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4월 7일 주일 설교  
이 생명의 말씀을 행 5:17-32

오늘 본문 직전인 사도행전 5장 12-16절에는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통해서 행하신 놀라운 표적들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주의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데 백성들 가운데 표적과 기사를 많이 일으키셨다. 

병이 들어 고통받고 더러운 귀신 들려 괴로움에 처한 사람들이 사도들을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의 손길로 다 나음을 얻는 즉 사람을 살리고 또 사람이 살아나는 이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당시 유대교의 종교법으로 예수님을 신성모독자로 만들어 빌라도에게 넘겼고 군중들을 선동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라고 외치게 하여 빌라도는 로마의 법으로 예수님을 흉악범들이나 매달리는 십자가에 매달리는 사형수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유대교의 종교법이나 로마의 사회법이나 다 무죄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리는 죄인의 괴수로 정죄하고 말았다. 그들의 법은 곧 마귀의 사망권세에 근거한 것이었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여 죽이고 말았다. 대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 유대인들의 종교법과 당대최고의 힘인 로마제국의 법으로 예수님은 신성모독자요, 반역자요, 사형수이다. 

이처럼 종교와 세상의 법으로 재판받아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그 예수가 사흘만에 마귀의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다! 마귀의 권세, 종교법, 세상법은 신성모독자요, 사형수인 그 예수가 하나님의 법 안에서는 죽어 있어서는 안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사망권세의 지배하에 머물러서는 생명 그 자체이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살려주셨고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로 부활시켜 주셨다. 

세상의 법은 무고한 예수를 정죄하고 죽이는 법이었으나 하나님의 법은 그 예수를 살리는 법이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들도 그런 일을 경험하고 있다. 
 
사도행전에서는 세 번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람들을 옥에서 구해주시는 역사가 있었음을 증언한다. 오늘 5장 본문에 이어 12장에서 베드로를 옥에서 구해주시고 16장에서 바울과 실라를 옥에서 구해주신다. 이처럼 마귀의 사망권세에 근거한 이 땅의 법은 우리를 죄인이라 하고 우리를 옭아매려 하고 우리를 옥에 가두고 넘어뜨리고 우리를 죽이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우리를 의인이라 하고 우리를 옥에서 끌어내 주고 우리를 살리신다! 

하나님의 법은 우리도 살리고 교회도 살리는 법이다. 모두 살리는 법이다. 그러기에 세상과 마귀의 법이 우리를 옭아매려 하더라도 그것들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법이 지배하는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는 하나님이 지키시고 하나님이 살리심을 기억하고 사두개인처럼 종교의 법, 세상의 법, 마귀의 권세로 우리를 옥에 가두려는 것들은 하나님의 살리시는 법, 하나님을 결코 이길 수 없음을 기억하시길 바란다.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법 앞에서 세상법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2절 말씀에도 이렇게 증거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하나님의 법, 예수님의 법, 생명의 성령의 법만이 나를 살리고 우리 가정을 살리고 우리 교회를 살리는 법임을 알고 율법, 유대교의 종교법, 로마의 행정법 과 같은 세상의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셔서 주님 주시는 참 생기와 생명, 생령으로 가득차시는 행복한 삶의 주인공이 다 되시길 간절히 축원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성령받고 부활의 증인이 될것이라 말씀 하셨듯이 십자가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 부인했던 베드로도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라고 말하고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증인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원어로 마르투스(μάρτυς) 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가장 권위있는 옥스퍼드 어원사전에 의하면 영어의 순교자 라는 단어인 Martyr(마터)의 어원이다.

예수님 부활의 증인들, 부활의 예수를 생각할 때 그 심장이 뛰고 그 예수, 그분이 살아나심을 전하고 싶어 젊음의 시간과 정성과 온 삶을 바치는 자들, 그 분 때문에 하고 싶은 것 절제하고 누릴 권리를 포기하는 이들이 자신의 생명까지 바쳐 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였기에 바로 헬라어 마르투스 증인이 곧 영어 마터 순교자의 어원이 된 것 아니겠는가? 

물질도 없고 건강도 약하고 아무것도 아닌 내가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주의 복음전파를 위해 할수 있는게 뭐가 있겠느냐고 겸손을 넘어선 자기 비하로 자신을 위축시키지 마시라! 
2013년에 발표된 시 에서 조동화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다! 바로 우리 자신이 곧 예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고 또 증인된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삶을 드리고 목숨 바쳐 이 복음을 전했던 그 증인들, 그 순교자들의 귀한 발걸음을 따라 우리도 우리의 삶을 드리고 이 생명의 말씀,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데 삶의 시간과 헌신을 드려 언젠가 주님 앞에 설 그때 잘했다 칭찬받는 귀한 분들이 다 되시길 간절히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