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복음! 다시 십자가! (23)
그래도 전해야 할 것 (사도행전 6:7-15, 7:54-60)


예화) 모국어를 잊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야기
한국에 오래 살다보니 자기나라 말도 못 알아 듣고 말았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귀한 말씀 정확히 깨닫고 알아들으시는 주의 자녀들이 다 되시길 간절히 바란다!  


1. 일곱 집사 (7절)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신지 10여일후 마가의 다락방에 120문도가 모여 성령님의 임재와 충만함을 받은 이후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여 예수님의 이야기와 가르침을 나누고 자신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 모든 물건을 서로 나누고 함께 생활하는 이른바 유무상통하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초대교회가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초대교회 는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섞여져 있었다. 한 부류는 열두사도를 비롯한 유대지방에 거주하며 히브리말과 아람어를 쓰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었고 또 한 부류는 그들의 선조들이 포로기 이후 유대지방 이외의 외부에 살거나 아니면 로마에 의해 종이나 노예로 끌려갔다가 다시 유대로 돌아와 살기 시작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즉 헬라파 유대인들이었다. 이들은 주로 헬라어를 사용했다. 그러니까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원래 그 지역에 거주했던 이들이고 또 열두사도가 히브리파 유대인들 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은 초대교회에서도 주류세력을 형성하였다. 
      그런데 헬라파 유대인들은 오랜 노예와 종살이에 지쳐 어려운 과정을 고쳐 선조들의 고향인 유대땅을 찾아온 이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아무래도 생활이 히브리파 유대인들에 비해 더 어려웠다. 중앙아시아 지역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이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겪는 언어나 경제 등 생활을 적응하는데 겪을 어려움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열두 사도가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며 복음전파에 앞장서야 하는데 히브리파 유대인과 헬라파 유대인들을 함께 이끌며 교회내부의 여러 가지 일들까지 하다보니 정작 중요한 복음전파가 약해지는 부작용이 생겨나게 된다. 그런 부작용이 초대교회 내의 구제 에서도 생겨나게 된다. 초대교회내에서 가장 어렵게 생활하는 구제의 대상이 있었으니 바로 과부들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주류교인들이 히브리파 유대인들이다 보니 히브리파 의 과부들은 구제를 잘 받는 반면에 헬라파 과부들은 구제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들이 생겨나게 된다. 그러다보니 교회내에서 구제의 차별로 인한 내부의 갈등이 생겨나게 된다.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열두사도가 그러한 구제 사역을 전담할수 있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명을 택하라고 말한다. 열두사도의 이 제안을 모든 성도들이 기뻐하며 이렇게 하여 초대교회의 일곱집사가 세워지게 된다.
      이로 인해 교회가 공평하게 구제를 하고 또 힘있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연약한 헬라파 유대인들을 더 섬기고 세워주니 초대교회가 더 든든히 서가고 하나님의 말씀이 더 힘있게 전파되니 예루살렘 인근에서 믿는자들의 수가 점점 더 늘어나가니 심지어 유대교의 최고 수뇌집단이라 할수 있는 제사장의 무리까지 예수님을 믿게 되는 놀라운 일이 생겨나게 되었다. 
      우리 교회는 그렇지 않지만 어떤 교회는 교회 내의 어떤 그룹들의 텃세가 심하여 새신자는 물론이고 기존신자들 조차도 그 그룹에 속해서 봉사와 섬김의 활동을 할수 없는 경우들이 있다 한다. 그런 모습은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니다. 우리 교회가 또 우리교회 내 모든 크고 작은 공동체들이 초대교회처럼 서로서로 섬기고 사랑하고 세워주는 더 복되고 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어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무리가 이 복음과 십자가의 도에 복종하게 되는 은혜의 공동체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2. 스데반 (7-8절)
      이렇게 초대교회의 구제활동에 전념할 일곱집사가 세워지는데 그 가운데 첫 사람으로 스데반이 언급된다. 스데반은 그동안은 혜성처럼 갑자기 교회사에 등장하여 혜성처럼 급히 사라진 위대한 인물이다.  스데반(Στέφανος: 스테파노스) 이라는 이름은 면류관 또는 왕관 이라는 뜻인데 보상, 명예, 명성의 뜻으로 이어진다. 영어로 스테판 또는 스티븐,발음을 쉽게한 애칭으로는 스티브나 스티비 등이 있고 여자이름 스테파니 등이 스데반에서 파생된 이름이다. 스데반은 그 이름대로 초대교회의 첫 순교자가 됨으로 천국에서 영광의 면류관을 쓰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어서 스데반이 행했던 일을 증거하며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했다고 증거한다. 
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마지막으로 스데반은 순교직전에 성령으로 충만하여 영안이 열려 천국을 봤다고 기록하고 있다. 7: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사도행전에 모두 열두번 충만 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데 그 가운데 베드로 바나바 바울 등 다 한번만 개인적으로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스데반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는 세 번, 일곱집사의 범주를 설명할때까지 포함하면 네 번이나 충만이라 하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즉 스데반은 예수로 충만한 예수의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로 충만했기에 예수 증인으로 칭찬 받는 삶을 살았고 또 그의 삶에 더한 순교의 믿음과 순종으로 우리에게 지금도 말씀하고 있다. 예수로 충만한 스데반 은 사도가 아닌 평신도요, 히브리파 주류 유대인이 아닌 헬라파 비 주류 유대인 이었음에도 은혜의 값을 알고 값비싼 은혜에 걸맞는 제자의 길을 걸어간 사람이다. 우리에게 십자가의 은혜가 주어졌다. 그 은혜는 여러분에게 값싼 은혜인가? 아니면 값비싼 은혜인가? 그 은혜는 내가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전하고 따라야 할 길인가? 바라기는 여러분 모두 예수로 충만하여 스데반처럼 그 십자가의 은혜, 그 값비싼 은혜의 길을 제자되어 따르는 귀한 분들이 다 되시길 바란다! 

3. 그래도 전해야 할 복음! (59-60절)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예수로 충만한 스데반을 통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와 이적이 예루살렘 교회의 담장을 넘어 예루살렘 인근으로 퍼지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 특히 예수를 믿지 않는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신과 출신이 같은 헬라파 유대인인 스데반이 이런 일을 행한다는 것을 듣고 회당에서 스데반과 논쟁을 하는데 도저히 스데반의 입술을 통해 나오는 성령님의 지혜의 말씀을 당할 길 이 없었다. 그러자 이들은 예수님을 모함하여 법정에 세울 때와 똑같은 악을 저지르니 사람들을 매수하여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고 다니는 것을 들었다고 참소하게 하여 스데반을 산헤드린 법정에 세웠다. 이 장면을 말씀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다.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할 때나 스데반을 죽일 때나 이들은 거짓말로 사람들을 격동시키고 그들의 종교법으로 정죄하여 죄인으로 둔갑시키는 악한 일을 저질렀다. 그러나 스데반은 예수로 충만한 사람 이었기에 마지막 유언과 같은 사도행전 7장 1절부터 53절의 증언을 통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때로부터 요셉, 모세로부터 얻는 교훈과 조상들의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기지 않는 우상숭배의 죄가 현재 유대인들에게도 행해지고 있음을 말하며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임과 같이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박히게 한 죄가 유대인들에게 있음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래서 이 말을 들은 그들의 반응이 54절에 기록되기를 “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았다” 고 기록하고 있다. 그때 갑자기 스데반의 영안이 열렸다. 하늘을 보니 하나님의 보좌와 그 영광이 보이고 예수님께서 얼마나 급하셨는데 하나님 오른쪽에 서서 스데반을 바라보고 계신 것이 아닌가? 그래서 스데반이 말한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이 하나님 오른편에 서 계시는구나!” 그러자 그들이 이를 갈며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스데반을 끌어내어 성 밖으로 내쳐 돌로 쳐서 스데반은 안구가 터지고 이가 깨지고 코가 내려 앉고 머리가 터지고 온 몸의 뼈가 부스러지는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그때 사울이 그 현장에서 돌로 치는 자들의 옷을 맡아 주었다. 스데반은 죽어가면서도 주 예수여 내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며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며 마치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주님의 품에 안겼다. 
      사람이 급사하지 않고 노화에 의해 자연사 하거나 아니면 시간에 따라 병사하는 경우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부터는 신체와 정신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그런 변화 가운데 한 증세가 섬망 증세이다. 섬망 증세가 자주 나타날수록 의학적으로는 돌아가실 때가 가까워졌다는 신호라 한다. 우리의 눈에 이렇게 의학적 표현으로 섬망 증세, 아니면 영적으로 어떤 존재가 자주 보이는 때가 분명히 올 것이다! 적어도 이 말씀을 듣는 분들은 스데반처럼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 천국이 보이고 흰옷 입은 천사가 보이고 먼저 세상을 떠나 천국에 가계신 분들이 우리를 응원하는 모습이 보이고 예수님이 만면에 웃음을 띄고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시는 은혜의 모습이 보이시길 간절히 축복한다!  
또한 이 세상에서 육신을 떠나 천국에 입성하는 그 마지막 자리가 행복하고 복된 자리가 되시길 바란다. 혹시라도 우리의 마지막 모습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이 없도록 늘 우리의 행동을 조심하며 하나님 기뻐하시는 참 성도들이 다 되어서 삶으로도 죽음으로도 끝까지 전해야할 예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주의 귀한 자녀들이 다 되시길 간절히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