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3월 31일 부활절 설교  
예수 다시 사셨네 막 16:1-11

 

이천년전 어느 이른 아침, 불과 이틀전의 충격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한 세여인이 간신히 마음을 추슬러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갔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발라드리기를 원했다. 
요한복음 19장 39-40절 말씀에는 아리마대 요셉이 이미 예수님의 시신을 유대인의 장례법에 따라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샀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녀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덧바르기 위해 돌 무덤으로 가고 있었다. 그렇게 예수님이 들어가신 돌 무덤을 향해 가면서 그들의 마음은 무거웠다. 예수님이 극심한 고통속에서 가장 극악무도한 죄수들에게 내리는 형벌인 십자가 형을 당하시고 돌아가신 것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할 충격이었다. 

그런데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찾아가서 예수님의 무덤을 돌로막고 또 튼튼하게 인봉하고 또 경비병들을 세워 그것을 지키기 까지 한다니.... 지금 무덤에 가도 과연 그 큰 돌을 치우고 예수님의 시신에 그들이 준비한 향료를 바를수 있을지 큰 걱정이 되었다. 막달라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는 걱정을 하며 예수님의 무덤 앞에 다다랐다. 그런데 무덤 앞에 갔더니 경비병은 보이지 않고 인봉은 다 사라지고 심지어 무덤을 막고 있던 그 큰돌이 이미 옆으려 옮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해온 향료는 바를 대상이 사라진 짐이 되어버리고 말았고 그녀들은 무덤속에 있는 예수님을 만나러 갔다가 더 큰 근심과 걱정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 날 아침 여인들이 예수님을 찾아갔던 목적은 시신에 향료를 덧바르기 위함이었지만 실상 그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돌이 열린 무덤을 보고 당혹해하고 당황하고 있는 그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같다.  우리도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분을 만나러 간다. 나름대로 준비된 여인들의 향료 같은 헌신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내가 그래도 예수 믿는 사람인 것 같은 만족감이 들기 때문이다

여인들이 당혹해하며 돌무덤 안으로 들어갔을 때 흰 옷 입은 한 청년이 오른편에 앉아 있었다. 무덤속에 있는 흰 옷 입은 사람을 보고 여인들이 질겁을 하니 이 흰옷입은 청년이 말을 한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십자가에 달리셨던 나사렛 사람 예수를 찾고 있지만 예수는 다시 살아나셨고 여기에는 계시지 않다. 보아라. 여기가 예수의 시체를 모셨던 곳이다.  자,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전에 말씀하신 대로 너희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니 거기서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전하여라." 고 말하였다. 여인들은 겁에 질려 덜덜 떨면서 무덤 밖으로 나와 도망쳤고 처음에는 너무도 놀라운 소식에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였다. 그때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셨고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나서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그분을 만난 이야기 와 부활의 소식을 예수님의 죽음을 슬퍼하던 이들에게 찾아가 전해주었다. “예수님이 살아나셨다! 예수님이 살아나셨다!” 그 여인들이 처음 무덤에 찾아갔을 때 그들이 목적했던 바인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덧 바르는 것은 이루지 못했으나 향료를 덧 바르는 것 자체가 필요치 않은 더 놀라운 생명과 기적, 부활의 현장을 목도하게 되었다. 

우리는 삶을 살며 내가 이해하는 수준에서 예수님을 이해하고 그 정도 수준에서 그분을 믿고 따르며 또 내 이해의 범주안에 그분을 가둬두려고 할때가 있다. 왜냐면 내가 필요할 때 그분은 나의 필요에 따라 나를 도와주시는 분 이시니까.. 때때로 빈무덤을 찾아가 예수님을 뵙지 못하고 허탕친 여인들처럼 허전하고 당황스럽고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처음 흰옷입은 청년으로부터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접했을 때 너무 놀랍고 믿을수 없는 소식에 아무에게 말도 못한것처럼 입을 닫고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가 생명의 주님을 만남으로 이제는 그들이 그들이 믿든지 말든지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슬퍼하는 이들에게 전한 것처럼 우리도 부활의 증인으로 예수 증인으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