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복음! 다시 십자가! (7)                                                            (2024. 08. 18)
초월(超越)  (막 2:1-12)

예화) 지하철에서 과도하게 장난치는 어린 아들을 자제시키려는 엄마가 어린 아들에게 건너편 할아버지가 “이놈!” 하며 혼내주실 거라고 얘기했지만, 그 할아버지가 “내가 왜 ‘이놈’이라고 해?”라고 말씀하셔서 모두 당황했다는 이야기

마가복음의 말씀을 통해 여러 한계를 뛰어넘은 초월의 기록들이 우리에게 증거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들려주시는가 기대하며 다 같이 본문 1-2 절을 받들어 읽자! 

1.  모인 사람들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오늘 말씀의 배경은 가버나움 이라고 하는 지역이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의 북서쪽 해안에 위치한 인구 1500여명의 큰 성읍으로 예수님 당시 로마의 백부장이 통솔하는 군대가 주둔하며 또 세관이 있었던 곳이다. 가버나훔은 위로의 마을이라는 뜻으로서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의 중심이 되는 곳이며 예수님의 제2의 고향이라는 별명 까지 가지고 있는 곳이다. 가버나움 사람들은 예수님의 복음전파사역을 지근거리에서 목도하고 체험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주님이 행하신 기적을 눈으로 보고 생명의 진리를 말씀을 귀로 듣는 실제적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으로부터 큰 책망을 받고 말았다. (마태복음 11:20; 23-24) 
가버나움의 한 집에 예수님께서 들어가신다. 가버나움에서 예수님께서 머물고 계신 집은 베드로와 안드레의 집 이었을 것이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갈릴리 호수에서 제자들을 부르신 이후 회당에서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자 그 소문이 삽시간에 가버나움 일대에 퍼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모여들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몰려드니 예수님은 사람들을 피해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모여들었다고 말씀은 기록하고 있다. 이런 예수님의 인기는 곧 당시 종교 지도자들인 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들의 질시를 받게 되고 이것은 곧 그들이 예수님을 향해 올무를 놓게 되는 기점이 되고 만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이 가장 많은 기적을 행하셨던 가버나움은 예수님으로부터 책망과 멸망의 정죄를 받는 곳이 되어버리고 말았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구름떼와 같이 벌떼와 같이 모여든 사람들은 정작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자리에서는 그 자리를 외면하거나 아니면 다른 군중들 속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외치는 자들로 변절하고 말았다. 호기심과 욕구충족 등 자기의 필요 때문에 예수를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우리의 필요와 욕구충족 때문에 예수님을 이용하는 무리들이 하나도 없길 간절히 바란다. 내가 필요할 때만 내가 좋을 때만 내 이익과 유익에 따라 예수 만나려 하지 말고 예수 이용하려 하지 말고 비가 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햇살이 비추나 괴로우나 즐거우나 예수 따라가는 참 예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길 축복한다.  

2.  지붕을 뜯는 사람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그때 가버나움에 한 중풍병자가 있었다. 이 사람을 네 사람이 메워서 침상에 눕힌 채로 예수님께로 데려간 것을 봤을 때 이 사람은 전신마비이거나 전신마비에 가까운 심각한 상태의 환자였다. 중풍병자의 상황은 한마디로 절망 그 자체였지만 가버나움 인근에서 병을 치료하고 다닌다는 한 나사렛 출신의 청년 예수에 대한 이야기는 그와 그 주위사람들에게 희망의 씨앗이 되었다. 
그런데 그 예수를 만나러가기에는 너무나 큰 문제들이 있었다. 먼저는 전신마비 환자로서 스스로 거동하여 예수님을 만나러 갈 수 없었고 또한 여러 노력 끝에 그가 계신 곳으로 가더라도 과연 예수님을 직접 만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네 사람이 침상에 중풍병자를 눕히고 얼마나 긴 거리를 걸어갔을까?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예수님을 만나기는커녕 그분의 목소리도 한마디 듣지 못하고 말 상황이었다. 그때 한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건물 옆으로 돌아가 지붕을 뚫고 달아내리면 예수님 앞에 바로 갈수 있잖아? 
그런데 이런 돌발적 현실 앞에서 이들의 난처한 상황을 뛰어 넘는 한 가지 갈망이 있었으니 그것은 ‘예수를 만나야 산다!’는 것이었다. 예수를 만나야 고침 받고 예수를 만나야 산다는 그 갈망은 다른 모든 이성적 판단과 도덕의 기준, 법의 기준을 뛰어 넘었다. 즉 예수님을 만나게 하여 이 죽어가는 중풍병자를 살려야 한다는 그들의 갈망은 모든 장애를 다 뛰어넘고 그들을 무엇에 홀린 듯 지붕으로 올라가게 만든다. 
중풍병자를 달아내린 이들의 행위는 당시 사회의 법, 도덕, 관습 모든 것들을 뛰어넘는 초월적 행위이다. 초월(超越) 이라는 한자어는  1) 어떠한 한계나 표준을 뛰어넘음 2) 경험이나 인식의 범위를 벗어나 그 바깥 또는 그 위에 위치하는 일 이라는 사전적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어떤 기준과 한계를 뛰어넘는 발상의 전환을 함으로 어려운 문제들이 해결되는 경우들이 있다. 
예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충남 서산에 방조제를 공사 도중에 난관을 만났지만 상식을 초월하는 아이디어로 성공한 이야기
막혀 있는 상황, 안될 것 같은 현실 속에서 그것만 보며 한탄하며 주저 앉고 포기 하는 것은 일상다반사로 경험하는 일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상황과 문제보다 크신 주님께 나아가야 그것이 풀린다는 믿음, 또한 살고 살려야 한다는 그 네 친구의 믿음은 지붕을 뚫고 예수님 앞으로 중풍병자를 달아내리게 만들고야 만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그를 맞이하셨는가?

3. 죄 사함 받고 고침 받은 사람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예수님께서는 당시 법과 질서와 상식을 초월한 그들의 행위를 보며 살려고 하는 또 살리고자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고 말씀은 증거한다. 중풍병자는 지금 병이 낫기 위해 모든 상황과 결례를 무릅쓰고 천장에서 예수님 앞으로 내려왔다. 그때 예수님의 그를 향한 첫 말씀은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씀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예수님께 나아온 인생들이 해결받아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죄의 문제 임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실상 중풍병자나 도움을 준 네 사람이나 중풍병의 치유에는 관심이 있었으나 죄의 문제는 인식하지도 못했고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삶의 문제 이전에 선결과제로서 죄라고 하는 핵심적인 문제가 있음을 밝히 보여주신다. 그 장면을 보며 죄 사함의 권세가 있냐 없냐 하며 트집잡은 이들이 있었으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그들의 훼방에 개의치 않으시고 이제는 그 병자와 네 사람의 문제까지도 한방에 해결해 주시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짧은 이 한 문장에 무려 세 개의 명령어가 들어있다! 일어나라! 네 침상을 챙겨라! 그리고 집으로 가라! 우리는 전신이 마비된 중풍병자다! 예수님 앞에 나가서 그 분을 만나야 산다는 거룩한 갈망을 품으시라! 살고자 하는 그리고 살리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시라! 그런 마음을 품고 주님께 나아갈 때 그런 여러분을 우리 주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주님 앞에 여러 어려움, 질시, 외면, 무관심, 훼방을 무릅쓰고 기도로 나아가시라! 그러면 그분이 여러분에게 이 음성을 들려주실 것이다. “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이제 2주후면 우리는 세분의 강사를 모시고 3인3색 특별한 밤과 한 주간 동안 기도에 대해 집중적으로 되새기는 특별새벽기도회를 하게 된다! 기도로 준비하시고 주님 앞으로 나오시라! 그래서 그 귀한 천국잔치를 통해 주님 만나고 죄 사함과 회복, 치유와 응답의 복을 누리는 구하고 복된 주의 자녀들 다 되시길 간절히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