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열매(45) (2023.11.26)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요 20:19-29 ) 
      
1. 문들을 닫았더니
  본문 19절을 함께 읽자!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안식 후 첫날 즉 주일 저녁때에 십여명의 제자들이 어두운 표정으로 한 방에 모여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들이 이틀 전 경험한 일은 너무나 두렵고 무서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3년동안이나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로 여기며 따라다녔던 예수님, 수많은 병자를 고치고 심지어 죽은 자를 살렸던 예수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의 회중을 먹이고도 12광주리를 남기셨던 놀라운 기적의 주인공이었던 예수님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한 마리 어린양처럼 발가벗겨진 가운데 온갖 수치와 모욕을 당하시고 가장 흉악한 죄인들에게 내려지는 형벌인 십자가 형으로 참혹한 처형을 당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 예수님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따라다녔던 자신들도 제사장의 군사들이 갑자기 찾아와 자신들을 끌고 갈 것 같아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또 갑자기 예수님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는 생각에 깊은 슬픔에 젖어 있었다. 이들의 모습은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너무 실망스러운 모습이 아닐수 없다. 어떤 제자도 비아 돌로로사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걷는 예수님을 말리지 못했으며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못박는 로마병정에게 소리 한번 지르지 못했다. 그냥 내 한 목숨 부지해보겠다고 흩어져 도망쳤던 제자들이 누구라 할 것 없이 십자가의 고난 이틀 뒤 누군가의 집 한방에 모여 있다. 
그런데 슬픔과 자괴감, 공포와 두려움이 뒤섞여있는 제자들이 모여 있던 그 방에 예수님께서 홀연히 나타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현장에서 나몰라라 도망간 제자들을 책망하거나 방관자와 비겁자의 모습으로 침침한 방한칸으로 모여들어 있는 제자들을 나무라지 않으셨다. 그냥 당당히 나타나셔서 방 가운데 서서 첫 말씀을 하신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에이레네 휘민) 부활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은 그들이 공포와 두려움, 스스로의 부끄러움 자괴감으로부터 벗어나 하늘로부터 오는 평안을 받아 누리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반복하여 제자들에게 “너희가 평안할 지어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참 사랑의 주님, 그 주님이 오신 곳에는 회복이 있고 기쁨이 있고 생명이 있다. 놀랍게도 이 상황은 이미 예수님의 고난 이전에 예언이 되어 있었다. 요한복음 16장 22절 말씀을 다 같이 받들어 읽자!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삶의 무게가 여러분을 짓누르셔서 마음에 근심이 가득차고 두려우신가? 여러분의 삶의 중심에 주님이 홀연히 찾아오시게 하라. 그분이 가운데서서 우리에게 이 음성을 들려주실 것이다. “너희가 평안할지어다” 그 음성을 듣고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고 두려움이 담대함으로 바뀌고 절망이 희망과 소망으로 바뀌게 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되시라! 

2. 믿지 아니하겠노라
25절 말씀을 받들어 읽자!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처음 나타나셨을 때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그곳에 있지 않았다. 여기서 디두모는 아람어로서 쌍둥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즉 도마는 쌍둥이 였음을 알수 있다. 그런데 아람어 디뒤모스는 이중성 또는 둘의 라는 뜻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의 강인해보이는 외모에 비해 유약한 외강내유의 모습을 상징하고 또 요한복음 11장에서 죽은지 나흘된 나사로를 살리러 가는 장면에서 흥분하여 이렇게 말한 모습과 20장 25절에서 의심많은 도마의 모습과 묘하게 교차되어 대조된다.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요한복음 10장의 증언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예수님과 논쟁을 한후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 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피해 요단강 건너편으로 피하셨다. 이때 나사로가 병들어 죽어간다는 소식을 전해들었고 이때 나사로를 치료하러 가다가 예수님을 해하려는 유대인들을 만나게 되어 큰 어려움에 처할수 있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때 도마는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며 비장한 각오로 격분하여 다른 제자들까지 격동시겼다. 그런데 이제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났다 하자 “뭐! 예수님이 살아나셨다고? 애들이 예수님이 갑자기 십자가에서 처형당하니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구만? 나는 예수님의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고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네! ” 예수님의 갑작스런 십자가 처형에 낙망과 절망, 그리고 실망 가운데 있던 도마의 낙망, 절망, 실망이 이런 식으로 나타나고야 만다. 그런데 예수님이 또 홀연히 나타나셔서 가운데 서서 말씀해 주신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갑자기 말씀하시지 않는가? “도마야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예수님은 그 자리에 계시지 않았지만 8일전 도마가 무심코 내뱉은 그 의심의 말을 다 듣고 알고 계셨던 것이다. 오늘 도마에게 나타나신 목적은 직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것처럼 성령님의 역사 가운데 제자들을 세상가운데로 보내는 파송의 사명을 주시려는 것이 아니다. 도마의 말을 다 듣고 알고 계셨던 주님께서 도마의 의심도 거두게 하시고 또 제자공동체가 더 든든히 서 갈수 있게 하시기 위해서 나타나신 것이다. 
예화) 카라바조 도마의 의심 그림
예수님을 만나 도마의 의심도 풀리고 제자들도 비로소 안심하게 되었지만 부활의 예수님을 도마가 만나기 까지 그 팔일의 시간동안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는 도마의 말 때문에 설왕설래하며 어려움에 처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무 말이나 생각 없이 내뱉어 자신도 손해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주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워서는 안된다. 저질 정치판에서나 등장하는 아니면 말고 식의 카더라 통신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잠언서 21장 23절 말씀에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  늘 우리의 입술은 살리는 말, 생명의 말, 예수의 말만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더 크게 드러내는 주의 복된 자녀들이 다 되시라! 

3.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본문 28절 말씀을 읽자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도마가 예수님을 만나 직접 손가락으로 예수님의 못자국과 창자국을 어루만져봤는지는 우리가 천국가서 도마와 예수님께 확인해봐야겠지만 도마는 8일전 무심코 제자들 앞에 내 뱉은 말을 주님께서 정확히 다 듣고 알고 계셨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자신의 앞에 실제로 못박힌 손, 창에 찔린 옆구리를 하고 서 계신 주님을 보면서 그의 실존앞에 고꾸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말을 듣고 도마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 이시니이다” 무서움과 두려움에 제자들의 공동체에도 함께 있지 못하고 혼자 숨어있다가 끝까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고 의심하다 불필요한 말로 공동체에 상처를 주고 말았던 그 도마가 예수님의 실존 앞에, 그분의 존재 앞에서 완전히 굴복하고 엎드러지고 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 이시니이다”  도마의 신앙고백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넘어서는 신앙고백의 정점에 있는 놀라운 신앙고백이다. 먼저 도마는 예수님에 대해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이라 고백하며 구체적으로 자신과 주님의 관계를 일대일의 관계로 정확히 이해하고 고백하고 있다. 의심 많고 말많은 다혈질 도마는 사라지고 이전에는 주님 앞에서 순한 한 마리 양이 되어 주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다. 또한 베드로의 신앙고백 때만 해도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만 고백했다. 그런데 도마는 예수님에 대해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한다. 실상 도마의 이 고백은 사복음서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칭하는 유일한 경우이다. 이 도마의 고백이후에 예수님께서 도마의 말을 막거나 바로 잡으시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 이시니이다” 하는 도마의 고백을 그대로 인정하시고 자신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분이심을 스스로 인정하신다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 이시니이다”  이 도마의 놀라운 신앙고백에 이어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 그렇다! 우리는 예수님의 육성을 직접 들은적도 없고 또 그분을 우리의 육의 눈으로 본적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믿는다. 그분이 나를 위해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으며 다시 이세상에 심판주로 오실 것을 믿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마보다 더 복된 사람들이다! 
예화) 도마의 이후행적, 성도마교회
의심많고 말많은 실증주의자 이며 다혈질이었던 도마, 그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 이시라는 고백을 하고 의심자에서 복음 전파자로 순교자로 완전히 변화되었다. 2천년전 하늘로 승천하신 부활의 주님을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볼수 없고 그분의 음성을 들을수 없다. 그러나 보지 않고 믿는자가 더 복되다는 그 말씀을 기억하고 늘 기록된 말씀을 통해 그분에 대해 듣고 그분을 보며 그분을 더 알아가며 남의 주님 남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라” 늘 더 가까이 느끼며 고백하며 승리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복된 자녀들이 다 되시라! 
예화,결단송) 김석균 목사님의 찬양, 내가 처음 주를 만난 날 
주님을 만나서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게 되며 영광의 찬송을 부르며 남은 여생을 살아가자!  이제 우리의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고 우리의 의심의 믿음으로 바뀌며 우리의 문제가 간증거리로 바뀌는 놀라운 역사를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내 삶에 허락해 주시라고 간구하는 기도를 주님을 세 번 부르고 다같이 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