체험하지 못하고요. 앞길이 안 열리고요. 문제의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면요. 지금까지의 형식적이고 습관적이고 무능했던 기도 패턴을 과감하게 다 내어버리고요. 금년부터라도 우리의 기도의 패러다임(paradigm, 인식의 틀)과 자세를 완전히 뒤바꾸어야 해요. 그리고 어떠한 위기 속에서도 살아계신 하나님만 믿고 부르짖을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오늘날도 우리의 믿음으로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기적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고요. 인생의 어떠한 위기도 능히 극복하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불타는 사랑으로 섬겨야 함(21절)
엘리야 선지자는 부르짖어 기도한 것도 부족하여 자신의 몸을 죽은 아이의 몸 위에 세 번이나 엎드리고요. 세 번이나 주님께 간구한 것은 베드로 사도가 고넬료 가정 전도하기 위해 기도할 때 매번 환상(행 10:16)을 본 일이나 바울 사도가 자신의 육체의 가시의 고통으로 인해 세 번 간구한 일(고후 12:14) 이전에 선지자로서는 전무 후무한 세 번에 걸친 특이한 기도였어요. 그만큼 그의 기도가 간절히 기도했다는 뜻이에요. 사실 사르밧 과부에게 있어서 이 외아들은 자신의 생명보다 귀한 존재였거든요. 얼마나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리고 싶었으면 이렇게 죽은 시신 위에 엎드려서요. 온 몸을 한 몸처럼 일치하여서요. 자신의 생명같이 되살아나기를 간절히 기도할 수 있었겠어요? 그것도 3번씩이나 되풀이하면서요. 온 몸으로 사랑을 쏟았던 거예요. 당시 고대 근동지방에서는 이렇게 해서 환자의 질병이 치유자의 몸으로 옮겨진다고 믿어서요.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이 아이를 살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그렇게까지 사랑의 정성을 쏟았던 거예요. 그 결과 기적이 일어나서요.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요. 이 아이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거예요. 이처럼 죽은 자의 기적의 부활을 일으킨 사례는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3차례에 걸쳐서 죽어가는 영혼에 대한 불타는 사랑으로 회당장 야이로의 어린 딸(막5:21-24)과 과부의 청년 외아들(눅7:14-15)과 장년 나사로(요11:43-44)를 살리신 적이 있으셨는데요. 구약 시대의 엘리야 선지자와 그의 제자였던 엘리사 선지자(왕하 4:35-37), 신약시대의 베드로 사도(행 9:40-41)와 바울 사도(행 20:10)도 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요. 그 사랑이 강력한 동기가 되어서요. 죽은 생명을 살려내는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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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옛말에 “부모님은 잃으면 산에다 묻고 자식을 잃으면 부모 가슴에 묻는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주의 종으로서 자식 잃은 가정을 가장 사랑의 마음을 쏟아 돌보지 않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이해를 할 수가 없고요. 해결할 수도 없고요. 풀 수도 없는 위기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끝까지 변함없는 사랑의 마음을 쏟으며 인내하면서 기다리는 거예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사랑이 모든 것을 극복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우리의 사랑으로 뭉치면 다 이겨내지만요. 아무리 복되고 형통해도 우리의 사랑이 흔들리는 순간부터 다 무너지고 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사랑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원수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원수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원수도 언젠가는 화해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그런데 그 인간반응 사랑할 수도 없고요. 용서할 수도 없고요. 화해할 수도 없다는데 우리의 사랑의 한계가 있고요. 은혜의 한계가 있고요. 축복의 한계가 있고요. 행복의 한계가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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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사랑의 승리인 거예요.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은 꼭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요. 심지어 마음에 안 드는 원수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거예요. 그래서 로마서 12:19-21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강력하게 명령하고 계세요. 그런데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하고요. 지난날의 우리의 상처의 치유가 안되면요. 우리의 마음속에 감정의 응어리가 남아 있어서요. 말 속에도 가시가 돋혀 있어서요. 서로 찌르고 찔림을 당하고요. 평생토록 지옥의 불행과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요. 결국 일생토록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 행복의 감격을 다 잃어버리고 마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원수라도 용서하지 않을 수 없고요. 불타는 사랑으로 섬기는 가운데 하나님의 기적의 치유를 체험하고요. 궁극적인 승리를 가져오고요. 넘치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면서요. 결국에는 어떠한 위기도 극복하고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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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이 사람을 변화시키고요? 무엇이 궁극적인 승리의 삶을 가져오고요? 무엇이 우리의 어떠한 인생의 위기도 이겨내게 한다고 생각하세요? 이제 남은 우리의 여생이라도 인생의 어떠한 위기 속에서도 더 이상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부르짖고요. 끝까지 불타는 사랑으로 섬겨 나갈 때 언젠가는 우리의 인생의 어떠한 위기라도 극복하게 하시고요. 더욱 은혜롭고 축복되고 행복한 여생으로 영광 돌리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