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8월 6일 주일 설교  
즐거워하고...평온하더라...
( 왕하 11:17-21) 

  연일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계속되고 폭염경보 가 심각수준으로 오르는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폭염 가운데도 변하지 않는 거리의 풍경이 개를 데리고 산책을 다니는 모습이다. 예전에는 그동안 사용해온 사람이 주로 가까이 두고 키우거나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사육하는 동물이라는 뜻의 애완동물(愛玩動物: pet) 이라는 용어가 최근 들어 동물을 사람의 쾌락(즐거움)을 위한 소유물이 아니라 친구로서 대우하자는 뜻의 반려동물(伴侶動物:companion animal)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권장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예화) 반려동물 열풍과 동물매개심리치료

그렇다면 반려견을 100마리를 기르면 관계의 결핍에서 받은 상처가 다 회복될까? 오늘 말씀의 제목대로 “즐겁고 평온한 삶”이 주어질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못하다. 
  
   지난주일 아딸리는 여자 인 악녀 여왕 아달랴와 하나님의 사람 공주 여호세바와 대제사장 여호야다를 중심으로 한 남유다의 회복에 대해 살펴보았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대제사장 여호야다를 통해 오늘의 말씀제목대로 어떻게 즐겁고 평온한 삶을 회복시키셨는고 또 우리가 즐겁고 평온한 삶을 살수 있을까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받도록 하자! 

1. 회복(回復) (17절)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요아스 왕을 세운후 가장 먼저 요아스와 백성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게 한다. 이 언약은 히브리 원어에서 언약(베리트)라는 말 앞에 (하) 라는 정관사를 넣음으로 ‘그 언약’ 이라고 말하고 있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요아스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롭게 주는 언약이 아니라 이미 출애굽기 24:3-8절 에 모세를 통해 주신 언약의 재확인임을 말하고 있다. 
이 언약은 다름아닌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가 말씀하신 율법을 지키며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언약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수직적 언약의 재확인을 통해 악녀 아달랴가 나라전체에 퍼뜨린 악한 바알숭배로 인해 흐트러진 영적인 질서를 바로잡기 시작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택하신 선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급선무 였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언약을 재확인 시켜준 것이다. 
  
  다음으로 17절 말씀 하반부에  왕과 백성 사이에도 언약을 세우게 하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원어에는 언약이라는 말이 한번만 나오며 왕과 백성사이에 라는 말만 나오지 언약을 세웠다는 말은 생략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왕과 백성 사이의 언약도 바로 하베리트 그 언약 즉 하나님과 백성사이의 언약에 근거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수직적 언약에 이은 왕과 백성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 수평적 언약은 왕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여 백성을 다스리고 보호할 것을 약속하고 백성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을 인정하고 그의 통치를 따를 것임을 다짐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서 삶을 살아나간다면서도 무엇인가 꼬이고 무엇인가 막혀있고 무엇인가 우리의 앞길에 장애물이 가득 할때에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장애요인이 무엇인가 영적으로 진단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선 후에 우리는 또 사람과의 관계도 바로 세워나가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만 바로 서면 이웃과의 관계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과의 관계는 바로 섰다 하면서 이웃과는 적이나 원수로 사는 경우가 진정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선 분들일까? 결코 그렇지 못하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에서 믿는 성도들을 다음과 같이 부른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2:15)/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3:3)
그렇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요! 편지다! 아니 그리스도의 향기요 편지가 되어야 한다! 
세상이 우리를 볼 때 예수의 향기가 나고 우리를 볼 때 예수의 이야기가 묻어나는 그런 편지가 되어야 한다. 
 
2. 정화(淨化) (18절)

  악녀 아달랴가 그의 아버지 아합과 어머니 이세벨로부터 이어받은 바알숭배의 현장이 이제 하나님과 또 왕과 언약을 맺은 백성들에게 의해 철저히 정화된다. 먼저 온 백성이 바알의 신당으로 가서 그 신당을 허물기 시작한다. 유일하신 참 신 이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회복한 백성들은 결코 바알의 신당이 존재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바알의 신당을 허물었다. 
  그 다음은 신당안에 있는 제단들과 우상들을 깨뜨리는데 ‘철저히 깨뜨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깨뜨리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샤바르’ 인데 구약성경에 약 150여번 사용된 단어로서 우상파괴와 관련된 본문에 30여번 쓰일때는 산산이 부수다..형체가 없어질만큼 완전히 빻아버리는 상황을 나타낸다. 즉 우상의 잔재가 남지 않도록 완전히 갈아서 흩어버릴 정도를 말하고 있다. 
  그 다음 가루가 될만큼 철저히 깨뜨려진 우상과 제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였다. 바알의 신당으로 찾아간 백성들이 그들을 미혹했던 바알의 우상에서 벗어나는 절차는 허물고..깨뜨리고.. 죽이는 절차였다. 그야말로 철저하게 하나님으로부터 자신들을 멀어지게 했던 바알의 신당과 우상과 제사장을 훼파하고 멸절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도 이 바알의 신당과 우상처럼 유일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많은 것들이 있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오늘 총회에서 정한 이단경계주일을 맞이하여 이단과 사이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화) 챨스킴벨 목사의 저서, When Religion becomes Evil (종교가 사악해질 때)

3. 옹립(擁立) (19-20절 상)

  하나님과 사람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바알의 신당을 허물고 제단과 우상을 깨뜨리고 바알의 제사장을 죽이는 회복의 역사를 행한후에 마지막으로 여호야다와 백부장 그리고 온 백성이 행한 일은 요아스 왕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 왕좌에 왕을 앉게 하였다. (요아스의 즉위.jpg) 악한 여왕 아달랴에 의해 모든 질서가 깨어지고 우상숭배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고 고통과 억압 가운데 있던 나라가 이제 비로소 다윗의 후손인 요아스왕이 왕좌에 앉음으로 모든 것이 정상화가 되었다. 그러니 “온 백성이 즐거워하고 온성이 평온하더라”라고 말씀은 우리에게 증거한다. 
  악녀 아달랴로 인해 그 맥이 끊어질뻔 했던 다윗 왕가의 후손인 요아스가 있어야 할 왕의 자리에 있음으로 온 백성이 즐거워하고 온 성이 평온했듯이 우리 삶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우리 삶의 왕으로 주인으로 왕좌로 모실 때 세상이 줄수 없는 참 즐거움과 평안이 시작된다. 
  우리는 예수 믿고 복받고 잘 먹고 잘 살려고는 하고 예수님을 이용하려고는 하면서 예수님을 내 삶의 왕좌에 모시지 않고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살아가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리스도의 향기요, 편지로 살아간다하면서도 삶 가운데 어떠한 향기도 나지 않고 예수의 흔적도 나타나지 않는다. 빛과 소금의 사명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오히려 남아있는 빛을 꺼뜨리고 세상의 더러움과 죄악속에서 함께 부패해 가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삶에 아달랴와 같은 나의 죄악과 우상 때문에 예수를 잊고 십자가의 복음을 잃어 버리고 살았다면 이제 우리는 다시 우리 삶의 주인이요 왕이신 예수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고 복음으로 십자가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진정 즐거워하고 평온한 예수 안에서의 참 행복을 누릴수 있다!  
  
(예화) 찬양사역자 김영표 목사님이 작곡한 찬양, “다시 복음 앞에”

나침반의 바늘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항상 북쪽을 가리킨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인생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항상 예수님을 삶의 왕으로 주인으로 모시고 골고다 언덕 그 십자가의 복음에 우리의 마음을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