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복음! 다시 십자가! (24)                                                              (2024. 06. 16)
                                            
                               어떤 외로움 (요한복음 5:1-10)


1 베데스다(2-3절)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님께서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실상 그 명절이 어떤 명절인지 말씀에는 적혀있지 않아 해석이 분분하지만 굳이 그 명절이 어느 명절인지 요한이 기록하지 않은 것은 5장의 예수님의 역사 에 그 명절이 어느 명절이냐는 것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 예루살렘의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 라 불리는 한 연못을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2절 말씀에 그 연못에는 행각 다섯이 있다고 증거한다. 행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행각(行閣,colonnade)은 기둥이 열을 지어 서 있는 건축 구조물을 말한다. 베데스다 연못에 행각 다섯이 있다는 것에 기인하여 이 행각이 구약의 율법서, 즉 모세오경을 상징하고 모세의 율법을 상징하는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즉 행각 다섯 개로 둘러싸인 베데스다 연못은  영원한 생수이신 예수님과 그에 온전한 복음에 비할 수 없는 뭔가 불완전한 율법의 지배를 받는 장소 임을 드러낸다. 베데스다 라는 이름은 아람어 ‘베트 헤스다’의 헬라어 음역으로 ‘자비(은혜, 긍휼)의 집’이다.  
      1888년 예수님의 모친인 마리아의 어머니라 전해지는 성 안나를 기념하여 지어진 성안나 수도원 구내에서 위 아래에 위치한 두 연못이 발견되었는데 이 연못이 2천년전 베데스다 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그 깊이가 최소 7-8 미터 이상 되기 때문에 실제로 일부 사본의 기록대로 천사가 내려올 때 물이 동하는 간헐천과 같은 현상을 일으켰던 곳은 그 큰 연못의 주위에 있었던 작은 웅덩이 였을 것으로 전해진다. 이천년전 사람이 한두명 간신히 들어갈만한 작은 웅덩이 라면 그 경쟁률이 얼마나 치열했을까? 베데스다 연못의 그 웅덩이에 들어가기 위해 수많은 병자, 그리고 앞을 못 보는 맹인들, 또 다리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 등등이 누워서 물이 끓어오를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그려 보시라! 또 예수님이 베데스다 연못을 가셨던 때는 명절 때 였기 때문에 수많은 순례객들이 명절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있었고 또 그 가운데는 베데스다 연못의 신기한 소문을 들어 구경삼아 그곳에 찾아온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 아닌가?
      실제로 그 연못이 동할 때 들어가면 환자가 치료되었는지 아니면 사람들 사이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설 같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많은 환자가 모여들었고 물이 동할 때 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웅덩이 하나로 들어가려고 다른 사람을 제치고 그 웅덩이로 떼를 지어 달려가는 아비규환 의 모습이 물이 움직일 때마다 계속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기대한 치유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에 더 큰 상처를 받는 일들이 생겨나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살아보겠다고 베데스다 연못을 찾아갔으나 오히려 생존경쟁의 장에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상처받고 상황과 환경, 자신의 처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원망을 키워나가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38년된 병자이다. 이런 그의 상처받은 심정과 사람들에 대한 원망은 오늘의 본문 7절말씀에 드러난다.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베데스다 연못가에는 물이 동하기를 기다리는 수많은 각색 병자들이 모여 있고 또 소문을 듣고 그 신기한 장면을 보기 위해 모여든 구경꾼들, 또 명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을 방문한 사람 등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홍수가 나면 먹을 물이 없다는 말처럼 사람은 많은데 정작 이 38년 병자를 물이 동할 때 재빨리 못에 들어가게 도와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다른 아픈 사람들, 즉 병자들이 자기가 먼저 또 자기만 물이 동하는 못에 들어가겠다고 이 38년된 병자를 제치고 밀치고 못으로 뛰어가는 일만 반복이 되었다. 그러기에 이 병자는 사람
 은 많은데 정작 자신은 그 사람들 때문에 더 상처받고 낙망해있는 악순환의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병을 고쳐보겠다 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가지고 베데스다 연못을 찾아갔다가 거기서 몸과 마음의 상처와 병을 더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생기고 말았다. 이 38년된 병자의 군종속의 고독, 이 병자의 이 어떤 외로움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의 마음 일 수 있다. 세상에서 힘들고 어려워 위로와 힘을 얻기 위해 교회에 왔으나 이런저런 상황들과 사람들로 인하여 위로와 힘을 얻기는커녕 몸과 마음의 상처만 얻고 신앙의 손해를 보며 고민하고 계시지는 않으신가? 이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을 가지고 다같이 오늘의 본문 6절 말씀을 함께 읽자! 

2. 네가 낫고자 하느냐?(6절)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우리 주님께서는 군중속의 고독을 느끼며 실의와 원망, 절망에 빠져있는 이들이 가득 모여 있는 그 연못가에 찾아오셔서 38년이나 병에 걸려 몸과 맘이 만신창이가 되버린 병자를 보시며 그의 병이 오래된 것을 아시고 사랑과 긍휼이 가득한 음성으로 병자에게 물으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 예수님의 질문에 38년된 병자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우리가 살펴보았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는 질문에 “예 그렇습니다 뉘신지는 모르겠으나 선생님 같으시네요. 네 병이 낫고 싶습니다 그러니 잠시만 계시다가 물이 동할 때 나를 저 연못에 좀 넣어주세요!” 라고 그 병자가 답을 했다면 그것은 베데스다 연못의 물이 동할 때 일번으로 들어가 병이 고침 받기를 원하는 38년된 병자의 입장에서 가장 완벽한 답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병자는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받은 그 마음을 동문서답 하듯이 쏟아내었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라는 그의 말은 병이 낫고자 하는 의지 보다는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사람들과 오랜 병세에 찌들어 버린 자신의 상황과 처지를 바라보며 나는 이곳에서 병이 나을수 없겠다 하는 극심한 좌절감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한탄, 그리고 사람들은 많으나 자신을 돕는 이들은 없는 상황 속에서 오는 원망과 절망감이 어우려져있다.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 하시는가? 이제 다같이 8절 말씀을 함께 읽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예수님께서 무너져버린 자존감과 절망에 사로잡혀 있는 그에게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일어나라는 말씀이다! 그가 일어날 수 있었으면 38년동안 널브러져 있었겠는가? 그리고 12-13절에도 나오듯이 지금 38년된 이 병자는 자기에게 일어나라는 사람이 예수님인것도 모르고 있는 상황이다.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요 5:12-13) 
      그러니 38년된 병자의 입장에서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와서 갑자기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더니 일어나라고 말씀하였던 것이다. 일어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나는 38년 동안이나 환자이니 남의 도움이 없이는 일어날 수 없다는 그의 안된다는 생각, 원망의 생각, 부정적인 생각의 자리에서 주의 권능과 능력을 힘입어 일어나라는 명령이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자리를 들라는 말씀은 땀에 쩔어있을 그 거적떼기 같은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너는 이제 
더 이상 병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니 그 자리가 필요 없다는 선포이며 그것을 믿고 따르는 순종의 행위를 할 것을 말씀하심이다. 또 걸어가라 는 말씀은 이제 주위사람들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이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제치고 못에 들어간다고 사람들을 원망하고 한탄하는 그런 모습에서 당당히 치유받은 자의 모습으로 간증자로 살아가라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이 시간 우리에게도 말씀하신다!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일어나시라! 자리를 드시라! 걸어가시라! 현실과 상황의 안된다는 생각에서 일어나십시요! 과거의 아픈 흔적의 자리를 드십시요! 그리고 예수님 손 붙잡고 남은 인생의 여정을 힘입게 걸어가십시요! 그 말을 들은 이 38년된 병자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는가? 다같이 9절 말씀을 받들어 읽자! 

3.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8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예수님께서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말씀하시자마자 그 사람은 바로 나아서 자리를 들어갔다 할렐루야! 그 치료가 얼마나 순식간에 임했는지 곧 이라는 부사가 나타낸다. 곧 이라는 말로 쓰인 헬라어 유데오스(ευθεως) 는 곧 당장 즉시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신 직후 이 38년된 병자가 일어설수 있을까 일어서볼까 말까 고민할 틈도 없이 즉시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38년간 그 병을 고치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는가? 좋다는 약, 민간요법, 잘 고친다는 의사 들 다 만나러 다니다 백약이 무효하니 이제 베데스다 연못까지 와서 널브러져 죽어가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자마자 즉시 그는 일어났고 자리를 들었고 걸어갔다! 오늘날에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붙드는 분들에게 일어나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역사를 하나님께서는 허락해 주신다. 
이 시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38년된 병자처럼 몸과 마음에 상처 받아 쓰러져 있는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 말씀하신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주님의 강권적인 만지심과 그 역사로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삶으로 간증하는 복된 삶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길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