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복음! 다시 십자가! (5) (2024. 02. 04)

이기게 하는 힘 (사무엘상 17:31-37, 43-49)

 

유머) 한 까페에서 외모순으로 카드결제를 담당하자고 하는 어느 일행의 이야기

오늘도 우리가 잘 났든지 못났든지 있든지 없든지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주셔서 우리를 이 자리에 불러주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받자!

 

 

1. 상황(33)

아브라함 시대 때부터 이스라엘 주변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블레셋 이 사울 이전의 사사시대 부터는 당시 가장 발달된 무기인 철제 무기를 가지고 이스라엘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왕 때에 이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해 와서 유다의 지경인 에베스담밈 이라는 곳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 백성은 엘라 골짜기에 진을 쳐 두 진영이 맞서는 형국이 되었다. 그때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골리앗 이라는 블레셋의 장수가 등장한다. 골리앗에 대해서는 삼상 174-7절에 상세히 적고 있는데, 먼저 골리앗에 대해 4절 말씀은 싸움을 돋우는 자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표현은 히브리어로 이쉬 하베나임(אִישׁ־הַבֵּנַיִם)”이라는 표현인데 두 군대 사이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즉 고대의 전쟁은 양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 즉 각 진영에서 가장 싸움을 잘 하는 장수들이 나와서 서로 대표로 싸우고 그 결과에 따라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기도 했다. 따라서 골리앗은 블레셋 군대의 대표로 나와서 지금 이스라엘을 격동시키고 있다. 이 블레셋의 키가 얼마나 되었을까 하는 것에 대해 4절 말씀은 여섯규빗 한뼘 이라 증언한다.

1규빗은 사람의 팔꿈치에서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를 말하는데 사람마다 길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대와 지역에 따라 적용되는 길이가 달랐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52cm, 고대 로마는 44.5cm,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50cm1규빗으로 사용했다 한다. 유대인들은 약 대략 45.6정도를 규빗으로 사용하였다. 에스겔이 환상 중에 성전 측량할 때 쓴 큰 규빗은 규빗에 손바닥의 길이를 더한 52Cm쯤 된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이 기준으로 골리앗의 키를 계산하면 대략 2m 90cm 가량 되는 엄청난 거구 였음을 알 수 있다. 이전 우리나라 의 씨름선수 이자 이종격투기 선수로 활동했던 최홍만 선수의 키가 218cm 정도 된다니 그 보다 70cm 이상이 큰 엄청난 괴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골리앗은 이렇게 키만 큰 것이 아니라 몸도 엄청나게 거대하여 머리에는 놋투구 몸에는 비늘갑옷을 입었는데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었다. 5절 말씀에 기록되어 있으니 갑옷의 무게만도 57kg 가량 되었다. 그리고 그의 무기인 놋으로 만든 창날의 무게가 육백 세겔인데 약 7kg 되었다. 그러니까 골리앗의 몸무게는 대략 250kg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사람이라기보다는 야수에 가까운 골리앗이 40일간 하루 두 번씩 나타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이스라엘 군대를 도발하며 그들을 자극했다. 그러나 이들은 골리앗의 압도적인 기세에 눌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공포에 떨고 있었다. 지금 블레셋 군대와 골리앗을 맞서고 있는 이스라엘 군대의 최고지도자인 사울왕도 그 키가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 했다고 삼상 9장과 10장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사울의 키도 대략 190cm 정도로 추정되는 기골이 장대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그나마 골리앗과 맞서 싸울만한 몸을 가진 사람은 사울 왕 이었다. 그러나 40일 동안 쉬지 않고 골리앗의 도발과 조롱을 들으면서도 사울을 비롯한 다른 장군들과 병사들 누구도 골리앗 앞에 나서지 못했다. 전투에 참여하고 있는 세 명의 형들에게 도시락을 주기 위해 우연히 전장을 방문했던 다윗만도 못한 이들이었다. 다윗이 전장에 왔다가 골리앗의 도발을 보고 격분하여 골리앗을 물리치면 받게 될 상에 대해 묻고 다닐 때에 한 어린아이가 와서 골리앗의 도발에 대해 격분하고 다닌다는 소식을 들은 사울왕은 다윗을 불러들인다. 다윗을 보니 아직 전투에 임할 나이도안된 어린 소년에 불과하였다. 실망한 사울은 잠시나마 헛된 기대를 품었던 자신을 책망하며 무모한 도전에 나서는 어린 다윗에게 충고한다. 사울은 눈으로 보이는 현재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고 지극히 이성적으로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있는 실상 그대로를 다윗에게 알려준다. 너는 소년이고 저 블레셋 사람은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한 용사인데 네가 어떻게 저 블레셋 사람을 이긴다는 말이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어서 돌아가라!

사울의 말은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말이고 틀림이 없는 합리적인 말이다.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고 정확히 판단하여 말하는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다. 만일 사울의 말을 듣고 , 그렇구나! 내가 아무리 해도 저렇게 큰 야수 같은 골리앗을 이길수 없겠구나.” 하면서 터벅터벅 아버지 이새가 있는 베들레헴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면 하나님의 역사는 다윗을 통해서는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다윗의 반응은 사울과는 달랐다. 다윗은 뭐라 말했는가?

 

 

2. 믿음의 말 (36-37)

다윗은 상황과 환경을 보면서 있는 그대로 합리적으로 말하는 사울,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님에 대한 어떤 믿음도 더해지지 않은 그의 이성적인 답변과는 다른 말을 한다. 다윗이 목동으로 아버지의 양을 지키고 있을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양의 새끼를 물어가면 다윗은 따라가서 그 입에서 새끼를 구해 내고 또 그것들을 쳐 죽이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즉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욕한 저 골리앗을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을 통해서 물리치실것이고 자신을 보호해 주실 것을 선포한다. 사울은 눈에 보이는 상황과 환경을 보고 판단하고 말하는 이성의 사람이다. 그러나 다윗은 그 상황과 환경을 넘어서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이다. 눈에 보이는 상황과 환경을 보고 판단하는 이성의 사람들은 보이는 실상을 보고 낙망하고 보이는 상황을 그대로 말하지만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를 보고 믿음으로 긍정의 말을 뿌린다.

우리의 삶 가운데 주어진 현실이 있고 우리가 처한 상황, 그 실상들이 있다. 어떤 때는 그 상황들은 우리를 힘들게 하고 우리를 절망시키고 우리를 주저앉게 만든다. 때때로 건강의 문제들이 우리를 절망시킨다. 때때로 물질의 문제들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또 관계의 문제들이 우리를 낙망시킨다. 또 주위의 부정적 말들이 우리를 넘어 뜨리려 하며 우리의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그렇다! 그런 것들은 현실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실상 일수 있다. 그러나 그 실상의 골리앗 앞에서 안된다 하고 주저 앉은 사울이 될것인가? 아니면 그 실상의 골리앗 앞에서 된다 하는 다윗이 될것인가?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믿음의 눈으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바라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를 바라보며 입술로 선포하여 승리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되시길 간절히 바란다.

ex) 강력한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은 사과를 보며 시험에 앞서 합격사과를 만들어낸 이야기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보이는 상황의 이면에 있는 가능성을 보며 긍정적 생각과 긍정의 말을 뿌려 떨어지지 않는 합격사과를 만들어 내는데 현실과 상황을 보며 부정적 말을 뿌리며 썩은 사과만을 바라보는 사울이 될것인가? 믿음의 눈으로 바라는 것들의 실상과 보지 못하는 것들을 증거를 바라며 긍정적 말을 뿌려 떨어지지 않는 합격사과를 만들어내는 다윗이 될것인가? 선택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다!

 

 

3. 하나님의 이름으로 (45)

어리고 작은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선다. 3m 가까운 장신의 야수와 같은 사람이 60kg 가까운 갑옷을 입고 큰 창을 들고 물맷돌 다섯 개만을 주머니에 놓고 자신의 앞에 선 다윗을 노려보며 외친다. “너는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 하나만 들고 이렇게 앞에 서 있느냐? 내가 널 죽여서 새와 들짐승들의 밥이 되게 하겠다그때 다윗은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하며 자신의 긍정의 말 믿음의 말에 하나님의 이름의 능력을 더한다. 그 결과에 대해서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린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 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는 장면이 예레미야 1장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모태에 짓기전에 이미 아셨고 또 그를 선지자로 세웠다고 말씀 하셨다.

즉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소명, 부르심에 나는 여러 가지로 부족하고 아이라 말할 줄도 모른다고 자신을 한정시키는 부정적인 말을 하게 된다. 그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라하시면서 누구에게 가라면 그에게 가고 명령하는 말을 그대로 말하라 하시며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손을 내밀어 예레미야의 입에 대시며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전 예레미야는 언변이 출중하지 못한 아이였을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이 부르시고 감당할 만한 능력을 주시니 그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고 대 선지자가 된다!

ex)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도, 가장 선한 것도 사람의 혀라고 대답하는 탈무드 지혜자의 이야기

여러분의 혀가 이왕이면 가장 선한 것이 되시길 바란다. 어떤 말을 내 뱉으면 그 말은 남에게 들려지기 전에 자기 자신에게 가장 먼저 들린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믿음의 말, 긍정의 말, 살리는 말을 많이 하면 남이 살기전에 내가 먼저 살아난다. 왜 그럴까? 사람의 생각이 입술로 나오는바 나의 의식에는 믿음의 말, 긍정의 말, 살리는 말이 가득차 있어 그 말이 만군의 여호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나에게 큰 역사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있다. 말은 사람을 힐링(치유)도 할수 있고 킬링(살인)도 할 수 있다. 나의 말이 남을 힐링도 할수도 할수 있고 킬링도 할수 있다. 또 그 이전에 나의 말이 나를 힐링도 할수 있고 킬링도 할수 있다.

ex) 후임목사님의 좋은 말과 친절한 말로 SNS에 홍보하여 과일 가게를 개업하게 된 베트남 한 아주머니의 이야기

 

믿음으로 인생의 광야길을 걷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여, 이제는 예수 안에서 자녀의 권리를 누리시며 입술의 권세를 사용하시라. 여러분 앞에 서 있는 골리앗 같은 현실에 안된다! 못한다! 어렵다 주저 앉지 마시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창조주 하나님 과 예수 이름의 권세로 다 잘될것이다! 다 잘 풀릴것이다! 다 응답 받을것이다! 선포하고 그 입술의 심는대로 삶 가운데 열매로 결과로 간증거리로 나타나 예수 안에서 참 행복을 누리시는 귀하고 복된 주의 자녀들 다 되시길 간절히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