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복음! 다시 십자가! (36)                                                                    (2024. 09 08)
                                            그 때 그 산위에서 (누가복음 9:28-36)

유머) “포기하면 편하다”, “인생 한방! 로또 외엔 답이 없다!”라는 글귀를 도자기 공예에 적어 넣은 초등학생 이야기
뭔가 삶에 이런저런 굴곡과 사연이 있을 때 또 스트레스가 쌓일 때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것들을 해소하고 해결해 보려 하는데 그 중에 하나 여행을 가거나 등산을 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어느 날 제자들을 데리고 한 산에 오르셨는데 그 산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또 거기에 대해 증언하는 누가복음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 같이 듣자!

1. 산에 올라가사 (28절)
성경에는 수많은 산과 그 산에서 이루어진 일의 기록들이 있다. 첫 인간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그 삶을 시작했으니 창조 때부터 산과 사람은 뗄 수 없는 관계로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셨나 보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5-7장의 보석과 같은 말씀을 한 산에서 증거하셨기에 그 세장의 말씀을 산상보훈 이라 한다. 그리고 감람산에서 찬송하시고 또 승천도 하셨다. 그리고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시고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공생애도 산 이라는 공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화) 산을 오르는 이유에 대하여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산을 오른다”는 명언을 남긴 산악인의 이야기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이 말씀을 하신 후 라고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어떤 말씀일까? 오늘 본문의 말씀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영광스럽게 변하신 기록은 마태복음 17장 과 마가복음 9장 그리고 오늘의 본문은 누가복음 9장에 공통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4복음서 중에서 요한복음을 제외한 마태 마가 누가 복음 즉 공관복음서에 공통적으로 기록된 내용이다. 산 위에서 영광스럽게 변하신 기록 전에는 세 복음서 모두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거기에 이어 주어지는 예수님의 첫 번째 수난 예고의 말씀이 적혀 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 겪으실 것임을 예언한바 제자들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분위기가 가라앉은 채 한 주간 의 시간이 지난 어느날 예수님께서 12제자 가운데 예수님은 특별히 총애하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만을 데리고 한 산에 올라가셨다. 이 산이 오늘날의 어떤 산 인지는 정확히 기록하고 있지 않다. 마태복음 17장과 마가복음 9장의 병행본문에서는 이 산을 높은 산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높은 산이 어느 산인지에 대한 성서학자들의 견해는 크게 두 곳으로 집중되는데 첫 번째 산은 해발 588미터의 다볼산이다. 이 다볼산에 예수님의 산상변모후 제자들과 대화한곳이라 전해지는 곳에 오늘날의 산상변모교회가 세워져 있어 성지 순례객들의 필수코스 가 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많이 거론되는 곳은 해발 2,814 미터나 되는 헐몬산 즉 헤르몬산이다. 백두산의 높이가 2744미터 이니 백두산 보다 70 미터나 더 높은 산이다. 그러기에 이 헤르몬 산 정상에는 늘 만년설이 있다. 위치상으로도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었던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헤르몬산이 가깝고 두 복음서에서도 높은 산 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기에 실제 예수님께서 변화되신 변화산은 오늘날 성지순례객들이 찾는 다볼산 보다 헤르몬산일 확률이 높다는 주장을 하는 학자들이 많다. 오늘날 성경속의 시내산의 정확한 위치를 가지고도 왈가왈부 하는데 성경에 기록되지도 않은 산을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산에 왜 예수님이 오르셨는가?’에 대해 누가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으니 기도하시러 올랐다고 증언한다. 예수님께서 그 높은 산에 오르신 목적은 바로 기도하시러 올랐다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도 장소를 구분해서 기도하러 산에 오르셨는데 우리가 어찌 기도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새벽미명에 기도하셨던 주님, 밤이 맞도록 기도하신 주님, 40일을 금식하며 기도하셨던 주님, 한적한 곳을 찾아서 기도하셨던 주님, 산에 오르셔서 기도하셨던 주님 그 주님 그 예수 본받아 늘 기도로 주님께 나아가 큰 응답받는 승리의 기도자들이 다 되시길 간절히 축복한다.
예화) 기도해야 살고 기도해야 삶이 풀린다는 말씀을 되새기며 기도했던 “3인3색 특별한 밤”과 “특별새벽기도회” 이야기

2. 산 위에서 만난 이들 (29-30절)
예수님의 전 생애를 통해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 장면이 있다. 이것을 예수님의 생애의 5대 사건 이라 부르는데 그것은 ① 성육신 (Incarnation) ② 변모 (Transfiguration) ③ 십자가 고난 (Crucifixion) ④ 부활 (Resurrection) ⑤ 승천 (Ascension)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천국복음을 전하시다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셨다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또 사십여일 후에 승천하신 것을 예수님의 전생애의 가장 중요한 장면으로 꼽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바로 변화산에서 영광스럽게 변화 되신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그만큼 이 산상변모에는 큰 영적의미가 있다. 그래서 교회력에서도 사순절 직전 주일을 산상변모주일로 지킨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세 제자와 함께 오르셔서 간절히 기도하시기 시작했다. 그때 제자들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다가 이내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그때 예수님께서 계속 깊은 기도를 하실때에 갑자기 모습이 변화되면서 입고 계신 옷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밝은 흰빛을 띠며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예수님께서 하늘의 영광을 덧입어 용모가 변화되었던 때는 바로 기도하였던 때 임을 꼭 기억하시길 바란다.  그리고 입고 계시던 옷이 얼마나 하얘졌던지 마가복음 9장 3절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예수님의 모습이 영광스럽게 변화되시며 어떤 표백제나 세탁세제를 넣어도 얻을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순백색으로 예수님의 옷이 변하였다. 그렇게 놀랍게 변하신 예수님 곁에 갑자기 두 사람이 나타났는데 바로 모세와 엘리야였다. 모세와 엘리야는 어떤 사람들인가? 모세는 그의 무덤을 알 수 없고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승천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모세나 엘리야나 이 세상에 무덤이 없는 사람들이다. 또한 모세는 율법의 대표자이고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자로서 구약시대를 대표하는 두 사람이 변화산상에 나타나 예수님을 만나고 있다. 그때 모세와 엘리야가 변화산상에서 어떤 말씀을 나누었을까? 다름 아닌 이제 곧 임하게 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 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고 말씀은 증거하고 있다.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눅 9:31)”
여기서 별세라는 단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별세 라는 단어에는 헬라어 엑소도스(εξοδος)라는 단어가 쓰였다. 이 엑소도스 라는 말은 출발, 떠남, 나감 등의 뜻이 있다. 그래서 이 단어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떠나는 것을 출애굽을 표현 할때도 쓰인다. 본문에서는 일차적으로 세상을 떠난다는 별세의 의미가 있고 이차적으로는 모세가 출애굽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한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악에서 영생의 구원으로 이끄심을 나타낸다. 그렇다! 예수님은 별세하시기 위해 죽기 위해서 엑소도스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누구를 위해 죽으려 오셨나? 바로 저와 여러분, 바로 나를 위해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늘 기억하고 삶으로 그 은혜를 갚아나가는 예수님의 효자 효녀 그리고 참된 제자들 다 되시길 간절히 축복한다. 
예수님께서 산상에서 영광중에 변화되셔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다른 것도 아닌 임박한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 계실 때 제자들은 높은 산에 올라오며 지쳤는지 깊이 졸고 있었다. 그러다 두런두런 소리가 들리니 눈을 떠보니 예수님께서 놀랍게 변화되시고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서 계신 것이 아닌가? 그 신비한 장면에 말문이 막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모세와 엘리야가 떠나려고 할 때 갑자기 베드로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한다. 
예화) 일정하지 않고 시세에 따라 달라지는 값의 의미를 지닌 “뜬금”이라는 단어의 유래 이야기
베드로가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데 “주여 여기 있는게 너무 좋습니다. 산 밑의 세상이야 머리만 아프고 복잡한 일만 차고 넘치는데 예수님도 이렇게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계시고 모세님과 엘리야님까지 함께 계시니 더 이상 바랄게 뭐 있겠습니까? 그러니 이곳에 초막 셋을 짓고 하나는 예수님이 하나는 모세님이 하나는 엘리야님이 쓰시면 되잖습니까?” 라고 말하는데 이 말에 대해 말씀은 이렇게 증거한다. 베드로의 이 뜬금없는 소리에 대해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고 증언하고 있다.
예화) 적합한 말과 행동을 해야하는 것에 대한 내용을 담은 나태주 시인의 “너는 바보다”라는 시 이야기
베드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내뱉었던 초막 셋 이야기는 하나님의 세계와 그 현상에 대해 그리고 그분의 섭리와 이끄심에 대해 모든 것을 정확히 알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피조물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주님께 부름받은 12제자! 그 가운데서 특별히 택함 받은 세 제자, 그 가운데서도 수제자로 인정받으며 얼마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위대한 믿음의 고백을 했던 베드로도 갑작스레 직면한 창조주 하나님이 베푸신 경이로운 영적현상 앞에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며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3.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34-35절)
그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 쉐키나 라고 히브리어로 부르는 그 임재의 구름이 나타나 변화산상에 가득하여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를 감싸게 된다. 그 놀라운 하나님의 나타나심 현현 앞에서 제자들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때 그 구름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와 믿음을 담은 정수의 표현 이라면 산상변모 때에 하늘로부터 오는 음성은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확증과 증언이다. 그러니까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시고 예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실 구세주 로 사람에게도 인정받고 하나님께로 부터도 다시 한 번 확증을 받으신 것이다. 그러면서 들려오는 음성은 곧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라 하는 말씀이었다. 복잡한 산 밑에 내려가지 말고 초막 셋을 짓자든지 횡설수설하지 말고 너희는 나의 아들 예수의 말을 들으라 하는 하나님의 준엄하신 명령이다. 즉 주님의 말씀대로 따르라는 순종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렇게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진 하나님의 말씀이 그친 직후 이런 일이 생겼다고 36절은 증거한다.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위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영도자 인 모세도, 가장 탁월한 기적의 선지자였던 엘리야도 또 그들을 감추었던 구름도 다 그분만을 위한 조연이었고 셋트요, 배경이었음이 드러난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들이라 칭하시며 그의 말을 들으라며 순종을 요구하신 그 엄위하신 하나님의 음성 직후 모든 것들은 다 사라지고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고 말씀은 증거한다.
그렇다! 우리의 삶에 여러 가지 풍파와 상처, 눈물, 가슴앓이, 또 사람과의 관계에서 서로 주고 받는 생채기 등, 그리고 우리의 삶의 여러 가지 기도제목과 당면한 문제들 모두 오직 한분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조연이요, 엑스트라 이다. 이것 저것 다 지나가고 모두 흘러간 뒤에 우리에게 남는 것은 오직 예수 그분 뿐이다. 그러기에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는 말씀을 늘 기억하며 오직 예수 그분 붙들고 위로와 힘 얻으며 그분의 길을 따라가는 복된 자녀들 다 되시길 간절히 축복한다.
예화) “만성 골수성 백혈병”의 진단을 받고도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여 결혼과 임신의 은혜를 경험한 소진영 간사 이야기 

그렇다! 변화산상에서 모세도 엘리야도 구름도 베드로의 말도 다 스쳐가고 오직 예수만 보인 것처럼 우리의 삶 가운데 결국 우리가 바라보고 결국 우리가 붙들어야 하고 결국 우리 곁에 남는 분은 오직 예수뿐이다! 그 예수 바라보고 인생 길 날마다 승리하며 그 예수 위해 삶을 살아가는 귀하고 복된 주의 제자와 자녀들 다 되시길 간절히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