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오실 때까지 고전 11:22-34
초대교회 당시에 가장 바쁜 사람이 있었다고 하면 누구였을까? 바로 사도바울이었을 것이다. 사도바울은 뒤늦게 회심하여 사도로 부름을 받았지만, 어느 사도보다도 활발하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서 울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며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자.
1. 무슨 말을 하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이들에게 불의 혀 같은 성령님이 임재하신 이후로 복음이 불일 듯 일어나 산지사방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그 때에 복음을 받은 이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특별히 예수님이 부활하신 안식후 첫날 오늘날의 주일날 모이기 시작하며 교회가 생겨나기 시작했으니 우리는 그 시대의 자생적 교회를 기독교 역사상 첫 교회라 하여 초대교회(The Early Church) 라 부른다. 초대교회의 성찬은 오늘날의애찬(愛餐;Agape-Meal; love feast)의 형태로 시작되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서로 음식을 가지고 와서 나누기도 하고 오늘날의 심방처럼 이집 저집을 옮겨 다니며 함께 음식을 나누며 교제하며 예수님과 과 제자들의 마지막 식사를 회상했던 것이다. 고린도 교회의 애찬을 겸한 성찬이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잘 유지가 되었으면 좋았으련만 음식을 가져와서 애찬식으로 나누는 성찬문화가 고린도 교회내에 파당, 분쟁, 갈등 거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것을 사도바울이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바울은 이렇게 분쟁과 파당 이야기를 하면서 이 분쟁과 파당의 원인이 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잘못된 성찬 문화에 대해 지적한다. 고린도교회 내에서 각자 음식을 가져와 애찬을 하는 것으로 성찬을 대신 하다보니 부자들은 일찍 비싼 고급 음식들을 가져왔다가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오후 늦게나 밤에 교회에 모일수 있는 가난한 자나 노예계층 사람들에게는 나눠주지 않고 자신들이 먼저 먹어 버리고 만 것이다. 또 거기에 포도주를 곁들어 음식을 먹다보니 하루 종일 힘겹게 일을 하고 저녁때 교회에 간단한 음식을 들고온 가난한 성도들은 부요한 성도들이 낮부터 와서 좋은 음식을 자기들끼리 배불리 먹고 심지어 거나하게 취해 있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주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시고 행하신 성찬의 본 의미를 망각하고 오히려 분쟁과 파당의 단초가 되어버린 이 성찬에 대해 사도 바울은 그 본질과 의미를 바로 잡을 필요를 느꼈다.
2.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고린도 전서에 기록된 바울의 증언에 의하면 성찬은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가진 마지막 만찬이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떡과 잔을 나누시며 식사를 하시던 그 시간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한 음모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고 예수님은 불과 몇 시간 뒤면 체포되어 당하실 수치와 십자가의 고난을 다 알고 계셨다. 제자들은 몰랐으나 예수님의 마음속에서는 마치 사형수가 마지막 식사를 하는 심정이시지 않았을까?
(예화1: 사형수들의 마지막 식사)
예수님께서 누구보다고 사랑하고 서로 의지했던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나누실 때 고난을 앞두신 그분의 마음은 두렵고 무거웠을 것이다. 찢기고 부서진 빵은 예수님의 찢기신 몸이고 붉은 포도주는 예수님의 흘리신 피를 상징하는 것임을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찬을 대할 때 무엇보다도 우리를 위해 찢기신 주님의 몸과 흘리신 주님의 피를 깊이 묵상하며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신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 성만찬에는 예수님의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에 근거한 더 깊은 영적의미들이 있다. 예를 들어 1982년 전 세계 신학자들이 페루의 수도 리마에 모여 논의후 제정한 세례와 성만찬 그리고 교회의 직제에 대해 정의한 문서 에서도 성만찬에 대해 다음과 같이 5개의 정의를 하였다.
1.성부께 드리는 감사로서의 성만찬 (The Eucharist as Thanksgiving to the Father)
2.그리스도에 대한 기억의 재현으로서의 성만찬 (The Eucharist as Anamnesis of Memorial of Christ)
3.성령님의 초대로서의 성만찬 (The Eucharist as Invocation of the Spirit)
4. 성도의 교제로서의 성만찬 (The Eucharist as Communion of the Faithful)
5. 하나님 나라의 식사로서 성만찬 ( (The Eucharist as Meal of the Kingdom)
이처럼 성찬은 깊은 영적 의미들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깊은 영적의미가 있는 성찬은 단순히 성도의 교제나 교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드러내는 그런 차원의 예식, 또는 일 년에 몇 번 경험하는 행사 같은 것으로 대해서는 안되며 거룩하고 엄숙하며 경건히 주님의 사랑 가운데로 들어가는 예식 이어야 한다.
3.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성찬을 무분별하게 대함으로 말미암아 바울은 합당하지 않게 성찬의 떡과 잔을 대하는 것은 주님의 몸과 피에 대해 죄를 짓는 것이라 경고한다. 그러면서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후에야 성찬의 떡과 잔을 대할 것을 말한다. 이것은 먼저 자신이 주님의 살과 피를 접할만큼 그분의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심의 은혜에 합당한 사람인지 자신을 되돌아 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또한 다른 성도들과의 관계에 있어 성찬을 대할만큼 부끄럽지 않은 자 인지 스스로를 되돌아 보라는 뜻이다. 우리는 주님의 살과 피를 대하기에 합당한 자인가? 주님을 진정으로 믿고 주님의 사랑을 받은자처럼 진정한 성도 답게 살아가고 있는가? 고린도 교회의 가진자처럼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나를 드러내려 노력하다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은가? 주님의 한 몸과 피를 받은 형제와 자매들을 비방하고 반목하고 질시하며 주님의 몸과 주님의 피 앞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기에 우리 주님 산상보훈의 말씀 가운데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예화2: 토론토 빌라델리아 김경진 목사의 성찬고백)
오늘 거룩한 성찬을 받은 주의 자녀 여러분, 오늘 받으신 성찬이 아무런 생각없이 주니까 마셨고 주니까 받은 성찬 이었다면 다음 송구영신 예배 때 이 성찬을 대하실때는 자신을 돌아볼 때 부끄러움이 없는 주의 자녀들이 다 되시길, 그런 삶과 신앙생활을 하시는 주인공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주님 앞에 설 그 날까지 주님 손 붙들고 이 길을 걸으며 주님의 몸, 주님의 피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 또 다시 성찬을 접할때에는 당당한 모습으로 그 상을 접하는 주의 자녀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