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남의 은혜(2) 요 3:3-8 ; 13-18
오늘 사순절 넷째주일 우리를 위해 물과 피를 흘려주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그분의 음성을 받자!
1. 진실로 진실로
사람이 대화하다 보면 어떤 지점에 강조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어떤 표현을 사용하거나 아니면 대화의 톤을 더 올리거나 또 대화의 톤을 급격히 낮추거나 대화의 속도를 늦추거나
한다. 또 특정한 제스처를 사용하거나 아니면 비 언어적인 몸짓 즉 바디 랭귀지로 특정한 부분을 강조하기도 한다. 4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가운데 어떤 표현이나 개념에 밑줄 쫙 즉 강조를 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표현이 있음을 알수 있다. 그것은 바로 진실로 라는 표현이다. 공관복음 즉 마태, 마가, 누가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 중에 강조 하시기 위해서 주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공관복음) 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만 사용하신 “진실로 진실로” 의 표현은 총 25번 사용되었는데 이 진실로 진실로 라는 말은 NASB등의 영어 역본에서는 truly truly 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그리스어 즉 헬라어성경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으니 “진실로 진실로 truly truly(영) αμην αμην(헬)” 바로 아멘 아멘 즉 두 번 아멘 이 진실로 진실로에 쓰인 헬라어 표현이다. 그렇다! 이 아멘은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아멘 이다. 즉 이 아멘은 구약에 사용된 히브리어 아멘의 음역으로서 '확실한, 확고한, 신실한, 진실한'의 뜻으로 쓰이며 부사로는 '확실히, 진실로'를 의미한다. 이 진실로 진실로 아멘 아멘 이후에 나오는 말씀들은 주님의 생명력 있는 말씀으로서 그냥 그렇게 스쳐 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되어지고 반드시 그렇게 진행 될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아멘 아멘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2. 거듭남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찾아온 니고데모의 영적인 갈급함을 아시고 거듭남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답을 주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다시 태어남 즉 거듭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남은 이런 육신의 다시 태어남을 말하고 있지 않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난다는 헬라어 원어로 겐나오 아노덴 (γεννάω ἄνωθεν) 이라는 말이다. 겐나오 라는 말은 성경에 97번 사용되었는데 태어나다 라는 뜻이며 아노덴 이라는 말은 13번 사용되었는데 공간적으로는 위로부터 시간적으로는 다시 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그래서 거듭난다는 말은 다시 태어나는 것인데 아래에서부터 즉 땅에서의 육신의 다시 태어남이 아니라 위로부터 즉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이 거듭난다는 말은 영어로는 거듭남: 중생(重生) Rebirth, Regeneration, Born again 등으로 번역된다. 그리고 한자어로는 중생(重生) 이라는 한자어로 쓰인다. 불교에서 같은 말로 발음하는 무리중 자를 사용하며 부처의 구제대상이 모든 존재를 말하는 중생(衆生) 과는 다른 단어이다.
부자이고 지식인이며 70여명의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으로 만인의 존경을 받던 바리새인중의 바리새인 이었던 니고데모의 세상에서 쌓은 높은 학식과 지식으로 거듭남의 영적인 비밀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해되지 않는 그의 속내를 투박한 질문을 던지며 드러내고 있다. 예수님 예수님 사람이 늙으면 죽는데 어떻게 다시 태어날수가 있습니까? 한번 더 어머니의 뱃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나야 합니까? 라고 질문한다. 이 말은 쉽게 말하면 다시 태어나야 한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요? 라는 말이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또 다시 아멘 아멘 진실로 진실로 라는 말을 쓰시며 거듭 날 때 필요한 것은 바로 물과 성령이라 말씀하신다. 즉 물로는 죄악을 씻고 성령으로는 새롭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본질적으로 죄악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는 물과 성령으로 죄악을 씻고 새롭게 하심을 힘입어 하늘로부터 태어나며 다시 태어나며 거듭난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귀한 분들 다 되시길 간절히 바란다! 이 거듭남에 대해 우리 주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신다!
3. 그를 믿는자마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당시 있었던 일이다. 호르산에서 홍해로 가는 길에 에돔땅을 우회하며 지나는데 더운 날씨에 광야길을 걷다보니 너무 힘든 상황이 계속 되었다. 또 물도 없고 연일 계속 먹는 만나는 특별한 감흥 없이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음식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함께 원망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심지어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만나에 대해서 “이 하찮은 음식은 싫다” 라는 하지 말아야 할 망언을 내 뱉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어떤때 광야의 상황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할 때 하나님께서도 먹을 것도 주시고 물도 주셔서 해결해 주셨지만 이 경우 이미 내려주신 음식에 대해 하찮은 음식이라 비하하며 막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참지 않으셨다. 그때 하나님께서 광야의 독사들 즉 물리면 불에 데인 것처럼 따가운 그런 불뱀들을 모아서 이스라엘 백성을 징계하셨으니 불뱀에 물려서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다. 이렇게 불뱀에 물려 많은 사람이 죽어가자 그제서야 깨달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으니 이제 하나님께 기도하여 이 뱀들이 사라지게 해달라 요청한다.
그때 모세의 기도를 들은 하나님께서는 불뱀을 없애주는 것과 더불어 이미 물린 자도 살길을 열어주셨으니 그것은 불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고 물린 자가 그것을 보면 산다 그때 불뱀에 물린 사람들중 가운데 “아니! 독사에 물렸으면 해독제를 줘야지 장대에 달린 구리뱀을 쳐다보라니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라는 사람, 또 “뱀이라면 진절머리가 나는데 또 뱀을 보라고? 생각하기도 싫다”며 쳐다보지 않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불뱀에 물렸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장대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지 않는 사람은 그가 남자든지 여자든지 아이든지 청년이든지 노인이든지 다 죽었다. 그런데 이유를 불문하고 모세가 만든 놋뱀을 쳐다보는 사람들은 어찌되었는가? 말씀은 기록한다! 모두 살더라!!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심은 바로 순종하여 놋뱀을 바라보는 자마다 모두 사는 그 역사에 근거한 말씀이다. 죄악에서 거듭남의 사건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분을 믿음으로 시작되고 완성된다! 그러기에 예수 십자가를 바라보며 영생과 구원에 이르시는 주의 자녀들이 다 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