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0월 8일 주일 설교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 왕하 18:3-8, 20:1-3  ) 
 
(유머) 이비인후과 의사이신 집사님이 다른 진단을 내린 이유

똑같은 물도 젖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된다. 똑같은 말씀도 돌짝밭 같은 심령에 떨어지면 결실을 맺지 못하나 좋은 옥토에 떨어지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다. 오늘 우리가 같은 공간에 같은 시간을 보내며 앉아 있는데 다른 생각하고 폰이나 보며 스쳐가는 말씀으로 흘리지 마시고 집중해서 하나님 말씀 받아 살아있는 생명력 있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 마음밭에 수태하여 큰 응답과 열매 남기시는 하나님의 백성들 되시라!  

1. 전무후무(前無後無)(3절)
지난 주일 우리는 이방의 제단양식을 도입하고 혼합주의 신앙으로 유일신 여호와 신앙을 혼동시키고 아들을 몰렉에게 바친 악 까지 행해서 유다의 왕이면서도 이스라엘 여러왕의 길로 행했다는 최악의 평가를 받은 아하스에 대한 말씀을 받았다. 그런데 오늘은 그 아하스의 아들인 남 유다의 제13대 왕인 히스기야 왕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다. 히스기야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나의 힘이라는 뜻으로 25세에 왕위에 올라 29년간 남유다를 다스렸다. 이 히스기야에 대해 열왕기 말씀은 어떤 평가를 하고 있을까? 3절 말씀에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라는 평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5절 말씀에서도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라며 전무후무하게 하나님을 의지한 위대한 왕 이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이처럼 위대한 왕이 남 유다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인 아하스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이 참 특이하지 않은가? 한자어 가운데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는 말이 있다. 이말은 아들의 성격이나 생활 습관 따위가 아버지로부터 대물림된 것처럼 같거나 비슷함 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치유프로그램인 아버지 학교 첫 시간의 강의는 영향력이라는 과목이다. 그 첫 시간 자신이 좋아하든지 좋아하지 않든지 존경하든지 존경하지 않든지 자신의 생활 습관과 태도 가운데 베어져 있는 아버지의 흔적과 영향들을 찾아가며 상상외로 많은 영향을 받은 자기 모습에 놀라고 깨어지는 시간이다. 이처럼 자식은 부모 특히 아들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남 유다의 왕의 계보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수 있다. 히스기야 의 할아버지 요담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하고 바른길을 걸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대하 27:6)는 평가를 받은 선한 왕 이었는데 그 요담의 아들인 아하스는 “이스라엘의 여러 왕 의길”(왕하16:3) 로 행한 대표적인 악한 왕이었다. 그 아하스의 아들인 히스기야는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왕하18:5) 라는 극찬을 들은 위대한 왕이었다. 그런데 또 히스기야의 아들인 므낫세는 아하스와 버금 갈 만큼의 악행을 행하고 “이방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왕하21:2)행한 악한왕이었다. 그래서 이 네왕의 흐름을 보면 다음과 같다.
11 요담(선한 왕) - 12 아하스 (악한 왕) - 13 히스기야(선한 왕)- 14 므낫세 (악한 왕)
이처럼 아버지가 선한 왕이라 하여 아들이 반드시 선한 왕이 된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악한 왕이라 하여 아들이 반드시 악한 왕이 된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복 받고 하나님께 로부터 인정받는 것은 하나님과 나의 일대일의 관계이다. 흔히 선대로부터 신앙을 이어받은 분들 가운데 본인이 모태 신앙임을 지나치게 자랑스럽게 여기는 분들이 있다. 그런데 이 모태신앙이 못해 못해 아무 것도 못하는 모태신앙 또는 못된 신앙이라 불리는 경우도 있다. 선대로부터 신앙을 이어받지 못한 분들, 즉 본인의 대에 신앙을 가진 분들 가운데서도 정말 신실하게 예수 잘 믿고 신앙생활을 잘 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는 생을 살아가시는 분들이 있다.나의 부모님들은 예수 만나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도 내가 예수 잘 믿으면 하늘로부터 오는 복을 받으며 예수안의 참 행복자로 살수 있다. 또 내가 예수 아무리 잘 믿어도 나의 자녀들이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고 체험하지 못한다면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이 이어지지 못하게 된다. 

(예화)“신 앞에 선 단독자” 라는 말을 남긴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

그렇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 하나님과 나의 일대일의 관계에서 개개인이 얼마나 예수 바로 믿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며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나부터 예수 잘 믿어서 구원과 복을 선물로 받아 누리시길 바란다! 거기에 더하여 우리의 가문이 또한 신앙의 명문가문 되어 대대에 흐르는 복과 은혜가 강물처럼 차고 넘치시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2. 형통(亨通)(7절)
히스기야는 “전후 유다 여러 왕중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라는 평가를 받을만큼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왕이었다. 그래서 말씀은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와 복인가? 형통이라는 한글단어는 성경에서 구약에만 나오는데 총 68번 나온다. 형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샤칼’이라 하는 단어로 총 80여회 사용되는데 이 단어는 지혜롭다, 총명하다, 지혜롭게 행하다, 통찰하다, 이해하다 라는 일차적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런 지혜와 총명스럽게 행하고 삶의 상황들을 이해하고 통찰함은 곧 번영하다, 성공하다는 의미로 발전해 한글성경에서는 형통하다라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예화) 새해소망과 가장 가까운 사자성어

우리들의 마음속에 모든 것이 잘 풀리고 잘 되기를 바라는 만사형통의 소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히스기야는 어떻게 어디로 가든지 형통한 복을 누리게 되었을까? 열왕기하 18장 ~20 장에 나온 히스기야의 이야기와 더불어 히스기야에 대한 기록이 남겨져 있는 역대하서 29장에는 히스기야가 왕이 되자마자 한 가장 첫 번째 일이 기록되어 있다. 역대하 29장 3절과 17절에 에 히스기야가 왕위에 오른 후 한 가장 첫 번째 일이 기록되어 있다. 즉 히스기야는 왕이 되자마자 가장 처음 한 일로 성전의 문을 열고 수리하고 또 성전을 성결하게 하는 일들을 하기 시작하고 또 이어서 성전에서 제사하는 것을 다시 시작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히스기야는 방치되어있던 성전의 문을 열고 깨끗이 청소하고 또 수리하여 온전한 예배를 준비하였는데 이것에 대해 17절 말씀에는 여호와의 전을 성결하게 하는 것이라 표현하고 있다. 히스기야의 형통함을 보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첫 번째 비결은 바로 예배의 회복이다. 히스기야 이전의 방치되고 닫혀진 성전처럼 굳게 닫혀 찌든 죄악의 먼지와 곰팡이만 가득 차 있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성령님의 신선한 바람이 들어가게 하고 또 하늘로부터 오는 은혜의 햇살이 비치게 하자! 이렇게 마음의 문을 열고 수리하고 성결하게 하여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자로 서시길 바란다. 기억하자!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이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예배를 회복하는 일이다! 예배의 자리에 있어야 할 때 세상 속에에 있지 마시라! 예배의 자리에 있어야 할 때 죄악의 자리에 있지 마시라! 예배의 자리에 있어야 할 때 나태와 게으름으로 침대위에 있지 마시라! 형통하시기를 원하는가? 예배를 회복하시라! 내 평생에! 예배하리라!

다음으로 히스기야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던 비결은 산당을 폐쇄하고 모든 우상을 훼파하고 신앙의 기준을 바로 잡은 일이다. 오늘 본문 4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그런데 좀 특별한 내용이 있다. 히스기야가 성전에서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산당을 제거하고 주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목상을 깨뜨린 일은 이해가 되는데 모세의 시대에 만들어진 놋뱀을 부쉈다는 내용은 특이하다. 이 놋뱀은 민수기 21장에서 광야에서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다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깨닫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서 그들을 징벌하신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여 장대위에 불뱀을 만들어 달고 그것을 보면 살 것이다 말하여 모세가 장대위에 매달아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쳐다봄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불뱀으로 인한 죽음으로부터 건져주었던 구리로 만든 뱀의 형상이었다.  문제는 모세의 시대부터 이 놋뱀이 계속 신비한 성물로 여겨지다가 이제는 하나의 우상이 되어서 남 유다의 백성들이 그 놋뱀을 숭배하고 분향하기 까지 이른 것이다. 놋뱀 자체에 병을 고치거나 사람을 살리는 어떤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순간에만 그것을 쳐다보는 순종을 한 자에를 살려주는 하나의 도구로 그것을 사용했을 뿐인데 그 모든 사실을 잊어버리고 모세시대의 놋뱀을 또 다른 큰 우상의 하나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예화) 솔뫼성지와 김대건신부

모세의 출애굽 시대부터 히스기야 때까지는 약 8백 년의 시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의 놋뱀을 신비한 성물로 여기며 하나의 우상으로 전락시켜 버리고 말았다. 산당을 제거하고 주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목상을 깨부순 히스기야는 모세의 놋뱀도 같은 우상의 하나로 보고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 נְחֻשְׁתָּן) 이라 이름을 붙였으니 그 뜻은 ‘놋조각’ 이란 뜻이었다. 즉 모세의 놋뱀에 어떤 영적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단순한 구리조각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히스기야의 이 용기 있는 결단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이었고 히스기야가 전무후무한 왕으로 기록되고 형통한 복을 받는 큰 근거가 되었다. 우리의 삶과 신앙생활 가운데 마치 모세의 놋뱀 느후스단처럼 어떤 우상들이 있을수 있다. 또 타성에 젖어있는 불필요한 하나의 관습이나 잘못된 인습들이 느후스단처럼 우리의 신앙의 본질을 흐트러뜨리고 있을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우리를 위한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그 순전하고 순수한 복음 외에 다른 것들은 다 깨뜨리고 버릴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순수한 십자가 복음 붙들고 나갈 때 하나님께서 형통의 복을 허락해 주신다. 이러한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을 어떤 형통의 복을 주셨는가? 열왕기하 19장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장수 랍사게를 보내서 남유다와 히스기야를 위협하는 기록이 나온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를 형통케 하셔서 이런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 열왕기하 18장 35절 말씀이다.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하나님을 붙들고 또 하나님이 붙드시는 인생, 순수한 십자가 복음에 바로 서서 모든 우상을 타파하는 자녀에게 하나님께서 형통의 복을 주신다! 꼭 그런 복을 받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3. 면벽기도(面壁祈禱) (20장 2-3절)
어느날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 “왕이시여, 선지자 이사야가 오셨나이다. 들라하라...” 히스기야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나를 살려주시려 하시는 구나... 웬걸, 이사야가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이게 무슨 마른 하늘의 날벼락 인가? 선지자가 와서 “네가 이렇게 하면 살 것이다.” 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자신이 살 것으로 알았는데.. 그런데 이 상황에서도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바로 기도했는데 2절에 낯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했다고 기록한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히스기야가 벽을 보고 한 기도, 히스기야의 면벽기도(面壁祈禱)이다. 오직 하나님만 생각하고 그분께만 집중하며 자신을 살려달라 기도하는 히스기야의 이 기도는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재난상황을 알리는 일종의 S.O.S 기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 기도하는 끝장기도 라 할수 있다. 히스기야는 기도하면서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라고 기도하며 심히 통곡하였다. 그러자 어떤 일이 생겼는가? 이사야가 히스기야에서 죽음의 메시지를 전하고 자신의 성읍에 도달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음성이 임하여서 히스기야에게 이렇게 전하라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5절 중반부부터 6절 말씀이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병을 낫게 해 주시고 그 생명을 15년이나 연장시켜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가 면벽기도때 구하지도 않은 앗수르 로부터 지켜주실 것을 약속해주신다. 히스기야의 면벽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 계획을 변경하시고 이처럼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 히스기야의 기도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그것은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라 기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 하면서 수십년 예수를 믿어도 도대체 하나님의 일은 하나도 하지 않고 하나님이 진정 기뻐하시는 일을 하지 못했다면 절체절명의 다급한 순간에라도 우리가 어찌 히스기야처럼 저런 기도를 할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우리가 기력이 있고 물질이 있고 건강이 있을 때 주께서 보시기에 선한 일 들을 많이 감당하시길 바란다. 그래야 우리도 위급할 때 떳떳히 하나님께 히스기야처럼 주여! 내가 이런 어려운 상황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라고 기도할수 있지 않겠는가? 

(예화) 폐암을 치료받으신 한 권사님 이야기

이시간 어디로 가든지 형통했던 히스기야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오늘도 우리 삶 가운데 형통의 복을 받는 영적비결에 대해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이 시간 우리도 행할수 있는 시간과 건강, 그런 상황이 우리에게 주어진 이 때에 주께서 보시기에 선한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더 많이 감당해서 삶에 하님의 형통과 기적을 끌어오는 삶을 살아가겠다 다짐하여 그 역사를 구하는 기도를 다 같이 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