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열매(35) (2023. 9. 17)


그 언덕 (열왕기하 15:13-22)

 

유머) 천국에서 기대한 대접을 못받자 실망하며 화가난 장로님 이야기

우리가 구원 받는 것도 하늘의 상급을 얻는 것도 어떤 직분을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나 일대일의 관계에서 모든 것이 완성된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일대일로 서서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하나님 만나시는 복된 시간이 되시라!

 

 

1. 보응(報應)(13-14)


지난주일 성전에서 아론의 자손들만 할 수 있는 향단에서 분향을 하다 평생 나병에 걸린 웃시야 즉 아사랴 왕과 6개월의 짧은 기간을 다스린 스가랴 왕에 대한 말씀을 드렸다. 이 스가랴왕은 반란을 일으킨 야베스의 아들 살룸에 의해 백성들 앞에서 잔혹한 죽임을 당했다. 895대를 지속해온 예후 왕가를 무너뜨리고 왕권을 탈취한 살룸은 자신이 그동안 꿈꾸어왔던 세상을 만들어보려고 나름대로 야심을 가지고 국정을 파악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왕이 누렸던 호사를 누리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자신이 죽인 스가랴 왕의 부하로 여겨지는 므나헴이 디르사 지역에서 북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로 쳐들어온다. 이제 막 왕권을 탈취하고 행복한 꿈에 빠져있던 살룸은 변변한 공격도 하지 못하고 므나헴에 의해 수도 사마리아에서 죽임을 당하고 만다.

예화) 인생의 모든 부귀 영화가 꿈처럼 덧없이 사라진다는 일장춘몽고사성어 이야기

그렇다! 살룸의 왕의 권세를 누리겠다는 꿈은 한달만에 일장춘몽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한달만에 므나헴의 반역으로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 살룸의 꿈은 반역으로 왕권을 탈취한 살룸이 한달만에 므나헴에 의해 반역을 당한 것은 북 이스라엘 왕조가 불안정한 격동 가운데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데 폭력으로 왕위를 쟁취한 살룸이 한달만에 같은 방법에 의해서 그 왕위를 빼앗긴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 가룟유다가 은 30에 예수님을 판후 예수님을 잡기 위해 예수님께서 마지막 기도를 하신 겟세마네 동산으로 대제사장과 악한 무리들을 이끌고 온다. 그때 그 간악한 유다가 악인들에게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고 말을 한다! 가룟유다가 예수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하고 입을 맞추었다. 이미 가룟유다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그러니 대제사장과 무리들이 예수님을 붙잡는데 그때 베드로가 가지고 있던 칼을 빼서 대제사장의 종 말고에게 칼을 휘두른다. 그때 그 칼이 빗맞아 말고의 오른쪽 귀를 베어버린다.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반란으로 왕권을 탈취했던 살룸의 찬란했던 왕위에 대한 꿈은 자신이 스가랴왕에게 행했던 똑같은 방법으로 불과 한 달 만에 허망하게 끝나고 만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행한대로 다 갚아주신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주위에 선을 심고 생명을 심고 복을 심고 예수를 심어 영생의 복과 은혜를 받아 누리시는 복된 분들이 다 되길 원하고 계신다!

 

 

2. 평생 떠나지 아니하였더라(16)


므나헴이 살룸의 왕위를 찬탈하고 북이스라엘의 제16대 왕이 되었을 때 당시 모든 도성들이 므나헴의 왕위획득을 축하하고 찬양한 것이 아니었다. 므나헴이 처음 반란의 행진을 시작한 디르사가 므낫세 지파의 땅이었기 때문에 므낫세 지파 소속 이었을것으로 여겨지는 므나헴을 다른 지파사람들이 맹목적으로 환영했을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므나헴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살룸의 근거지가 에브라임이기 때문에 에브라임 지파 에 속한 지역에서 므나헴을 반대하는 흐름이 있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딥사라는 성읍은 살룸에 대한 의리 때문인지 끝까지 왕 므나헴을 반대하고 인정하지 않고 성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므나헴은 딥사 성을 함락시키고 천인공노할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는데 바로 임산부의 배를 가르는 악한 일을 행하고 만다.

이것은 이방의 아람이나 암몬 족속 같은 악한 이들이 자신들의 극한의 잔혹성을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행하는 악한 일이었음을 열왕기하 812절과 아모스서 113절을 통해 알 수 있다. 이것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북 이스라엘에도 이렇게 될 것을 이미 예언된 말씀이었다. 이방의 족속들은 승리감에 도취되고 또 자신들의 통치권 강화를 위해 이런 잔인한 일을 행한 일상적으로 행했다 하지만 아브라함과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족속중 이런 일을 행한 왕은 므나헴이 전무후무하다. 이처럼 잔혹한 왕이었던 므나헴에게 열왕기 기자는 다른 왕들에게 하지 않았던 표현을 더 해주며 그의 잔혹성을 재확인해 준다. 북이스라엘의 왕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죄악을 행했음을 나타날 때 일상적인 쓰이는 표현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말에 평생이라는 단어를 더하고 있다. 자신의 왕권 유지를 위해 자신의 동족을 학살하고 그것도 모자라 임산부와 태중의 아이까지 배를 갈라 죽이는 잔인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므나헴에 대해 열왕기서 기자도 다른 왕들과 똑같은 표현으로 적기는 마음이 불편해서였을 것이다.

예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는 인터넷 신조어, “강약약강(強弱弱強)” 이야기

오늘 므나헴은 힘없는 딥사 성의 사람들에게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일을 행함으로 이른바 약한 자에게 폭력으로 갑질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또 다시 강한자에게 약하고 약한자에게 강한 모습을 보이며 비굴함과 갑질의 동시추태를 통해 강약약강의 모습을 완성한다.

 

 

3. 의지(依支)(19-20)


불이라 불리는 앗수르의 왕이 므나헴이 다스리는 북이스라엘을 침략하려 한다. 여기서 불은 지난주에도 언급되었던 앗수르의 디글랏 벨레셀 3세의 다른 이름이다. 갑자기 자신과 비교할수 없는 강한 군사력을 지닌 앗수르 가 자신의 나라를 침략하려 하자 므나헴은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선지자에게 묻거나 하지 않고 앗수르 왕에게 미리 조공을 바침으로 그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 그런데 그 선 조공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므나헴이 앗수르 왕 불에게 바친 은 천달란트는 6백만 드라크마 인데 한 드라크마는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다. 대략 우리나라 노동자의 하루 품삯을 10만원으로 계산하면 6천억에 이르는 엄청난 돈이다. 지금부터 약 2700년전 가나안 지역의 한 작은 나라에 불과했던 북이스라엘에서 6천억원에 이르는 은을 모으고 다른나라에 바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므나헴은 강압적인 방법으로 그 은을 모으는데 오늘 본문 20절에는 그 은을 이스라엘 모든 큰 부자에게서 강탈하여 각 사람에게 은 오십 세겔씩 내게 하여 라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까 자발적으로 거둔것도 아니고 부자들에게서 은 오십세겔씩을 강제로 빼앗아 은 천달란트를 모아 앗수르 왕 불 즉 디글랏 빌레셀 3세에게 바친다.

현재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소장중인 이란의 자르고스 산맥에서 발견된 디글랏 빌레셋 3세의 비석에는 그에게 조공을 바친 왕으로 "사마리아의 므나헴"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또 거기에는 므나헴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므나헴은 내가 눈보라처럼 그를 압도하매 그는 ··· 새처럼 홀로 도망쳐 내 발 앞에 절했다. 나는 그를 금, , 여러색의 장식이 있는 아마포 옷(을 입혀)...그의 처소로 돌려보냈다.

그러니까 므나헴은 자기가 살기 위해서 강약약강의 전형적인 모습이 되어 자신의 나라의 백성들에게 빼앗은 은으로 자신의 왕권을 유지해보려 하였다. 강제로 자신의 재산을 빼앗긴 백성들의 원성은 커져만 갔을 것이고 또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의 내정에 계속 간섭하여 국정을 어지럽혔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물질과 사람을 의지하려 한 므나헴 왕조를 하나님께서 가만 두실 리가 없다. 그래서 므나헴 왕조는 므나헴 10, 아들 브가히야 2년 더해서 212년으로 단명하고 말았고 아들 브가히야도 므나헴이 행했던 것과 똑같은 반역을 당하여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야 만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 늘 므나헴처럼 위기의 순간에 자신의 경험과 지식, 또는 물질과 사람을 의지한다. 잠시잠깐 그런 것들이 우리의 의지가 될 때가 있다. 그런데 그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우리의 경험과 지식은 완벽하지 못하고 물질은 잠시 잠깐 있다가 사라지며 사람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우리를 돕기도 하고 이용하기도 하고 또 버리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다가는 항상 실망, 절망, 낙담, 한숨, 실패의 결과만 맞이하게 된다.

예화) 절방적인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삶의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도종환 님의 시, “담쟁이


'담쟁이' 시를 통해 시인은 절망적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삶의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그런데 이 담쟁이가 진정 담쟁이가 되려면 담이 있어야 하듯이 우리가 예수쟁이로서 살려면 예수가 필요하다! 그렇다! 담쟁이에게 담이 있어야 하듯 예수쟁이에게는 예수가 필요하다. 담이 없다면 담쟁이는 땅바닥만 기어 다니다 다른 식물들에게 휘감겨 하나의 잡초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 볼품없는 넝쿨식물의 하나인 담쟁이가 담을 만나 건물을 고풍스럽고 아름답게 꾸미는 담쟁이가 되었듯이 아무것도 아닌 우리의 인생도 예수 만나 예수쟁이 되어 싸구려에서 명품으로, 죄인에서 의인으로, 거룩한 나라요 왕같은 제사장이라 칭함 받고 이제는 그의 자녀가 되는 은혜까지 받았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하나쯤 기댈 언덕이 있어야 한다 말한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으로 주신 므나헴처럼 사람을 의지하고 물질을 의지하면 항상 실망과 후회, 눈물만 있을 것이다. 그렇다! 결코 세상의 것 물질과 사람을 기댈 언덕으로 삼지 마시라! 그것들을 의지하지 마시라! 우리의 기댈 언덕은 골고다 그 언덕 그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뿐이시다. 그 십자가에 달리신 그 주님만 의지하자! 그 주님만 바라보자! 그럴 때에 우리의 기댈 언덕이 되어주시는 그분이 우리를 이끌어주시고 승리케 하실 것이다.

간증) 성대수술로 다시는 찬양할 수 없는 위기속에서 주만 바라볼찌라는 찬양의 가사로 힘을 얻어 기적적인 회복을 경험하며

이를 찬양으로 발매하여 많은 이들에게 은혜를 끼친 다윗과 요나단의 황국명 목사님 이야기

 

 

그렇다! 담쟁이가 담쟁이 되려면 담이 필요하듯 우리가 예수쟁이 되려면 예수가 필요하다! 골고다 언덕에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분은 우리의 단 하나뿐인 유일무이한 기댈 언덕이 되어주신다.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고 우리의 기댈 언덕이 되어주시는 그분을 붙들고 우리의 인생길 주만 바라보고 걷겠다 다짐하며 이시간 주님을 세 번 부르고 다같이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