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씻으라  요 9:1-12  

오늘 사순절 다섯째주일 몸의 일부만 떼어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주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그분의 음성을 받자!

1.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요한복음 9장은 장 전체가 이 선천적 시각장애인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실제로 이 날때부터 눈먼자의 치유에 대해서는 몇절 기록되어 있지 않고 실제는 그가 눈을 뜨게 된 사건 으로 촉발된 여러 논쟁들과 그 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시각장애인은 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자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특별히 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러기에 이 시각장애인이 “다윗의 아들 예수여, 내가 당신의 소문을 들었나이다.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눈을 뜨게 해 주소서!” 라는 등의 어떤 요구를 예수님께 했다는 기록은 전혀 성경에 나와 있지 않다. 

(예화1/ 시각장애 홈리스 이야기)

시각장애인들은 눈으로 보지를 못하기에 다른 감각들은 일반인들보다 더 예민하게 잘 발달 된다. 그래서 보통 시각장애인들은 귀가 남보다 좀 더 잘 들리고 또 무언가를 만지면 남보다 더 예민하게 파악 할수 있다. 이것은 2000년전 길가에 앉아있던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그 사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길가에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낯선 음성들이 들린다. “선생님! 저것 보세요! 저 사람은 이동네에서 유명한 날때부터 앞을 못 보는 사람인데 저 사람이 저렇게 태어난 것이 자기 죄 때문 인가요?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인가요??”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 다니고 있지만 여전히 유대교의 전통과 율법 가운데서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생각에 젖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저 가련한 시각장애인 이 앞을 보지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거지가 되어 길에서 구걸한 것으로 생명을 부지 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 저것은 죄로 인해 벌 받는 것은 분명하다 속단하고 예수님 저이가 저렇게 된 것이 자기 죄 때문인가요? 아니면 부모 죄때문 인가요 하고 질문을 하고 있다. 그 제자의 호기심에 찬 말 한마디는 너무나 큰 상처로 그 시각장애인의 마음에 남게 되었을 것이다.  
(예화2/ 용접이야기)
2000년전 그 제자처럼 말 한마디가 사람에게 큰 상처를 줄 수도 있고 반대로 또 말한마디가 사람에게 희망과 소망을 주고 사람을 살릴수도 있음을 기억하고 우리의 입술을 열어서는 감사의 말, 사랑의 말, 살리는 말, 복의 말을 뿌리고 선포하는 주의 자녀들이 다 되시길 간절히 바란다!   

2.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섭리
시각장애인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내는 제자들의 무지한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대답하신다! 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것은 자기 자신의 죄나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란다. 죄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란다! 라고 말씀하신다. 모든 질병이나 고통이 죄로 인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오늘 나면서부터 눈먼자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제자들의 인과응보적 물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하신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던 그 걸인의 나이가 몇세 인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가 40세라면 40년동안이나 앞을 보지 못했던 것이고 60세라면 60세 동안, 즉 평생토록 눈을 떠서 세상의 빛과 색, 사물을 본 적이 없다. 그가 이리 된 것이 죄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기 위함이며 하나님의 섭리와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라 하더라도 그 긴 세월을 이렇게 놔두시는 것은 그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는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앞을 보지 못하는 그의 육신의 장애는 그가 예수님을 만나 육의 눈도 뜨고 영의 눈도 떠서 구원에 이르는 접촉점이 되었다. 그러기에 그의 장애는 그가 영원히 사는 길을 열어 준 영적신비 의 도구가 된 것이다.  때때로 우리 삶에 이 맹인 걸인의 상황처럼 자신의 능력으로 헤어나올수 없는 마치 어떤 족쇄와도 같은 삶의 문제와 질고들이 우리를 힘들게 할때가 있다. 그런것들이 애시당초 없었다면 너무 좋았을것이라 생각을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러할까?   

(예화3/ 중국 참새 제거운동 예화)

우리는 모두 오늘 말씀의 시각장애인 걸인처럼 삶의 문제와 고통, 기도제목 들이 있다. 마오쩌둥의 참새처럼 그것들이 다 없어지고 만사형통 되면 아무 일이 없고 너무 좋을 것 같다 생각하실 것이다. 그러나 잔잔하게 우리의 삶에 이어지는 우리의 기도제목들이 마치 바울의 육체의 가시처럼 우리를 더 기도케 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서게 하는 작은 도구로 쓰인다면 참새 같은 그런 문제들이 오히려 우리를 하나님 앞에 우리를 바로 세우고 우리에게 더 귀한 것을 단번에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속의 작은 도구임을 믿으며 기도로 품고 아멘으로 감당해내는 큰 믿음 가지시길 축원한다.   

3. 이에 가서 씻고 

갑자기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 질문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또 그것은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 함이라. 시며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해야하고 밤이 오면 그때는 일을 할수 없다며 자신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 이라는 이해할수 없는 말이 이 시각장애인의 귀에 들려온다. “이상한 소리 들 그만하고 돈이나 주고 가지” “줄 돈이 없으면 저런 소리들은 좀 멀리가서 하든가? 하루 종일 파리만 날리고 오늘 일진이 참 안 좋네 그려” 아마 이 시각장애인 걸인은 그러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퇴 퇴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지? 누가 내 앞에다 침을 뱉어..그런데 또 갑자기 눈꺼풀에 찬기운과 더불어 거칠거칠한 느낌이 들며 누군가가 그의 감은눈에 뭔가를 바르고 있지 않은가? 세상에나 랍비 예수 라는 이가 침을 뱉어 짓이긴 진흙을 눈에 바르고 있다. 순간 일어난 일에 어찌 할바 모르고 있을때에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온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내가 아무리 앞 못보는 거지로 하루하루 구걸로 연명하는 인생이지만 이건 해도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아무리 민간요법이라고 세상에 물도 아닌 침을 뱉은 흙을 내 의사를 묻지도 않고 내 눈에 바르다니? 라고 그는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 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더니 그의 눈이 떠지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다. (그의 치료의 과정과 그 이후의 일들에 대해서는 부활주일 이후에 다시 나누도록 하겠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행하신 수 많은 기적 가운데 그 자리에서 즉시 역사가 나타난 것도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사람의 행동과 순종을 요구했을 때가 있다. 과정과 결론은 똑같다. 주님 말씀대로 따르고 주님 말씀대로 순종하면 기적과 역사가 나타났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 했을 때 예상치 못했던 그 찰나의 순간에 눈이 떠지는 경천동지할 역사가 나타났듯이 사순절 특별 새벽기도회를 앞둔 이 날 새벽기도는 남의 이야기, 금식기도는 남의 이야기 라는 마음을 버리고 특별 새벽기도회에 여러분을 부르시고 기도하라 말씀하시고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아멘으로 순종하여 놀라운 응답과 기적을 체험하는 복된 주의 자녀들이 다 되시길 바란다! 

이 시간 다 같이 기도하자! 십자가의 사랑과 대속의 은혜로 우리를 불러주시고 자녀 삼아주신 주님의 그 사랑에 감사하며 우리의 남은 여생 그 사랑과 은혜를 전하는 신실한 주의 자녀가 되겠노라고 주님을 세 번 부르고 결단의 기도를 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