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복음! 다시 십자가! (26) (2024. 06. 30)
무엇을 보고 있는가 (역대하20:1-4, 12-15, 20-23)
1. 원인 (1절)
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
오늘 말씀은 남유다의 4번째 왕으로서 35세에 왕이 되어 25년간 통치한 왕인 여호사밧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호사밧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심판하신다’라는 뜻을 지녔는데 역대기에서 히스기야 요시야 등과 함께 가장 많은 부분에서 등장하면서 이들과 함께 다윗의 길과 행적을 따른 남유다의 3대 선왕으로 평가받고 있는 왕이다. 여호사밧은 산당과 아세라목상을 제거하였을 뿐만 아니라 방백, 레위인, 제사장등을 각 지방으로 보내어 율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선왕인 아사가 점령한 도시들에 수비대를 주둔시키고 요새와 국고성을 건축하고 군대를 양성하여 무려 116만명의 대군을 갖게 되었다. 즉 여호사밧은 종교개혁을 시작으로 신앙교육과 국방력증대에도 힘을 써 나라를 안정시켜 나갔다. 그래서 이웃나라들은 감히 여호사밧이 다스리고 있는 유다나라를 침략하지 못했고 이웃나라들로부터 조공을 받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이처럼 내 외부적으로 안정되어 갈 때가 항상 시험에 빠지기 좋은 시기이다. 항상 무엇이 잘 풀리고 잘 되어갈 때 자신을 돌아보고 더 조심해야 하는데 여호사밧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바로 북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 이었던 아합의 딸을 자신의 아들 여호람과 결혼시키고 아합과 사돈관계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런데 이때 여호람과 결혼한 아합과 이세벨의 딸이 아 딸리는 여자인 악녀 아달랴 이다.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고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었더라(역대하 18:1)
이웃 나라들끼리 정략결혼을 통해 자신들의 왕권을 강화하고 상호 관계를 혈맹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가장 명확한 동맹의 방식이다. 그러나 다른 집안도 아닌 아합과 이세벨의 딸을 며느리로 들였다는 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매우 잘못된 인간적인 판단에 불과하다. 이를 통해 뭔가 좋지 못한 일이 생길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아합은 길르앗 라못을 공격하는데 여호사밧에게 함께 연합군을 형성하여 공격하자 제안했고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구하지도 않고 아합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결과적으로 이 전투에서 아합은 화살에 맞아 죽고 여호사밧은 변장하여 살아남긴 했으나 선견자 예후로부터 큰 책망을 받게 되는데 그 기록이 역대하 19장 2절에 기록 되어 있으니 다 같이 받들어 읽자.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바로 악한자인 아합을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인 아합과 이세벨 일당등과 함께 연합하여 그들과 악한 일을 도모하는 것이 옳지 못함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임할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생각대로 잘 풀려질 때, 또 오랜 기도가 응답 받았을 때, 또 가정이 너무나 평안할 때 등 특별한 걱정거리가 없을 때 여호사밧처럼 실수 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런 응답이, 또 그런 평안함이, 그런 문제의 해결이 마치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또 인맥과 능력으로 된 것처럼 착각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사람의 생각을 따라 어떤 일을 행하기 시작할 때 여호사밧이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를 며느리로 들이게 되고 또 함께 길르앗 라못 전투에 나가는 큰 잘못을 범하게 되어 하나님의 진노의 징계를 받게 된 것처럼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 어떤 일이 응답받고 잘 되고 잘 풀릴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고린도전서 10장 12절 말씀을 꼭 기억하시길 바란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그렇다! 선줄로 생각할 때 넘어질까 조심하시기 바란다! 잘될 때 응답이 있을 때 묶인 것이 풀릴 때 내가 내가 내가 하면서 나를 높이고 교만하다 넘어져서 해입지 말고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끝까지 하나님 붙들고 승리하는 주의 자녀들이 다 되시라!
2. 위기(危機) (2-3절)
어떤 사람이 와서 여호사밧에게 전하여 이르되 큰 무리가 바다 저쪽 아람에서 왕을 치러 오는데 이제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에 있나이다 하니/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오늘 본문에서 여호사밧이 당하는 위기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아합과 사돈이 되고 함께 전투에 나간 실수 이후로 사법제도를 개혁하며 하나님의 뜻에 맞게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견자 예후의 예언대로 아합과의 야합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모압-암몬-마온의 연합군 이라는 모습으로 여호사밧에게 임하고 말았다! 116만의 대군이 있는 여호사밧도 세나라의 연합군이 자신의 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다가옴은 감당할수 없는 일생일대의 위기 였다. 정확한 수는 알수 없으나 20장 2절과 12절에 공통적으로 이 연합군에 대해 ‘큰 무리’ 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유다의 군사의 수로도 감당할수 없을만큼의 엄청난 대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세나라의 연합군은 하사손다말이라고 하는 엔게디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불과 40키로 지점에 위치한 곳이다. 그러니까 지금 여호사밧은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최악의 상황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런 전쟁의 위기가 물려올 때 어떻게 해야할까? 보통은 전쟁의 상황에서 이럴 때 먼저 자신들의 방비를 점검할 것이다. 적들의 이동경로와 속도를 정찰병을 보내 살피면서 저 정도의 속도면 몇일 후면 도착할것인가 파악하고 또 적의 무기는 어떤 무기가 있고 그 무기에 대한 아군의 대비는 어떠한가 등등을 점검할 것이다. 또 백성들의 심리적 동요가 없도록 또 내부에 침투한 첩자들로 인해 유언비어 등이 돌지 않도록 할것이며 무엇보다도 군사들을 요소요소에 배치하고 거리에 맞는 무기들을 적절한 곳에 배치함으로 적의 진격을 막아내는 것이 일반적인 전쟁의 모습이다.
그런데 두려움에 가득찬 여호사밧은 제일 먼저 어떻게 하였을까?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한다.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그런데 놀라운 장면이 나타난다. 여호사밧은 유다백성에게 금식하라고 공포했지 모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4절 말씀을 보자.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나라의 위기의 순간이 되니 나만 살겠다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려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들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다는 말씀이다. 그 상황가운데 여호사밧은 이스라엘 조상의 하나님. 하늘에 계시고 온 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높이며 기도를 시작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수 없음을 지극히 겸손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고백하니 그것이 12절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어떤 위기가 닥쳐왔을 때 어떤 일이 터졌을 때 위기 대처 메뉴얼이 있어서 순서대로 잘 대처하면 좋으련만 대부분은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호사밧의 경우가 그러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에 살고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세나라의 연합군이 연합하여 갑자기 쳐들어 오니 여호사밧왕은 어찌할바를 모르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겸손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인생의 광야길 걷는 가운데 극한의 상황, 삶의 위기가 다가올 때 그때가 곧 하나님이 일하실 기회이고 하나님의 역사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믿으며 큰 어려움이 왔을 때 주님만 바라보시고 큰 파도가 오면 더 크게 파도타기를 할수 있음을 기대하며 이제 내가 큰 간증의 주인공이 되겠구나 믿음의 입술로 선포하며 승리하는 주의 자녀들 다 되시길 축복한다!
3. 찬송이 시작될 때(22절)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어떻게 할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라고 하나님께 여호사밧이 매달렸을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함께 하고 있던 레위사람 야하시엘을 통해 놀라운 응답의 말씀을 주신다. 즉 야하시엘은 선지자 가 아니고 레위지파의 보통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여호사밧과 백성들에게 들려주신다! 놀랍게도 그는 다윗시대에 세워진 찬양대 대장이었던 아삽의 5대손 이었다. 왜 많고 많은 백성들중에 레위인이며 많고 많은 레위인중에 찬양대 대장의 후손을 택하여 하나님께서 놀라운 말씀을 주셨을까? 또한 야하시엘이라는 이름의 뜻도 놀랍다.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보심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내셨다 라는 뜻이다. 즉 여호사밧과 이스라엘의 모든 상황을 다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찬양대 대장인 아삽의 후손 야하시엘의 입술을 통해 말씀하신다! “큰 무리가 몰려온다고 두려워하거나놀라지 마라 이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그러면서 내일 그들을 만나러 내려가라” 하며 내일 그곳에 가서 이렇게 하라고 17절에 말씀한다.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야하시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받은 여호사밧과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한다! 이것이 중요하다! 야하시엘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음에도 반신반의 하며 우왕좌왕 했으면 이들에게 놀라운 승리의 역사는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사밧과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100% 신뢰했다. 그래서 여호사밧과 백성들은 다음날 군대앞에 찬양대를 세워 행진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라고 찬송하게 하였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생긴다. 어떤 일이 생겼는가? 22-23절 말씀에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여호사밧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칼한번 휘두르지 않고 화살 한번 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며 찬양함으로 모압 암몬 마온 연합군을 진멸시켰다. 그래서 그들이 남기고간 재물과 의복과 보물 즉 전리품들을 무려 사흘간에 걸쳐서 거두어 들이고 넷째날 그들은 브라가 골짜기에 모려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브라가 의 뜻은 축복이라는 뜻이다. 원래 그곳은 특별한 이름이 없는 이름 모를 골짜기에 불과했고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곳에서 패했다면 그곳은 또 다른 눈물 골짜기 아골골짜기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극한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신뢰하고 의지하며 찬양함으로 눈물의 골짜기/ 아골골짜기가 될뻔한 그곳이 브라가 골짜기로 축복의 골짜기로 바뀌게 되었다!
오늘도 모압의 연합군과 같은 인생의 위기들이 닥쳐올때에 문제와 상황 보면서 두려워하고 낙망하고 절망하지 말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실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기도와 찬송으로 주님을 더 강하게 붙드시라! 그러면 눈물골짜기가 될뻔한 골짜기를 축복의 골짜기 찬양의 골짜기인 브라가 골짜기로 바꾸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열어주시고 풀어주시고 승리케 하여 주실것이다! 그래서 삶의 브라가 골짜기에서 주신 응답과 복으로 하나님을 더 크게 찬양하는 삶의 승리자들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