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복음! 다시 십자가! (35) (2024. 09 01)
부스러기 은혜 (마태복음 15-18-28
유머)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며 유머로 상황을 전환시켜 잘 마무리 했던, 친구라는 별명의 선생님 이야기
어떤 상황속에 예상치 못한 답이 나와 상황이 급반전 되며 잘 마무리되는 경우가 있는데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도 그런 일이 있었으니 9월의 첫날이며 첫 주일 마태복음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자!
1. 입에서 나오는 것들 (18-20절)
어느 날 유대인들의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아와 제자 중 몇 사람이 씻지 않은 손으로 떡을 먹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옳구나!’하고 무릎을 쳤다. 왜냐면 그들은 손을 씻지 않고는 음식을 먹지 않고 그 외에도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정결규정을 잘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유대교의 전통적인 정결규정을 어기고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으니 뭔가 트집거리가 없나 하고 예수님을 찾아온 그들에게 좋은 생트집 거리가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외식하는 자들이라 말씀하시는데 외식하는 자 라는 말은 곧 위선자라는 뜻이다. 겉으로는 너희가 모세의 율법과 유대교의 전통을 지키는 것처럼 말을 하지만 실제로 너희들은 겉과 속이 다른 “외식하는 자” 곧 “위선 자”라는 말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그들에게 신랄한 비판을 하시고 정결의 규정을 새롭게 재규정하시는데 바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 말씀하신다. 즉 겉으로 보이는 규례 하나를 기계적으로 습관적으로 지키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의 내면의 창고 속에서 드러나는 죄악의 문제가 본질적인 악의 문제임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마음에서 시작하여 입으로 나오는 그러한 더러운 것들에 대해 모두 7가지를 말씀하신다. 바로 19절에 나오는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언, 비방이다. 그런데 오늘의 병행본문인 마가복음 7장 21절~22절에는 모두 13가지의 입으로 나오는 악행들이 기록되어 있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것들은 예레미야서 17장 9절의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는 말씀을 예수님께 확인해 주시는 것처럼 보인다. 예수님을 만나 구원에 이르지 못한 죄악된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은 단 하나도 선한 것이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본래 악한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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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입장이 유교의 성선설 쪽인지 성악설 쪽인지 아니면 다른 기준이 있는지는 나중에 자세히 말씀드릴 때가 있을 것이나 오늘은 전도서 7:29 한구절만 살펴보자!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본래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죄인된 인간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라 말한다. 즉 오늘 마태복음의 7가지 또 마가복음의 13가지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은 인간의 낸 많은 꾀 중의 하나이다. 항상 우리가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마음을 놓아버리면 바리새인처럼 위선자가 되어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것들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날마다 사도바울의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는 믿음의 고백을 되새기며 날마다 십자가 앞에서 나의 죄악 된 자아와 마음과 입술을 죽이며 하늘을 향해 기도의 입술을 열어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큰 응답 받는 복된 주의 자녀들이 다 되시길 간절히 바란다.
2. 주 다윗의 자손이여 (21-22절)
이제 말씀의 배경이 달라진다. 여기서 마태는 한 이방인 여인의 큰 믿음을 보임으로 바리새인과 서기관 등 유대인들의 위선적인 행동과 대조하며 복음이 유대인들의 범위를 넘어서서 이방인에게까지로 흘러갈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어느 지역에 계시다가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셨다. 두로와 시돈은 세계사에게 페니키아로 성경에서 베니게 로 나오는 지역의 항구 도시로서 두로는 솔로몬 왕때 두로의 왕 히람이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위해 백향목을 보낸 것을 성경에 알려진 지역이며 시돈은 아합왕 때 왕후인 악녀 이세벨의 고향이다. 그러니까 두로와 시돈은 이방지역 이었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아마도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에서는 너무나 알려진 유명인사 였기 때문에 이방의 한적한 곳을 찾아 그곳에서 분주하지 않고 차분히 복음을 전해보고자 했을 수 있다. 그것은 오늘의 병행본문인 마가복음 7장 24절에 예수님께서 두로 지방의 한 집에 아무도 모르게 계시려 했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두로 지방의 한집에서 가시며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그 집에 계시고자 하셨으나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이 두로지방에까지 예수님이 누구 집에 머물고 계시다고 하는 소식이 퍼져버렸다. 마치 아이돌 스타나 유명배우가 공항에 입출국을 하게 되면 어떻게 알았는지 언론사나 유튜버, 파파라치 등이 몰려들어서 공항패션이네 어떤 명품백을 들었네 하며 시시콜콜한 것까지 보도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되어 버리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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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로와 시돈 지방의 한 집에 들어가 계신 예수님 앞에 한 여인이 갑자기 나타났다. 오늘 본문에서는 가나안 여자 라고 표현하고 있고 병행본문인 마가복음 7장에서는 수로보니게 여인이라 부르고 있다. 이 지역은 오늘날의 레바논 지역으로서 수리아 라는 나라 이름과 페니키아 즉 베니게 라는 지역명이 합쳐서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베니게 사람들은 그 지역의 원주민이었던 가나안 사람들의 후손들이었기 때문에 마태의 기록처럼 가나안 여자로 부르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이 여인은 천시당하던 여자에 이방족속 게다가 원래는 진멸해야 하는 대상이었던 “가나안 사람”이라고까지 그 신분을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유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심지어 무시와 천대까지 받았던 그 이방인 여인의 입에서 놀라운 표현이 나왔으니 그것은 바로 “주 다윗의 자손 이여!”라는 말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은 유대교 지도자들의 입에서는 전혀 나오지 않을 그 표현,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는 주 다윗의 자손이여 라는 표현이 이방 여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벌써 그 가나안 여인,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을 자신의 가장 큰 문제에서 구원해줄 메시야 로 인정하고 있음이 그 표현에서 드러난다.
그녀를 예수님께로 나아오게 만든 삶의 큰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이 여인의 딸이 흉악하게 귀신에 들려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흉악히 라는 말로 쓰인 헬라어 “카코스”는 신약성경에 16번 나오는 단어로서 ‘병들다’, ‘앓다’, ‘비참하게’, ‘악하게’, ‘잘못되게 하다’는 의미와 용례로 사용되었다. 그러니까 딸이 귀신 들려서 병들어서 비참하게 되어버리고 만 형편을 여인은 예수님께 아뢰고 있는 것이다. 이 여인이 예수님을 용한 의사로 생각했다면 병이 든 환자 본인, 즉 자기 딸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왔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여인은 예수님을 병을 신기하게 고쳐주는 용한 의사를 넘어서는 메시야로 인식했기 때문에 이방의 여인으로서 예수님께 용기를 내어 나아와서 주 다윗의 자손이여 하고 외치고 있다. 이것만 봐도 이 이방여인의 믿음이 범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이방의 여인으로서 큰 용기를 내어 예수님께 나아오게 만든 그 첫 동인은 바로 다름 아닌 딸을 고치겠다는 일념, 딸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임을 알 수 있다. 이 사랑은 어떤 불편함, 천대나 무시, 자기애를 넘어서는 초월적인 사랑이다. 딸을 고쳐야겠다는 애끓는 마음과 그 사랑은 우연히 듣게 된 예수님의 소문에 이 여인이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고 그것은 이 여인을 예수님께 나아오게 만든 그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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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예수님 앞에 나왔는데 여인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너무 다 의외다. 아무리 이방의 여인이라도 이렇게 천대하고 막 대하실 수 있을까? 사랑의 예수님이 어떻게 저러실 수가 있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먼저 주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며 예수님께 흉악하게 귀신 들린 딸을 고쳐달라는 요청에 예수님은 본체 만체 하고 무시하고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외면하는데도 계속 이 여자는 예수님 우리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주세요. 예수님 딸을 고쳐주세요 하고 계속 소리를 치니 듣다 못한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 조용하라 하시든지 아니면 귀신을 쫓아주시든지 하셔서 여자를 눈앞에서 사라지게 해달라 요청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니.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만 보냄을 받았다." 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여자는 예수님께 나아와 절을 하며 간청한다. "주님, 한번만 도와 주십시오!" 눈물 나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 예수님의 대답은 어떠한가? "자기 자녀의 빵을 집어서, 개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못하다." 라고 말하시며 이방의 여인을 개 라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천대 받는 그 상황에 이 여인은 뭐라고 대답하였는가?
3. 부스러기 은혜 (27절)
인격모독처럼 보이는 예수님의 시험의 말씀에 이 이방여인은 주여 옳습니다! 라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는다. 그러면서 놀라운 믿음의 말로 예수님을 감동시키니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나를 개 취급하시면 나는 개 맞습니다. 그런데 개도 주인의 상 밑에 있다가 음식 부스러기를 던져 주면 받아먹지 않습니까 라고 하며 가장 겸손한 모습으로 예수님 앞에 엎드렸다. 그래서 잠언서 22장 4절에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신약 야고보서 4장 6절에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늘 겸손으로 주님께 나아가 재물과 영광과 생명과 은혜를 받는 귀하고 복된 분들이 다 되시라! 그러나 우리는 늘 자신을 내세우고 드러내려 하는 교만에 빠질 때가 있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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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외면과 무시에도 개들도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 하며 겸손한 모습으로 끝까지 인내하며 주님께 간청한 이 여인을 보시고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신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주님의 침묵도 외면도 무시도 모두 그 여인의 겸손과 믿음 끝까지 매달리는 그 큰 믿음을 보시기 위한 주님의 시험이었던 것이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는 이 응답의 말을 받자 마자 어떤 일이 있었는가? 예수님께서는 부스러기 은혜를 넘어서는 큰 응답을 주셨으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네 소원대로 된다는 예수님 말씀이 떨어지자 마자 그의 딸이 낫게 되었다! 그 상황에 대해 마가복음 7장 30절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니 다같이 합독하자!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이방여인의 딸을 살려야겠다는 그 애끓는 사랑과 주님 앞에서의 겸손 그리고 끝까지 매달리는 그 간청은 주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기적의 역사를 응답으로 받았다! 여러분의 삶에 기적의 응답을 원하시는가? 이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살려주시고 묶인 것을 풀어주시고 닫힌 것을 열어주실 한주간의 천국잔치를 준비하셨다. 살림의 은혜, 풀림의 역사라는 대 주제로 내일부터 한 주간 이어지는 특별새벽기도회와 사흘 밤 이어지는 밤 부흥회이다. 조금 힘드셔도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체면을 다 내려놓고 불편함을 이겨내며 가정과 자녀, 교회에 대한 그 애끓는 애정과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겸손하게 주님 앞으로 나오시라! 그리고 간절히 주님께 매달리시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때로부터 그 즉시 놀라운 복과 은혜와 응답의 복을 여러분에 더 해 주실것이다! 그 응답과 간증의 주인공들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