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4월 14일 주일 설교  
서로 이야기 하더라 눅 24:13-18,24-35

예수 십자가의 공로로 의인과 자녀된 우리는 주님 사랑과 은혜에 붙어있기만 하면 다시 죄악의 길, 죄인의 길로 돌아갈 일이 없음을 기억하시길 바란다! 오늘도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베푸신 부활의  주님을 생각하며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그분의 음성을 받자!

1. 서로 이야기 하더라 
오늘 엠마오를 향해 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길 위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마가복음에 잠깐 언급은 되어 있긴 하나 누가복음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만나주신 장면중 가장 극적인 이야기 중의 하나이다.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약 12키로 에 달하는 길을 걸어 엠마오로 가고 있다. 4시간 동안 걷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참 다행스러운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그 길을 혼자서 걷지 않고 서로에게 동행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서로 했던 이야기들을 15절에서는 “이 모든 된 일”이라 말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19-24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예수님을 그들을 구원할 자라 생각하고 그들의 마음에 품었던  기대와 소망이 사흘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부질없이 사라져버린 그 안타까운 상황과 또 어떤 여인들이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가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예수님이 살아나셨다 전하는 천사들을 만나고 또 다른 제자 중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갔으나 무덤은 비어 있고 예수님은 만나지 못했다는 그런 이야기이다. 그들은 부활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그러나 예수님에 대해 서로 이야기 하며 낙망, 절망, 슬픔과 비애의 마음을 가지고 엠마오를 향해 걷고 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길은 기쁨과 환희에 찬 길이 아니었다. 슬픔과 비통, 낙담과 눈물의 길 이었다. 그런데도 다행스러운 것은 그 길의 동행자가 예수님에 대해 알고 예수님의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슬프고 힘든 상황 가운데 자신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서로 나눌수 있는 그런 친구가 글로바 라 불려지는 이 제자와 그 제자의 친구 였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만일 글로바 가 홀로 길을 나서고 예루살렘 인근 주막에서 예수님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이방인 이나 아니면 예수님을 못박았던 로마병정을 만나 엠마오로 가는 그 슬픔의 길에 그와 동행했다면 그는 자신의 속마음을 나누지도 서로 이야기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낙망과 절망의 마음으로 엠마오로 걸어가는 것과 같은 우리의 힘든 인생길 예수님의 이야기를 서로 나눌 수 있는 믿음의 동역자가 있으신가? 여러분이 그런 예수님 이야기의 파트너가 되시고 또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넘치시길 간절히 바란다. 그렇다! 뭔가 풀리는 것이 없고 불안하고 낙심되고 어려울때도 그 절망의 상황을 더 절망케 하는 부정적인 말을 뿌려 내 영혼육을 주저 앉히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한밤중과 같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예수님을 이야기 하는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꼭 되시고 여러분의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넘쳐나시길 간절히 축원한다! 

2. 주님과 함께 걷다!
두 사람이 낙망과 안타까움, 비통함 속에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며 엠마오를 향해 갈 때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나 그들과 함께 길을 걷게 된다. 그분은 그들의 대화의 주인공이신 예수님 이셨다. 예수님 이야기를 하며 길을 걷는 그들 가운데 예수님께서 친히 나타나 주셨다.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무겁고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형편은 달라진 것이 없지만 그래도 그들은 예수님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었고 예수님은 그 자리에 나타나시고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예수님의 이야기로 엠마오의 길을 채웠더니 예수님이 그 자리에 나타나시고 그들과 함께 걷고 계신다. 그 엠마오로 향해 가는길, 눈물의 길, 낙심의 길, 회한과 슬픔의 길에 그분이 직접 동행하고 계신다. 삶에 질고와 어려움, 눈물의 아픔의 길을 걷고 계시는가? 그 상황과 문제를 보며 되는게 하나도 없다 말하고 절대 될 리가 없다 말하고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다 말하고 내 기도는 응답 받지 못한다 말하고 이 사람 저사람 이 일 저 일 온갖 절망의 소리, 부정적인 소리, 망하는 소리, 악한 영의 소리 만 계속 하게 된다면 죽어서 썩어가는 고기가 있는 곳에 까마귀가 모이고 파리떼가 모여들고 구더기가 생기듯이 나는 더 절망하게 되고 낙담하게 되고 주저 앉게 되고 마귀에게 사로 잡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상황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이야기를 내가 하고 또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는 신앙의 사람과 서로 이야기 하면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순간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여러분의 곁에 계셔서 함께 걷고 계심을 깨닫게 될 것 이다. 예수님께서 엠마오길로 가는 두제자에게 홀연히 나타나 그 길에 동행하고 계시다! 그런데 이 두제자는 자신들과 갑자기 동행하는 이가 자신들의 대화의 주인공이신 예수님 이시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말씀은 증거한다. 이들이 눈이 가리어졌다는 것은 육신의 눈이 어두워졌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들의 육신의 눈이 어두워졌다면 어찌 11키로 에 달하는 길을 걸어서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갈수 있었겠는가? 이것은 그들의 영의 눈이 어두워져 변화된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의 귀도 닫혀서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상태 였음을 말하고 있다. 왜 그들의 영의 눈이 어두워져 있을까? 그것은 예수님께 품었던 기대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고, 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 시신 조차 어디론가 사라져 행방이 묘연한 상태라 믿는 근심, 걱정, 염려, 절망의 마음이 부활의 예수님이 나타나 자신들과 동행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근심, 걱정, 염려들은 얼마나 우리에게 손해를 끼치는가?  

3. 가자! 예루살렘으로 
슬픔과 절망의 엠마오로 가는 길 예수님이 동행하고 계셨으나 두 제자는 깨닫지 못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두 제자는 뭔가 범상치 않고 큰 선생 같은 느낌을 받으며 심장이 두근거리며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은 아직 자기와 함께 있는 분이 예수님 임을 깨닫지는 못하였다. 하룻밤 손님으로 가셨던 예수님이 그 식탁의 자리에서는 주인이 되셔서 친히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두 제자에게 주셨다. 즉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심은 바로 오늘날의 성만찬의 모형이다. 놀랍게도 그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어두운 영적인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다! 예수님!! 하고 외치는 순간 예수님은 그들 앞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제서야 그들은 서로에게 어쩐지 엠마오길에서 예수님이 말씀을 풀어주실 때 가슴이 뜨거워지더라니.. 예수님은 우리가 자신을 몰라보니 얼마나 우리가 한심해 보이셨을까 등등 여러이야기를 하며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그 감격을 나누었다. 그들이 부활의 예수님을 깨달아 죽음이 생명으로 슬픔이 기쁨으로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게 됨은 예수님을 통한 두 가지의 체험이 있은 후였다. 첫째는 말씀을 들었고 두 번째는 주님이 주시는 축복의 떡에 참여했을 때이다. 이것은 엠마오로 가는 것과 같은 슬픔과 눈물의 인생길에서 동행하시는 예수님을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 바로 말씀과 성만찬이 있는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와서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함께 성만찬에 참여함으로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서 회복되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기에 죄인들이 모인 교회, 사람들이 모인 모임인 이 땅의 교회는 많은 약함과 부족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수의 이야기와 예수 생명이 있고 그분이 임재가 있는 성례를 통해 부활의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회복의 장소이다! 그러기에 여전히 교회는 세상의 소망이고 주님의 마음과 관심이 머무르는 곳이다! 그러기에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더 사랑하고 예수님의 생명이야기 더 많이 들으시고 성만찬을 통해 주님만나는 복된 일을 계속 이어나가시길 바란다! 인생의 엠마오길을 슬픔과 눈물 가운데 걷고 계시는가? 부활의 주님이 여러분의 곁에서 여러분의 손을 잡으시고 함께 걷고 계심을 기억하시라! 이제 그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심을 깨닫고 엠마오에서 예루살렘으로 기쁨 가득 안고 부활의 소식을 전하러 간 두 제자처럼 부활의 주님으로 인해 생명을 찾고 삶의 이유를 회복하고 희망과 소망을 회복하여 예수 안의 행복자로 살아가시는 주의 자녀들이 다 되시길 간절히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