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복음! 다시 십자가! (38)
인도하심 (창세기 19:2-8, 14-17)
유머) 조퇴를 잘 시켜주기로 소문난 한 고등학교 선생님 이야기
오늘은 태양이 적도 위에 위치하여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고 내일 부터는 밤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면서 가을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절기인 추분 이다. 조금 있으면 이제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불면서 논에서는 가을걷이 가 시작되고 거리에는 낙엽이 지기 시작할 것이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우리의 삶도 결산하고 추수할 때가 있음을 기억하고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창세기의 말씀을 통해 허락하신 시간 가운데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도록 하자.
1. 선택(選擇) 과 결과(結果) (4절)
오늘 이야기의 배경은 롯이 소돔 지역에 머물고 있는 것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롯은 창세기 11장에 처음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조카이다. 롯이 소돔에 거주하게 된 배경 이야기는 창세기 13장에 기록이 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나와서 조카 롯과 동행하여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땅으로 올라갈 때에 “가축과 은 금”이 풍부하였다고 말씀은 증거하고 있다. 그러면서 바로 아브라함이 벧엘과 아이사이 에 하나님께 제사 지내려 단을 쌓고 처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곳에 도착하게 되었음을 증거한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위에 하나님께서 큰 복을 더해 주셨음을 말씀은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롯에 대해서는 창세기 13장 5절에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다.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롯은 공통적으로 많은 가축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아브라함에게는 롯에게 없는 은금과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신앙이 있었고 롯에게는 자신의 가족들이 거주할 장막만이 있었음을 말씀은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삶을 통해 진정으로 하나님을 바라고 예배하는 예배자인 아브라함과 하나님을 알긴 알지만 자신의 재산증식과 가족의 안위를 일순위로 생각하며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일은 중시하지 않았던 롯의 모습이 극적으로 대조되며 아브라함과 롯의 삶이 달라지게 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아브라함과 롯이 각각 소유한 가축들이 많아져서 목자들이 서로 자기들의 가축에 물과 좋은 풀을 먹이겠다며 다투는 일들이 생겨나자 어느 날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불러 ‘우리가 한 골육인데 이렇게 다퉈서는 안되겠구나.. 그러니 이제 우리 서로 떨어져서 각자 목축을 하며 살도록 하자꾸나’하고 제안하며 어디로 갈 것인지 그 선택권을 롯에게 먼저 허락하며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 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고 말한다. 롯이 눈을 들어 요단강 쪽을 바라보니 물이 가득하고 땅이 비옥한 것이 에덴동산처럼 또 이집트 나일강 유역의 삼각주처럼 너무 좋아 보였다. 그래서 롯은 소돔 쪽으로 떠나고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머물게 되었다. 롯의 이런 조카로서 삼촌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고 자신의 욕심과 안목의 정욕을 따른 선택이 후일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는지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예화) 젊었을 때의 선택으로 한사람은 사형수가 되고, 한 사람은 미국의 22대 대통령이 된 선택의 중요성을 알리는 이야기
예화) 선택의 중요성을 알리는 “굼을 키우는 교실밖 이야기” 책 이야기
예화)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라는 문구로 선택의 중요성을 알린 금성사 TV광고 이야기
그렇다! 우리 앞에 놓인 길은 딱 두 가지 길이다. 하나는 생명과 복의 길/ 하나는 사망과 저주의 길이다. 선택의 순간에 좁고 힘든 길이지만 예수의 길, 생명과 복의 길을 택하여 응답과 영생을 선물로 받는 귀한 주의 자녀들이 꼭 되시라!
2. 무례(無禮)와 폭력(暴力) (5절)
롯은 그렇게 소돔에 정착하였다. 오늘 본문의 앞부분인 1절에는 날이 저물 때에 롯이 소돔성문에 앉아 있다가 두 천사가 성문에 들어옴을 보고 그들을 영접했다고 기록한다. 날이 저물 때 천사 둘이 소돔에 들어왔다 함은 소돔의 영적 분위기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어두움이 깔리기 시작하는 그 시점에 천사들은 소돔에 들어왔다. 이전에 핸드폰이 없던 시절 도심의 어떤 장소나 상징물은 사람들의 약속 장소였다. 전국에 산재했던 약속다방, 서울 신촌의 독수리다방, 음악카페 쎄시봉이나 대구 중파나 백화점 앞 중앙무대, 광주의 충파 나 우체국 앞 등은 추억의 약속장소 이지 않았는가? 마찬가지로 고대시대의 성문은 사업을 위한 거래, 판결을 내리는 장소. 또 사람들이 만나는 약속장소와 사교의 장으로서 여러 역할들을 감당했다. 그러기에 롯이 성문 앞에 앉아 있었다 함은 롯이 소돔사회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잘 뿌리 내렸음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어떤 주석학자들은 롯이 당대의 재판장소인 성문 앞에 있었고 또 두 천사를 맞이한 이후 생긴 소돔 거주민과의 실랑이 과정에서 나온 그들의 말을 통해 롯이 소돔지역의 사회지도층 인사가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두 천사가 소돔을 방문하여 롯의 집에 들어갔을 때 소돔 거주민들은 그 천사들을 주목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 천사들이 인간으로 변한 용모가 수려했나 보다. 그래서 소돔의 남자들이 젊은이들부터 노인들까지 각처에서 모여 롯의 집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폭도로 돌변해 잠시 전 롯의 집에 들어간 천사들을 자신들에게 넘기라고 협박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여기서 “상관하리라”는 말에 쓰인 히브리 원어는 “알다”라는 뜻에서 시작하여 성적으로 남녀가 “알다”라는 뜻으로 까지 발전된 “야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말인 “웨네드아”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그러기에 여기서 상관한다 하는 말은 곧 동성애를 하겠다는 말을 의미한다. 혹자들은 성경의 많은 부분(사 1:10, 렘 23:14, 겔 16:49, 벧후 2:6-7, 유 1:7)에서 소돔의 죄악을 명시하고 있는데 남색이나 동성애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봐서 이것은 집단폭행이지 동성애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천사들을 끌어내라는 소돔의 폭도들의 요청에 롯이 급하게 남자를 알지 못하는 두 딸을 취하라는 19장 8절의 대처를 볼 때 소돔의 거주민들이 롯에게 천사들을 내어달라 요구한 것은 바로 성적인 것과 관련이 있으며 이것은 동성애임이 명확하다. 그러기에 영어표현 가운데 소돔 이라는 도시 명에서 유래한 소도미(Sodomy)라는 단어가 “남색”이라는 뜻으로 쓰일 만큼 소돔의 여러 죄악 중 동성애는 대표적인 죄악의 하나이다. 고대의 풍습에 손님을 극진히 높이고 섬겨야 하는 풍습이 있어 롯이 그대로 집에 맞아들인 손님인 천사들을 보호하는 것은 이해가 되나 그 대안으로 내 놓은 정혼만 하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처녀인 두 딸을 취하라 말하는 롯의 행동은 참 어처구니없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죄악이 관영한 소돔에 살며 죄악을 가까이 하다 그곳의 풍습에 물들어 버린 롯의 안타까운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처음 아브라함과 롯이 분가할 때 물이 넉넉하여 에덴동산 같고 애굽 나일강 유역처럼 풍요롭게 보였던 소돔, 그곳은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며 죄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드는 죄악의 도시였던 것이다. 죄악을 가까이 하면 죄에 물들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주의 자녀 된 우리는 늘 스스로의 모습을 말씀 앞에 되돌아보며 죄악과 짝하다 멸망당하지 않도록 날마다 노력해야 한다. 늘 자신을 돌아보고 죄악을 늘 멀리하고 행동과 입술을 다스려 성도의 마땅한 바를 행하여 하나님께 칭찬 듣는 귀한 자녀들이 다 되시라!
3. 인도(引導) 하심 (16-17절)
소돔의 거주민들이 동성애를 원하는 폭도로 돌변하여 롯의 집에 들어간 두 천사를 내어 놓으라 할 때 상황이 긴박하게 흘러가자 천사는 적극적으로 롯을 구원하기 위한 행동에 나선다. 먼저는 롯이 문 앞에서서 그러지 마시고 차라리 딸들을 내어줄테니 알아서 하시라 며 폭도들을 달래고 있을 때 오히려 폭도들은 비키라며 롯을 밀치고 문을 부수려고 했다. 그 급박한 순간에 천사들이 급히 손을 내밀어 롯을 그 상황에서 구해내고 문을 닫고 폭도들의 눈을 멀게 만들어 버린다. 위험한 순간에 하나님의 본격적인 구원행동, 개입이 시작되신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소돔은 멸망하게 될 것이니 예비사위들을 포함한 모든 가족들을 데리고 성 밖으로 나가라고 말한다. 롯은 천사에게 들은 그 급박한 소식을 사위들에게 전했으나 사위들은 “아니 장인어른 치매 걸리셨어요?” 하며 농담으로 여기고 말았다. 그때 다시 천사들은 사위를 제외하고 아내와 두 딸만이라도 데리고 빨리 소돔을 떠나라고 재촉했다고 말씀은 기록한다. 그런데 소돔에서 이룬 것이 많은 롯은 주저주저 하며 천사의 말을 쉽게 따르지 못한다. 그때 천사는 롯과 아내와 두 딸 즉 네 사람의 손을 급히 잡고 성 밖으로 인도하였다. 천사는 두 명인데 네 사람을 끌고 성 밖으로 이끌어내야 했으니 한손에는 롯을 잡고 한손에는 아내를 잡고 또 다른 천사는 왼손으로 큰 딸을 잡고 오른 손으로는 작은 딸을 잡고 지체하는 그들을 이끌고 성 밖으로 데리고 나갔던 것이다. 롯의 아내가 그 손을 놓고 미련에 젖어 뒤를 돌아보는 순간 소금기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롯과 그의 가족들은 소돔에서 이루었던 것들, 집과 물질과 지위, 또 결혼과 미래에 대한 부질없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은 지체하고 머뭇거리고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세상적인 것들이 롯과 가족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소돔에 있느냐 그곳을 벗어나느냐 하는 것은 단순히 이룩한 것들 가지고 있는 것들을 유지할 수 있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넘어 죽느냐 사느냐 생명이냐 사망이냐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그러기에 천사는 17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는가?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급박하게 롯과 그 가족들의 손을 이끌고 소돔 밖으로 인도하여 피신시켜 주신 것처럼 오늘날도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를 삶의 위기 가운데 지키시고 인도하여 주신다.
주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해 주신다 하셨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을 믿으며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삶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해 주실 것을 늘 간구하며 인생의 길을 주님 손 붙들고 걸어 나가자! 그럴 때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가족들을 물로 인한 심판인 홍수에서 살려주신 것처럼 롯과 그 가족들을 불로인한 심판인 유황비의 멸망을 피해 살려주신 것처럼 우리를 인도해주심으로 살려주실 것이다. 그럴 때에 우리는 시편 23편 1~3절의 고백을 하게 될 것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이끌려 주님 손 붙들고 생명의 길을 걸어가 늘 승리하는 주의 자녀들이 다 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