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13일 주일 설교 초심

(왕하 12:1-6; 17-21)

 

예화) 한 알바생의 초심 이야기

 

7살의 나이에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요아스 왕은 그 시작은 도망자였으나 마지막은 위대한 업적을 남긴 왕으로 창대하게 끝났을지 오늘도 주시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도록 하자!

 

만남 (1-2)

 

예나 지금이나 한나라의 지도자가 40년을 통치한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특히 현대에 들어 한나라의 지도자가 40년을 통치 하는 것은 그 지도자가 백성들의 뜻에 반하는 독재자 이거나 아니면 그 나라 국민의 의식 수준이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고 찾아갈 만큼의 수준에 이르지 못함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다윗왕조의 왕들 중 40년을 통치한 왕은 다윗, 솔로몬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요아스 뿐이다. 그러니까 요아스는 1살 때 죽음의 위기에서도 여호세바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날 수 있었고 7살 때 제사장 여호야다를 통해 다윗왕가의 혈통을 이어나가는 왕으로 세워졌으니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이 아닐수 없다. 1절 말씀에서는 특히 요아스의 어머니 시비아 의 이름을 적으면서 그가 창세기 21장 이래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살았던 브엘세바 사람 즉 유다 땅 출신임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열왕기 기자가 의도적으로 요아스의 혈통은 부계나 모계나 다 이방의 피가 섞이지 않은 다윗왕가와 유다땅의 순혈 혈통임을 드러내며 요아스가 왕으로 세워지는 것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요아스가 걷지도 못할 그 어린나이에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고 또 왕으로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은 공주 여호세바와 대제사장 여호야다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요아스는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가운데 특별한 만남의 복을 누렸던 사람이다. 7세의 나이에 왕으로 세워진 요아스가 나라의 정사를 뭘 얼마나 알아서 혼자서 나라를 다스렸겠는가?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멘토로서 스승으로서 요아스 옆에서 일종의 섭정을 하면서 나라를 다스렸다. 또한 여호야다는 요아스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죄악을 범하지 않도록 그가 하나님 편에 서도록 늘 가르치고 요아스를 세워주었다. 그러기에 2절 말씀에도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만일 요아스 라면 제사장 여호야다와 같이 우리를 하나님 편에 서도록 늘 도움을 주는 귀한 만남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또 우리가 만일 여호야다 라면 우리의 주위 형제 자매들이 하나님 편에 서도록 도움을 주는 그런 우리 자신이 되도록 기도하자!

예화) 용혜원 목사님의 시, “만나면 좋고 함께 있으면 더 좋고 헤어지면 늘 그리운 사람이 되자

그렇다!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고 우리 주위에 그런 분들이 넘쳐야 한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만남의 복이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성도들은 목사를 잘 만나야 하고 목사는 성도를 잘 만나야 한다. 학생은 선생님을 잘 만나야 하고 선생님은 또한 학생을 잘 만나야 한다. 직원은 상사를 잘 만나야 하고 상사는 직원을 잘 만나야 한다. 또 남자는 여자를 잘 만나야 하고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야 한다. 하나님 안에서 주위에 예수의 사람, 복음의 사람, 믿음의 사람들이 넘쳐나고 또 우리가 꼭 그런 사람이 되어 요아스가 여호야다를 만난것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가운데 잘 만나는 복이 있길 축원한다!

 

2. 망각(忘却)

처음 요아스가 왕이 된후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잘 교훈하면서 하나님 편에서 백성을 잘 다스릴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그래서 요아스는 남유다의 대표적인 선한 왕으로 손꼽히는 히스기야 나 요시아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님 편에서 선한 일들을 해주었다. 그 대표적인 일이 솔로몬이 건축한 하나님의 성전을 수리한 일이다. 성전수리를 위한 재정마련을 위해 요아스는 전국에서 성전 수리 할 돈을 거둬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어찌된 이유에서인지 성전 수리 비용의 모금이 지지부진 한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고 즉위 20년이 훌쩍 넘은 23년차가 되어서야 여호야다를 비롯한 제사장들을 불러 진상을 조사하였다.

그러니 그 원인이 드러났다. 요시야의 왕권에 대한 제사장들의 경계였는지 아니면 중간에서 누가 횡령을 한 것인지 모아진 돈이 제사장에게로 간 이후 생각만큼 보수공사가 잘 되지 않음이 드러났다. 그래서 요아스는 백성들이 직접 성전에 드나들며 궤에 돈을 넣고 그 돈이 바로 성전보수에 쓰이도록 중간단계를 없애게 된다. 그랬더니 비로소 성전보수공사가 잘 진행 되었다. 이처럼 열왕기하서 124-16절에는 요아스의 치적중 최고의 치적이라 할수 있는 성전보수 공사를 지혜롭게 진행했음을 증거하고 있다.

 

그런데 3절 말씀이 뭔가 찜찜하다. 그러고보니 2절에서도 찜찜한 부분이 좀 있었다.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는 데.. 그렇다면 여호야가다 그를 교훈하지 못하게 된 때는 무슨 일이 있었다는 말인가? 3절에 다만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 라고 기록하며 요시야의 개혁정책이 한계가 있었고 완벽하지 못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원래 산당은 이방의 신들에게 제사하는 장소 였는데 실로에 있던 천으로 만든 예배처소 즉 성막이 훼손된 이후 솔로몬 때에 예루살렘 성전 건축 전까지 이 산당은 잠시 하나님을 섬기는 장소로 쓰이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열왕기상 32~5에서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께서 꿈으로 솔로몬에게 나타나신 곳이 바로 기브온 산당 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이처럼 잠시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으로 산당이 쓰인 적도 있었으나 솔로몬 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된 이후 산당은 다시 우상을 숭배하는 곳으로 전락되었다. 그런데 요아스왕이 이 산당을 깨뜨리지 않고 놔두었다 하는 것은 그가 왕으로 세워졌을때의 초심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앙개혁을 진행하지 않았음을 드러내고 있다.

 

예화)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고사성어 초심불망 마부작침 (初心不忘 磨斧作針)

 

요아스가 성전수리의 큰 역사를 이루었으나 그가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시고 왕으로 세워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의 멘토인 여호야다가 하나님의 때가 되어 세상을 떠나버린 것이다. 여호야다가 살아있을 때도 산당을 놔두어버렸던 요아스는 이제 자신의 스승이자 후견인이었던 여호야다가 세상을 떠나자 우상을 숭배하던 유다의 다른 신하들 즉 방백들의 말을 들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초심을 잃어버린다. 그렇게 하나님을 향한 초심을 잃어버린 요아스가 어떻게 되었을까?

 

3. 첫 마음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자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처음 왕의 되었을때의 초심을 잃어버린 요아스는 우상에 찌들어 있는 유다방백들의 말을 따르기 시작한다. 그러한 요아스를 돌이키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여호야다의 아들인 스가랴를 보내어 요아스에게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다. 구약성경에만 스가랴 라는 인물이 30여명 나오며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는 소선지서인 스가랴서를 쓴 스가랴와는 다른 사람이다. 이 스가랴의 이야기가 오늘 본문인 열왕기하 12장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고 평행본문인 역대하 24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20절 말씀을 합독하자!

 

이에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그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멘토이자 스승의 아들인 스가랴 가 하나님께서 너희를 버리셨다는 경고를 하자 요아스는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통회자복을 시작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만...이런 끔찍한 일을 행하고 마니 그 일이 바로 21절에 기록되어 있다.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령을 따라 그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죽였더라

 

은혜를 원수로 갚아도 유분수지, 자신의 은인의 아들을 하고많은 장소 중에서 성전 뜰 안에서 돌로 쳐 죽이는 끔찍한 일을 요아스는 행한다. 배은망덕도 이른 배은망덕이 어디에 있을까? 또 이 일에 이어서 요아스는 자신의 나라를 침략한 아람왕 하사엘을 달래기 위해 자신의 조상들이 모아놓은 왕실과 성전창고에 있던 금으로 된 성물과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금을 모아서 하사엘에게 조공으로 갖다 바치는 악한 일을 행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왕으로 세워질때의 그 감격과 그 다짐, 초심을 잃어버린 요아스는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러 온 은인의 아들 스가랴를 돌로 쳐죽이고 하나님의 성물을 우상숭배자 하사엘에게 자진해서 갖다주는 패역무도 한 일을 행하고야 만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남을수도 없었던 자가 완전히 타락하여 죽음의 길을 자초하고 있다. 이제는 악한 왕이 된 요아스를 하나님이 가만히 놔두실 리가 없다. 요아스의 신하들이 반역을 일으켜 요아스를 암살하고야 만다!

오늘 본문 20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요아스의 신복들이 일어나 반역하여 실라로 내려가는 길 가의 밀로 궁에서 그를 죽였고

 

평행본문인 역대하 2425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요아스가 크게 부상하매 적군이 그를 버리고 간 후에 그의 신하들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말미암아 반역하여 그를 그의 침상에서 쳐죽인지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왕들의 묘실에는 장사하지 아니하였더라

 

너무나 극적인 반전드라마 같은 성경의 이야기 아닌가? 요아스 왕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초심을 잃었을 때 그는 마치 광인처럼 변하여 스가랴를 죽이고 성물을 우상숭배자에게 바치는 악한 일을 행하다가 비참하게 자신의 신하의 손에 암살당하고야 만다.

초심, 첫 마음을 잃어버린자의 극단적 말로를 너무나 선명히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증거하신다.

 

예화) 시인 정채봉의 시 첫마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시이다. 그렇다! 첫마음, 초심이 중요하다! 오늘 초심을 잃어버리고 멸망자가 되어버린 요아스 이야기가 비단 요아스만의 이야기인가?

목사들이 안수받을 때 하나님의 뜻대로 쓰임받겠다며 다짐했던 그 초심을 잃지 않았다면 한국교회가 이렇게 되었겠는가?

교회 항존직분자들이 안수받고 임직받을 때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남은 여생 살아보겠다고 다짐했던 그 초심을 잃지 않았다면 한국교회가 이렇게 되었겠는가?

아니 우리가 예수님을 처음 인격적으로 만났을 때 눈물 콧물 쏟으며 죄인된 나를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 만으로 모든 것이 아름답고 세상의 어떤 금은보화보다 주님이 귀하다고 사랑한다 고백했던 그 초심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우리의 삶이 이렇게 변질된 삶이 되었겠는가?

처음 성령 체험했을 때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그 감격과 은혜 그 초심이 우리에게 남아있다면 우리가 이렇게 세상과 짝하며 대충 살수 있었겠는가?

그 초심, 첫마음, 하나님의 은혜 / 그 십자가로 이제 다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