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열매(8) 어떻게 사명을 이어갈 것인가 열왕기하 2:1-14

우리가 신앙의 선조들이 이루었던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를 이어가고요. 우리 자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하는데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엘리야 선지자의 사명을 엘리사 선지자가 어떻게 이어가는가를 보면서요. 우리도 신앙의 선조들이 이루었던 사명을 어떻게 이루어 갈 것인가 이 시간도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영적인 은혜를 사모해야 함

먼저 본문 6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가니라” 엘리야 선지자는 구약성경에서 에녹(창 5:24)과 더불어 하늘나라로 곧바로 올라간 사람들로서요. 이 땅 위에서의 십자가의 사명을 다 마치고요. 하늘나라로 올라가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분들이에요. 특별히 엘리야 선지자는 모세와 더불어서 구약 성경의 대표로서요. 모세가 율법을 상징한다면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는 거예요. 그래서 구약성경을 ‘율법과 선지자’로 상징하는 말씀이 마태복음에 계속해서 나와요(마 5:17, 17:12, 22:40). 더 나아가 변화산상에서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의 만남을 구약과 신약의 만남이었던 거예요(마 17:1-8). 그런데 어떻게 구약을 대표하는 엘리야 선지자의 사역(주전 875-845: 30년 사역)을 이어서요. 엘리사 선지자(주전 848-797: 50년 사역)가 엘리야 선지자의 사역을 이어가기 위해서요. 길갈(:1)에서부터 시작하여 벧엘(:2)을 거쳐 여리고(:4)를 지나 요단(:6)에 이르기까지요. 엘리야 선지자는 계속해서 3번이나 떼어 놓을려고 했지만요. 엘리사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하고 3번씩이나(:2, 4, 6) 맹세하면서요. 엘리야 선지자의 뒤를 따라가요. 그리하여 길갈(‘바퀴’)에서 죄의 바퀴를 굴러내고요. 벧엘(‘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면서요. 여리고(‘달’)에서 세상의 빛을 비추고요. 요단(‘죽음의 강’)에서 자아가 죽고 가나안의 영적 승리의 축복의 삶을 살아가게 되요. 이처럼 엘리사 선지자는 영적인 은혜를 사모하면서요. 엘리야 선지자를 줄기차게 따라가면서요. 더욱 깊은 영적인 세계를 체험할 수 있었던 거예요. 우리도 이처럼 평생토록 영적인 은혜를 사모하며 살아가야 해요. 전에는 ‘육에 속한 사람(The person without the Spirit)’이어서요. 고린도전서 2:14의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는 말씀처럼 성령님을 모시지 못해서요. 성령님의 일들을 받지도 못하고요. 영적인 일들이 어리석게 보이고요. 알 수도 없었고요. 영적으로 분별할 수도 없었던 거예요. 그러나 성령과 말씀에 의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영적으로 어린 아이와 같은 ‘육신에 속한 자(The worldly person)’가 되어서요. 고린도전서 3:3의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는 말씀처럼 시기와 분쟁을 벗어나지 못하고요. 불만과 불평만 터뜨리면서요. 평생을 영적인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다 잃어버리고 살아요.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영적으로 성장해서요. ‘영적인 사람(The spiritual person)’이 되면요. 고린도전서 2:15-16의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는 말씀처럼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영적으로 분별하지만요. 아무도 그들을 판단할 수가 없어요. 그들은 온유와 겸손의 주님의 마음을 잘 알고요.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자들인 거예요. 그러한 영적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요. 귀하게 쓰시고요. 그들은 일생토록 날마다 천국의 축복과 행복의 감격 속에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도 더 이상 영적으로 어린 아이와 같이 하나님과의 관계나 사람들의 관계가 갈등과 불화 가운데 살지 마시고요.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 하니이다”(시 42:1)는 말씀과 같이 더 이상 육신의 욕심이나 세상의 욕망을 사모하지 마시고요. 영적인 은혜를 더욱 깊이 사모하면서요. 3월 첫 주부터 시작하는 치유, 양육, 사역 성경공부에 나와서요. 말씀의 은혜로 충만한 신앙부터 회복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인 3:18에 베드로 사도가 일생을 마무리  하면서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고 명령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영적인 은혜를 사모하며 나아갈 때 우리는 더욱 충만한 천국의 축복과 행복의 감격 속에 하나님의 사명을 계속해서 이어가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갑절의 능력을 구해야 함

계속해서 본문 9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엘리야 선지자는 하늘나라로의 그의 승천이 임박한 것을 알고요. 엘리사 선지자에게 그가 승천하기 전에 구할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요. 그 때 엘리사 선지자는 엘리야 선지자의 성령님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자신에게 있게 해달라고 구해요. 과거 개역성경에서 ‘영감(inspiration)’으로 번역된 ‘역사’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חַ֙וּר֙(루아흐)’라고 해서 직역하면 ‘바람’ 또는 ‘성령(Spirit)’이라는 뜻인데요. 본문에서는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영적 능력(Spiritual power)’을 의미했던 거예요. 그것도 ‘갑절’이나 있게 해 달라고 한 것도 히브리어로 ‘םיִנַ֔שְׁ(쉐나임)’이라고 해서  ‘두 몫(a double portion)’으로 해석해서요(신 21:17, 슥 13:8). 부모의 유산을 상속할 때 둘째 아들에게 주는 ‘한 몫(1/3)’에 비해 맏아들에게 주는 ‘두 몫(2/3)의 의미인 거예요. 그래서 그런지 엘리야 선지자가 불 수레와 불 말들에 의해 하늘나라로 올라갈 때 엘리사 선지자가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12)하고 부르는 장면이 나와요. 이처럼 엘리사 선지자는 엘리야 선지자의 두 배의 능력보다도요. 아들 같은 수제자에게 다른 제자들보다 주는 두 몫의 능력을 받길 원했던 거예요. 그런데 엘리사 선지자의 이러한 갑절의 능력을 구하는 믿음이 하늘 보좌에 상달   되어서요. 실제로 엘리사 선지자는 엘리야 선지자의 갑절의 기적의 능력들을 행한 것은 열왕기하에서 앞으로 계속해서 확실히 찾아볼 수 있어요. 우리도 하나님께서 갑절의 능력을 구하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 주신 거예요. 사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보다 더 크게 많이 할 수 있는 비결은 우리의 가정의 배경이나 인물이나 학력이나 육체적인 힘이나 세상적인 능력이나 재력으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니에요. 그러면 이러한 세상적인 기준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큰 사명을 감당하게요.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큰 사명을 감당하신 분들을 보면 신실한 신앙의 가문에서 태어난 경우가 많지만요. 인물도 떨어지고요. 건강도 안 좋고요. 학력은 형편없고요. 세상적으로 내세울 것이 별로 없는 분인데도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예화> 연세대 김주환 교수가 쓴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책

그래서 스가랴 4:6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고 분명히 성령님에 의한 영적 능력을 강조하셨던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그러한 성령님의 갑절의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길이 없어요. 늘 강조하지만 마태복음 17:20-21에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고 증거하셨듯이요. 우리가 십자가의 권능을 믿는 믿음과 간절히 믿음으로 부르짖는 기도와 금식하면서라도 매어 달리는 믿음이 결국 갑절의 능력을 일으키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믿음대로 갑절의 능력을 부어주셔서요. 조상 적부터 섬기던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계속해서 더욱 힘 있게 이어가게 하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성령님의 능력을 행해야 함

마지막으로 본문 14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엘리야 선지자의 겉옷은 엘리야 선지자의 영적 권위와 능력의 상징이었고요. 모세의 지팡이와 같은 하나님의 능력의 도구였던 거예요. 그래서 엘리야 선지자가 하늘나라로 떠나가기 전에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8)라고 증거하듯이요. 엘리야 선지자가 겉옷을 말아 물을 칠 때 요단강물이 이리 저리 갈라져서요. 엘리야 선지자가 엘리사 선지자와 마른 땅 위를 건넜다고 하잖아요? 마치 모세가 홍해를 가르고요(출 14:16).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갈라지게 한 기적의 사건이 일어났던 거예요.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엘리야 선지자의 갑절의 능력을 받은 엘리사 선지자로 엘리야 선지자가 하늘나나를 올라가면서 떨어뜨린 그이 겉옷을 가지고 요단강물을 쳤을 때 강물이 이리 저리 갈라져서요. 엘리사 선지자가 건너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거예요. 우리도 말세 마지막 때 이러한 성령님의 기적의 능력이 얼마나 절실한지 몰라요. 특별히 갖가지 불치의 질병이나 생계의 위협이나 가정의 불행이나 갖가지 문제 앞에서 성령님의 기적의 능력이 절실한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삶 가운데 성령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으면요. 이름뿐인 교인이고요. 말뿐인 교인이고요. 허울뿐인 교인으로 전략하고 말아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4:20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분명히 강조하시지 않아요? 엄밀한 의미에서는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도 기적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발견하지 못해서 놓치고 지나가는 기적들이 얼마나 많아요?

<예화> 박완서 작가가 ‘고백한 모든 것이 기적’

그래서 마태복음 10:1에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고 증거하고 있듯이요.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 귀신에게 사로 잡혔던 우리의 죄악과 모든 연약한 상처와 모든 질병을 치유한 능력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거예요. 이 성령님의 능력을 우리가 우리의 삶 가운데 행할 때 오늘날에도 기적은 끊임없이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치유하는 교회에 매주 이러한 기적이 끊이지 않잖아요?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주신 권능 중에 가장 크신 권능은 복음 증거의 권능인 거예요. 지옥에서 영원히 멸망당할 영혼을 구원하여서요. 천국의 영원한 생명으로 바꾸었으니 이보다 귀하고 크고 놀라우신 능력이 어디에 있겠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로 떠나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기신 유언의 말씀이 바로 사도행전 1:8의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이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삶의 가장 소중한 복음 증거의 능력을 다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지 않아요? 

<예화> 담임 목회를 나간 우리교회 젊은 부목사님 출신의 국제치유선교회 모임

여러분, 우리의 말이나 행동에 의해서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니 이보다 더 큰 기적의 능력이 어디 있어요? 그러므로 우리의 가정 에서나 세상 에서나 심지어 교회에서 조차도 영혼에 깊은 관심을 갖고요. 그들의 영혼을 살리는 기적부터 행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영혼을 살리는 지름길은 사랑의 섬김이에요.

<예화>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세 가지 의문」에 나오는 내용
<예화> 튀르키예 · 시리아 지진피해

그러므로 우리의 남은 여생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님의 능력을 행하여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부터 구원해 나가야 해요. 그렇게 성령님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아서요. 하나님께서 주신 권능을 사장시켜서는 결단코 안 되고요. 성령님의 능력을 잘 행할 때에 계속해서 성령님의 능력이 나타나시고요. 더 나아가 자손 대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명을 이어가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치유동산 이야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일생을 살아오면서 고난이 없는 인생은 없어요. 그런데 이 고난을 이겨내지 못하면 좌절과 절망 속에 인생을 끝내고 말아요. 그러나 이 고난이 치유 받고 회복 되며 충만해지면요. 오히려 그 고난 속에 들려오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명을 받고요. 우리의 일생의 사명으로 응답하게 되는 거예요. 그리하여 우리의 남은 여생 영적인 은혜를 사모하고요.  갑절의 능력을 구하고요. 성령님의 능력을 행하면서 살아가야 해요. 그리할 때 진정으로 일평생 하나님의 사명을 이어가는 의미 있고 보람 되고 복되게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