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월 7일 신년주일 설교,  마 28:16-20 가르쳐지키게 하라

1. 열 한 제자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제자들이 모였는데 그 숫자가 열 한명이었다고 말씀한다. 왜 열한제자일까? 그 열한제자가 누구였는가 하는 것은 사도행전 1장 13절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다. 열두제자가 열 한제자로 줄어든 것은 가룟유다 때문이다. 가룟유다는 은 30에 예수님을 판 뒤 후회를 하였다. 자신이 순간의 판단을 잘못하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은30을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다시 갖다주며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 내가 무죄한 예수님을 팔고 죄를 지었다 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미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한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그 돈을 다시 받을리 만무하지 않는가? 그래서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야? 네 죄값을 네가 당하라 고 가룟유다를 저주한다. 한때 예수님을 사고 팔때는 의기투합했던 이들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유다를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만 것이다. 상심한 유다는 은 30을 성소에 던져넣고 목을 매어 자살하고 말았다. 
 가룟유다를 제외한 열한 제자명단에는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를 비롯하여 모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게 되는 고난의 순간에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 이었다.  그들이 가룟유다처럼 예수님을 판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일신안위를 위해 예수님과의 약속을 다 저버리고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이들은 삼삼오오 다시 모였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시 회복의 기회를 허락하셨다. 
  가룟유다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들도 예수님을 버렸던 이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있었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는데 반해 자살한 가룟유다는 그 기회마저도 상실하고 말았다. 가룟유다의 죄가 가장 큰 죄이긴 하나 열한제자들도 예수님 앞에서 완전하지 못한 잘못을 한 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도 그들을 사랑하셔서 다시 한번 회복의 기회를 주셔서 그들을 만나주신다.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우리는 여전히 허물이 많고 부족한 죄인들이다. 교회의 여러 직분을 받았다 하면서도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모습들이 많이 있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가 가룟유다처럼 회복의 기회를 빼앗기지 않고 열한제자들처럼 우리의 자세를 바로잡아 더 주님을 잘 섬길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하자!  

2. 갈릴리에 가서

  그런데 그들이 모인 장소가 갈릴리이다. 왜 하필 갈릴리에서 모였을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이전에 이미 부활 후에 갈릴리로 가실 것을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본인이 부활 후 갈릴리로 가실 것을 정확히 말씀하셨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다시 갈릴리로 부르셨을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으로 모이라 하시면 어떠했을까? 갈릴리가 어떤 곳이었는가? 예수님께서 출생당시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삶을 다 보내셨고 또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공생애를 보내셨던 곳이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 대부분이 이 갈릴리 출신이었다. 배우지 못하고 사람들의 천대를 받는 3류 4류 인생들로 그저 그렇게 밑바닥 인생을 살면서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버텼던 그 땅, 갈릴리 그곳에서 어느 날 그들은 예수님을 만났고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름을 받았다. 자신의 배도 버리고 가족도 버리고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주님을 따르겠노라 예수님을 따라나섰던 그 땅 갈릴리로 예수님은 그들을 다시 부르셨다. 
예화2) 펄 벅 여사의 작품 <The Good Earth> [대지] 이야기
  주님은 그곳 갈릴리로 다시 그 비겁자들 도망자들 배신자들이 되어 버린 제자들, 그리고 또 자신들의 꿈이 깨어져 상처받고 낙망해 있던 그들을 다시 부르셨다. 처음 그들이 가슴 떨림으로 두근거림으로 감사와 감격으로 갈릴리에서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라나섰던 그 주님을 만났을때의 초심, 그 첫마음을 회복시키고자 주님은 제자들을 갈릴리로 부르셨다. 그리고 그 땅에서 그들을 다시 만나 그들의 가슴떨림의 첫 사랑, 첫 마음 그 감격과 기쁨을 또 복음전파를 위한 그 열정과 헌신을 회복시켜 주시고 부활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도록 놀라운 명령을 하달하셨다! 처음 그 가슴 떨리는 첫사랑의 순간으로 그 갈릴리의 호숫가 앞으로, 그 갈릴리의 변화산상으로 가서 다시 복음, 다시 십자가로 우리를 부르시는 그분의 부르심에 순종하시길 바란다. 그래서 그 가슴떨림, 감격과 눈물을 회복하고 힘을 얻어 세상으로 나아가서 이제는 복음과 십자가를 품고 전하는 예수 증인으로 살자!  

3. 항상 함께 있으리라

  오늘 본문 마태복음 28장 16절부터 20절 말씀은 이른바 The Great Commission:지상 대 위임령으로 불리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절망과 자괴감, 낙망 가운데 있던 열 한 제자를 갈릴리의 한 산에 불러서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부활과 고난 이전에는 자신이 전하는 복음전파의 범위가 유대인이 우선이었음을 마태복음 15장 24절에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 갈릴리로 제자들을 부르셨다.  
  제자들은 예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였고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 나아왔다고 그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이 앞으로 나와왔다 하는 것은 그 만큼 예수님께서 적극성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모습을 말한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는 말씀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신다. 마귀가 합법적으로 인간에게 행할수 있는 최고의 권세인 사망권세를 부활하심으로 완전히 깨뜨려버리셨기 때문이다. 
  예수님 자신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있고 그 증거로 내가 사망의 권세를 이겨서 너희들 앞에 이렇게 서 있으니 나를 믿는 너희는 이제 위축되지 말고 불안해 하지 말고 낙담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고 복음들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라는 말씀이다. 기죽지 마시라! 우리에게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에게 계시다! 그분이 우리를 지키시고 그분이 우리를 붙들어 주신다! 그러기에 상황과 환경, 광야의 삶에 주눅들고 위축대고 불안해 하지 마시고 우리의 힘과 능력, 반석이 되어주시는 예수 붙들고 자신감 있게 살고 승리하시길 바란다! 
예화3) 범선이야기 
  하늘과 땅의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로 시작하여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의 중간에 마치 샌드위치의 속처럼 어떤 말씀이 들어가 있는가? 바로 제자 삼고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이다. 이 복음 전파가 얼마나 중요하면 이렇게 양쪽으로 튼튼한 보호막을 만들어 놓고 복음전파의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겠는가?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 개인과 가정 만을 위해서 아등바등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살아갈 일이 아니다. 우리는 십자가와 복음 전파의 사명을 위해 살아야 하고 우리 교회는 복음전파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오늘은 주님의 복음전파에 대한 대 위임령의 말씀을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복음전파의 사명을 재확인 하였다. 그러면 어떻게 이 복음을 전할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다음 주일 말씀을 통해 받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