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하였더라 사사기 2장 4-17
  
1. 눈물
4-5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그러므로 그 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고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사사기는 모두 2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패턴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에 대한 불충과 반역, 그리고 그런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즉 보응, 그리고 징계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감,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하고 다시 회복시키시는 구원과 회복의 이 네가지가 원의 형태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며 사사기의 내용이 진행된다. 
이 네 패턴은 흔히 4R 이라는 말로 정리를 하는데 이것은 반역;도전(Rebellion)-징벌(Retribution)-회개(Repentance)-구원;회복(Rescue;Restoration) 
이다. 이 4R의 패턴이 계속 반복되며 사사기의 분위기는 늪에 빠져가는 사람이나 침몰해가는 배처럼 점점 좋지 못한 상황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 (2:1) 
광야에서 출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첫 할례를 받고 가나안땅의 첫 소산물을 취하였고 또 이곳에서 첫 유월절 절기를 지킨 곳이기로 길갈은 곧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을 상징하는 땅이다. 이 은혜의 땅에서 보김 이라는 땅으로 여호와의 사자가 찾아왔다. 
그런데 보김(בֹּכִים) 이라는 지명의 뜻은 통곡 또는 통곡하는 자라는 의미를 지닌다. 실상 사사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눈물과 통곡으로 시작하여 눈물과 통곡으로 끝나는 책이다. 그 시작 부분의 통곡이 2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길갈에서부터 온 천사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가나안 주민들과 화친하며 그들의 제단을 헐라 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신실하게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더 이상 그들의 대적을 없이하지 않을것이고 가나안 사람들이 가시 같은 존재가 되어 이스라엘을 괴롭힐 것이고 그들의 신은 이스라엘에게 올무가 될 것이라는 강한 경고의 말을 전하였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대로 살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후회하며 대성통곡하며 하나님의 그 마음을 돌이켜보고자 보김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까지 나가지 못하고 하나님의 징계를 피해 보고자 면피용으로 드리는 순간의 제사는 하나님의 회초리를 피하게 하지 못하였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또한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손바닥의 안과 밖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은 좋아하는데 때때로 공의의 하나님은 애써 생각하지 않고 피하려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은 죄악에 대해서는 꼭 깨닫게 하시고 진정으로 돌이키는 자들은 살려주시되 깨닫지 못하는 이들은 징벌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꼭 기억하시길 바란다! 우리는 허물 많고 부족한 죄인들로서 죄악된 세상에 살기 때문에 마음으로 행위로 또 부지불식간에 죄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죄를 짓고 잘못했음을 깨달았으면 진정한 회개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살려주신다! 

2.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사사기 기자는 보김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눈물이 하나님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음을 기록한 후 이어서 여호수아와 여호수아 직후 시대로 시선을 돌린다. 7절 말씀에는 두 세대의 그룹 즉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에 함께 했던 사람들과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에 살아 있었던 장도들의 두 그룹에 대해 같은 수식어로 이들의 모습을 풀이하고 있다. 그러니까 여호수아 당시의 세대와 여호수아 직후 세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모든 큰일을 보았다. 즉 직접 목도 했다고 증거하고 있다. 
그런데 그처럼 하나님께서 행하신 큰일을 보고 또 하나님을 섬긴 앞선 두 세대가 있었던 반면에 또 이런 일이 생겨남을 10절에 기록하고 있으니 다같이 10절 말씀을 받들어 읽자!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그런데 눈여겨보아야 할 특이한 표현이 나오는데 바로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라는 표현이다. 그 세대의 사람들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들의 후손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라고 표현해도 될 것인데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라는 표현은 어떤 의미일까? 여기서 다른 이라는 말에는 “아헤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다른 세대”는 시간적으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후손들의 뜻보다는 하나님에 대해서, 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해서 알지 못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기본을 다 놓쳐버린 안타까운 후손들에 대해 이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예화) 지난 5월 7일 국민일보 기사에 의하면 한 SNS에 시골교회에서 어린이 주일 예배를 드렸는데 어린아이가 한 명도 없었다는 글이 올라와 보도를 했다. 기사에 의하면 지난 2년전 우리 교단 서울서북노회의 주일학교 운영률이 57%에 불과하다고 보고 되었다. 그뿐인가 우리나라 전체 청소년 중 신앙인이 3% 가량에 불과하고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가 되면 90% 이상이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는 보고도 있다. 
진정 우리의 다음세대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을 가만히 방치하면 그들은 21세기 AI 시대의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가 되어버려 하나님도 모르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도 모르는 그런 안타까운 세대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들을 신앙 안에 바로 세우는 것은 바로 우리 세대의 거룩한 책무이고 사명이다. 우리의 자녀들, 교회학교 다음 세대들은 우리 교회의 희망이며 우리 사회의 희망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위해 더 기도해야 한다.
 
3. 어디로 가든지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본문 11절부터는 이 다른 세대가 경험하게 되는 모든 영적 타락과 삶의 모습에 대해 그 민낯을 보여준다. 항상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 나타나는 현상인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비롯한 가나안 원주민들이 믿는 여러 우상들을 섬기게 된다. 이렇게 이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가 하나님께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였으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대적에게 당하도록 그냥 방치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믿어 구원에 이르렀지만 우리의 자녀들,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가 되어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구원을 알지 못하며 천국을 소유할 수 없게 된다면 그들도 역시 어디로 가든지 안되고 막히고 꼬이는 절망의 인생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가 되어 어디로 가든지 재앙을 받고 심한 괴로움을 당하는 자들이 되게 할 것인가? 아니면 예수 잘 믿고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어디로 가든지 형통한 자녀와 다음 세대들이 되게 할 것인가? 그 책임이 바로 부모된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바라기는 우리와 우리의 자녀와 다음 세대들이 다 예수 잘 믿고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어디로 가든지 형통한 복을 받아 누리게 되기를 간절히 축복한다. 
우리 교회에는 많은 선생님들이 시간과 정성과 물질 바쳐서 우리의 자녀들과 다음 세대를 위한 헌신을 하고 계시다! 그분들의 정성과 헌신에 우리는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 가정과 교회, 사회의 미래를 위한 섬김에 기도로 동참해야 한다. 또한 청년과 3040 젊은 세대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알고 하나님을 더 잘 알아 갈 수 있도록 사랑으로 격려해주고 잘 섬겨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자녀들과 다음 세대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과 동행하여 어디로 가든지 형통케 되는 복을 받게 되는 길이며 그렇게 우리의 자녀들과 다음 세대, 그리고 그 일을 위해 헌신하시는 교회학교 목사님 전도사님들과 선생님들을 우리가 섬길 때에 그 정성과 섬김을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고 우리에게 큰 복과 은혜를 쏟아 부어 주실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