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0월 15일 주일 설교
이스라엘의 온 족속을 버리사(왕하 17:7-20)
 
(유머) 어느 교회 첫 부임 설교를 하신 목사님 

TV나 라디오만 틀면 설교가 쏟아지고 또 내가 원하는 목회자의 설교를 하루 24시간 내가 원하는 때 언제든지 얼마든지 선택하여 들을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렇게 설교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데 귀에 들리는 설교는 넘쳐나는데 얼마나 삶 가운데 그 말씀대로 살아가고 적용하고 실천하고 사셨는가? 말씀을 듣기만 하고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행하고 실천하여 삶을 통해 설교를 써 내려가는 걸어 다니는 전도지가 되시라!

1. 멸망(滅亡) (7-8절)

방금 읽은 7절 말씀은 이 일은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 일은 과연 어떤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오늘 우리가 읽지 않은 1-6절 가운데 있었던 북 왕국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인 호세아가 행한 악한 일들과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를 3년간 포위하여 결국 호세아 때에 북이스라엘이 멸망 당하고 백성들이 앗수르로 끌려간 사건을 말하고 있다. 북이스라엘은 주전 722년경 앗수르에 의해 멸망 당했는데 남 왕국 유다보다 140여 년 먼저 멸망 당했다. 북이스라엘은 단 한 명의 선한 왕이 없을 정도로 영적으로 어두운 나라였는데 그래도 그 나라가 209년을 유지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 때문이라고 열왕기하 13장 23절에서 말씀하고 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당시 마지막 왕은 호세아 왕이었다.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 3세가 죽자 호세아는 앗수르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했는데 오히려 디글랏 빌레셀의 아들인 살만에셀 5세가 이스라엘을 침략했고 호세아는 항복하여 그에게 계속 조공을 바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다 애굽 왕 소에게 사신을 보내서 애굽의 도움을 요청하고 애굽의 힘에 기대어 앗수르에 조공을 보내지 않았다. 즉 호세아는 앗수르를 맞서기 위해 친애굽 정책을 편 것이다. 그런데 실상 애굽은 앗수르에 맞설 만한 힘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 격분한 앗수르는 사마리아성을 3년간이나 포위하여 고사 작전에 들어가고 북 왕국 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국제정세 가운데 외교를 잘못하여 북이스라엘은 패망의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다.

(예화) 백제 마지막 왕이었던 의자왕에 대한 오해

수많은 반란과 새로운 왕조들이 세워졌던 북이스라엘에서 아홉 번째 왕조 열아홉 번째 마지막 왕이었던 호세아는 강한 나라들 사이에서 자신의 지혜로 줄타기를 하다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나라가 완전히 멸망 당하고 마는 최악의 상황으로 나라를 이끌고 말았다. 호세아가 이렇게 잘못된 외교정책으로 나라의 상황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선지자에게 묻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판단과 경험 그리고 주위 신하들의 조언에 따라 이런 외교를 펼쳤다. 그러다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 당하고 만다. 중요한 순간 우리는 줄타기를 할것이 아니라 기도의 줄을 붙잡아야 한다. 기도줄을 붙잡지 않으면 그 인생과 가정은 다 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경험한다. 그때마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 주위의 말들만 듣지 말고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시고 그분의 뜻대로 행하시라! 그러면 그 인생은 실패하지 않는다! 그렇다! 기도는 생명이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숨 쉬지 못하는 사람은 살 수 없듯이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그러기에 기도하자! 살기 위해 살리기 위해 기도하자! 기도하는 개인은 풀리게 된다! 잘 되게 되어 있다!! 기도하는 가정은 승리하게 된다. 기도하는 교회는 응답의 간증이 넘쳐나게 된다! 살기 위해 기도하고 살리기 위해 기도하고 안 될 때는 더 기도하여 응답의 문을 열어 늘 승리하는 기도의 전사들이 다 되시라!

2. 점차로..행하여..(9절)

북이스라엘이 멸망 당한 이유에 대해 7절부터 23절에 걸쳐 설명하는 가운데 9절 말씀에서는 이스라엘의 자손이 점차로 불의를 행했다고 말씀한다. 여기서 “점차로... 행하여” 라는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어는 덮다, 가리다, 방어하다 라는 말인 하파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다. 그래서 9절 상반부를 해석하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옳지 않은 일들을 비밀리에 행하였다.” 라는 뜻이다. 이들은 산당을 세우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것처럼 가장 하여 백성들을 미혹하고 타락하게 하였다. 이들이 이렇게 우상을 섬기는 영적인 타락을 시작할 때 한번에 큰 불의를 행하며 죄악을 지은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죄인지 아닌지 본인도 모를 정도의 작은 죄부터 짓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렇게 죄악의 행위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사람들이 알지 못하니 점점 더 큰 죄를 짓기 시작하며 점점 더 악한일을 행하게 된 것이다.

대학과 중용에서 유래한 신독(愼獨)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 말은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지는 일을 하지 않고 삼가함을 뜻하는 말이다. 주자학을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이념으로 중시했던 조선에서는 내면의 수신을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자신을 늘 돌아보고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 신독을 중시하였다. 

이처럼 홀로 있을때도 늘 맑은 삶을 살아야 하는데 성경에는 이렇게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은밀히 죄악을 행하다 하나님의 징벌을 받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여호수아 7장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처음 만나게 되는 첫 열매 된 성읍이기에 그 성의 모든 것들은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화를 당하게 된다는 경고를 하셨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여리고 성과의 전투에서는 대승을 하게 되었고 그때 유다 지파 사람 중 하나가 사람들 몰래 여리고 성에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하는 헤렘 즉 진멸시켜야 할 물건의 일부를 취했다. 그것을 알리 없던 여호수아는 여리고의 대승의 여세를 몰아 벧엘 동쪽 벧아웬 근처의 아이로 사람들을 보내며 그 땅을 정탐해 올 것을 말했고 정탐꾼들은 그들의 수가 적으니 2-3000명만 올라가서 대략 공격하면 아이성을 함락 할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그 말을 듣고 약 3천가량의 군사들이 아이싱을 공격하러 갔는데 오히려 이스라엘 사람 36명이 죽임을 당하고 전쟁에서 패하게 된다. 훨씬 큰 성 여리고는 함락시켰으나 작은 성 아이는 함락시키지 못한 것이다. 백성들은 또 웅성대고 여호수아는 자기 옷을 찢고 머리에 재를 뿌리고 하나님께 간구하며 기도한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죄를 지었다.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내 언약을 어겼다.”라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수 7:11)

사람들의 눈은 속였으나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 없었고 하나님께 바쳐진 것 즉 헤렘을 가져가고 도둑질하고 또 그 일로 인해서 사람들을 속이고 또 몰래 감추어 두며 죄악을 은닉하며 죄악을 발전시킴을 하나님은 다 보고 계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비뽑기를 통해 유다 지파인 아간이 이 죄악을 저질렀음을 드러내신다. 아간은 시날산 외투 한 벌, 은 200세겔과 50세겔 나가는 금덩이 하나를 장막 안 땅속에 숨겨 놓았던 것이다. 여호수아는 아간과 아간의 죄악에 동참한 그의 가족들과 모든 소유를 데리고 한 골짜기로 올라가서 온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을 돌로 쳐 죽이고 재산들을 돌로 치고 불태웠으며, 아간 위에 큰 돌무더기를 쌓았다. 그 골짜기의 이름이 오늘날까지도 아골 골짜기라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아간이 시날산 외투와 금과 은을 여리고에서 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라는 마음으로 그것들에 손을 대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성과의 첫 전투에서 패하거나 그와 그의 가족 온 소유가 아골골짜기에서 돌에 맞아 죽고 불에 태워지는 끔찍한 일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간은 하나님께 드려진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사람들을 속이고 또 감추기까지 하였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도 천천히 번져나가는 곰팡이처럼 자신들의 영혼을 죽이고 해악을 끼치는 일들을 해나가기 시작하였다. 한곳에 산당을 지었다가 다른 곳에 또 짓고 점점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들을 하다가 또 한 우상을 섬기다가 또 다른 우상을 더하여 섬기며 하나님 대신 우상들로 만족하며 하나님이 하지 말라 하는 악한일을 행하였다. 그렇게 하자 북 이스라엘은 결국 멸망하고야 말았다.

아간의 행동이나 북이스라엘이 행했던 죄악이나 다 사람의 눈을 속이며 그들이 알지 못한다 생각하며 은밀한 죄악을 행하다 이런 악한 결과를 맞이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꼭 기억하자! 잠시 잠깐 사람의 눈은 속일수 있으나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은 속일수 없다.

(예화) 중국 명나라 말기에 문인 홍자성이 저작한 채근담(菜根譚)

질병이 처음에는 남이 볼 수 없는 곳에서 발생하여 나중에는 여러 사람이 다 볼 수 있게 되듯이 남이 알 수 있는 죄를 짓지 않으려면 먼저 자신만이 아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라는 뜻이다. 그러기에 시편 기자는 139편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 139편 1-4절)

우리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는 하나님! 그분이 실존을 늘 마음에 새기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 누가 보지 않는 곳에서도 신자로 성도로 예수쟁이로 말하고 행동하자!

3. 허무한 것을 뒤따라(15절)

열왕기 17장은 1-6절에서 마지막 왕 호세아의 정치와 외교의 실수로 인한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해 간략히 언급한다. 그리고 7절부터 23절까지 북 이스라엘의 멸망을 분석하는데 그 원인이 바로 그들의 영적 패악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음에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즉 열왕기의 기자는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해 앗수르가 이전보다 더 강할 때 이스라엘이 애굽을 믿고 앗수르에 반역하다가 그리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현상이었을 뿐 그 저면에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타락이 이스라엘 멸망의 근본 원인 임을 말씀하고 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겉으로 무엇이 막혀있고 안되고 꼬이고 잘 풀리지 않는가?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 계시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며 하나님 아닌 다른 것, 다른 우상들을 마치 하나님처럼 착각하며 숭배하며 살지 않았는가 우리의 모습을 돌아봐야 한다. 그 가운데 15절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이 따라야 할 세 가지를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은 곧 여호와의 율례와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들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과 경계하신 말씀이다. 즉 율례와 언약과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고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무엇을 따르다 종국에는 멸망하고 말았는가? 허무한 것을 뒤따라 허망하며 또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따르지 말라 하신 사방 이방 사람을 따라가다 망하고야 만다. 

여기서 허무한 것으로 해석된 단어는 원어로 헤벨 이라는 단어인데 바람이나 먼지 등 어무런 의미 없이 사라지고 흩어지는 가치가 없는 즉 무가치한 것들을 의미한다. 또 그 뒤에 나온 허망하며 라는 말도 하발 이라는 같은 원형에서 나온 말이다. 즉 바람이나 먼지 같은 부질없는 것, 가치 없는 것, 이방의 것들을 따르다 그들의 인생도 부질없고 가치 없이 허무하게 되었음을 나타낸다. 한번 살다가는 인생,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보면서 우리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여야 한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뜻을 기도로 구하자! 우리는 늘 하나님이 실존을 깨닫고 말하고 행동하자! 그리고 세상의 허무한 것을 뒤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말씀대로 살자! 그러면 우리의 인생은 무가치한 허무한 것을 뒤따라 허망하게 되다 결국에는 멸망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생의 주인공으로 복받는 인생으로 승리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예화) 존 윌라드 피터슨 이야기

세상의 것 허무한 것을 뒤따라가다 허망하게 멸망하지 말자! 오직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실존 앞에서 늘 기도로 그분의 뜻을 구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의 복과 은혜를 더하여 주실 것이고 우리를 멸망이 아닌 참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이 말씀을 준비할 때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오늘의 마지막 말씀으로 여러분에게 전하라 하셨다.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 번 크게 받들어 읽자!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학개 2장 19절)

우리 다 같이 주님의 말씀따라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서 멸망이 아닌 생명의 삶을 살아 가겠노라 다짐하며 간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