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 우물가 (요 4:6-9; 14-24)
예화) 대학교에 다니는 한 청년 형제의 이야기.
오늘 예수님 과 한 여인이 주고받는 대화는 내용을 깊이 묵상하지 않으면 마치 이이야기의 제목의 오타같은 동문서답 같은 대화가 오간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실상 그 속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깊은 은혜가 담겨져 있으니 오늘도 요한복음 4장의 말씀을 통해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받자!
1. 조우(遭遇)
오늘 예수님께서 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 유대나라의 지리를 알 필요가 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지역은 로마의 지배하에서 남 유대, 북쪽의 갈릴리, 중간의 사마리아로 나누어져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 남쪽 전라도에서 서울 경기지역으로 올라오려면 충청도를 거쳐야 하듯이 남쪽 유다에서 북쪽 갈릴리 지역으로 가려면 중간지역인 사마리아를 거쳐가는 것이 대략 사흘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 유대사람들은 의식적으로 중간 사마리아 지역을 피해서 요단강 동편으로 우회해서 갈릴리 지방으로 가곤했다.
이렇게 요단강 동편 베뢰아 지방으로 우회해서 갈릴리지방으로 가게 되면 그 시간이 2배나 더 소요되었다 한다. 주전 721년경 앗수르에 의해 북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래로 앗수르인들이 사마리아 지역에 이주해 와서 유대사람들과 통혼함으로 앗수르와 유대인의 혼혈인들이 생겨나게 된다. 순수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멸망시킨 앗수르의 피를 받은 이 혼혈인들인 사마리아인들을 싫어하게 된다. 그러면서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다윗왕가의 역사가 기록된 오늘날 구약성경의 역사서, 선지서 등을 거부하고 모세오경 만을 자신들의 신앙의 경전으로 인정하였다. 그리고 예루살렘 으로의 참배와 제사를 방해하기 위해 그리심산에 그들만의 성전을 세우고 거기에서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그러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 스룹바벨이 예루살렘 성전을 재 건축하려 했을 때 사마리아 사람들은 성전재건에 참여를 원하였으나 유대인들을 그것을 거부하고 말았고 그것에 앙심을 품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계속해서 성전재건을 방해하는 악한일을 행하고 말았다.
요한은 유대를 떠나사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로 지나가시더라 라고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라는 표현을 썼을까? 이 부분은 유대에서 다시 갈릴리로 돌아가실때 반드시 사마리아를 통과해야만 했다로 번역할수 있다. 예수님께서 굳이 제자들을 데리고 사람 취급도 하지 않을 만큼 싫어하는 사마리아인들의 지역을 통과하셔야만 했던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여러분에게는 지금 어떤 사마리아가 있으신가? 불편한 가족, 불편한 사람, 보고 싶지 않은 사람, 만나고 싶지 않은 그룹, 피해가고 싶은 지역이 있으신가? 사마리아로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고 그 땅으로 제자들을 이끌고 앞장서 들어가신 주님 손붙들고 여러분의 사마리아로 들어가 그 사마리아를 부둥켜 안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나누시는 참 예수의 사람, 예수의 제자들이 다 되시라!
2. 사마리아 여자
예수님께서 그렇게 큰 사명을 품으시고 사마리아 땅으로 들어가셨다. 그때 예수님이 수가성의 야곱의 우물가를 몇 키로 앞두고 있을 즈음 인근의 한 사마리아인들의 마을에서 한 여인이 물동이를 챙기기 시작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쪽에서 여인은 다른 쪽에서 그 우물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한다. 그때 야곱의 우물가에 당도할 무렵 육신을 가지신 예수님은 장거리를 제대로 요기도 못 하시고 걸어왔기 때문에 시장도 하시며 피곤함을 느끼셨다. 예수님은 참사람이시며 참 하나님이셨기로 우리처럼 피곤함도 느끼시고 배고픔도 느끼시고 목마름도 느끼시고 주무시기도 하셨다.
육신의 피로에 지친 예수님이 우물곁에 앉아 계실 때 삶의 피로에 지친 한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을 찾아온다. 그때 제자들은 점심 먹거리를 사러 인근 마을을 찾아 들어갔고 예수님은 홀로 남으셔서 그 여인을 기다리고 계셨다. 만일 예수님과 제자들 십 여명이 무리로 우물가에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모여 있었다면 아마 이 여인은 예수님 일행 이 우물가를 떠나기만 먼발치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먹을 것을 사 오라는 이유로 그 자리를 피하게 만드셨다. 예수님께서 홀로 우물가에 앉아 계신 이 모습은 오직 그 사마리아 여인 한 사람을 위한 무대였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 야곱의 우물가에서 한 한 사마리아 아줌마, 그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셨을 때의 시간은 여섯 시쯤이었다고 말씀은 기록한다. 로마의 시간으로는 오전 6시나 오후 6시, 유대의 시간으로는 정오 12시를 말한다. 대체로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른 사람들이 활동하지 않는 한낮 더운 시간에 여인이 물을 뜨러 왔으리라 추정하여 정오 12시 유대의 시간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여인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한낮에 사람들이 활동하지 않는 시간에 물을 뜨러 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사는 남자와는 결혼도 하지 않고 동거만 하고 있는 그런 여인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개방적인 현대 사회에서도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뒷담화에 오를 그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여인이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스러운 개인사는 어떻게 해야 드러나게 되었을까?
예수님께서 우물가에 앉아계실 때 물을 뜨러 온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하고 말하셨다. 우물가라는 동일 공간에서 물이라는 공통의 주제를 가지고 예수님과 여인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예수님이 주시는 그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되고 그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 하니 그 말에 혹한 그 여자가 예수님께 주여, 라는 존대어를 쓰며 그런 물이 있다면 나에게도 주어서 목마르지 않고 또 이렇게 한낮에 고생하며 물 길으러 오지 않게 해 달라는 요청을 한다.
그때 예수님께서 갑자기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말씀하신다! 그 여인의 아킬레스건과 같은 남편이야기를 하니 순간 당황한 여인은 이렇게 둘러댄다. “저는 남편이 없는데요” 그랬더니 예수님께서는 한술 더 떠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래,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맞구나!” 순간 그 사마리아 여인마음이 어떠했을까? 나의 가장 감추고 싶었던 그 약점, 그 부끄러운 상처를 그냥 액면 그대로를 노출시키는 저 생면부지의 무례한 유대 남자는 누구인가? 그 난감한 상황 가운데 이 여인은 당혹스러운 상황의 전환을 위해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라고 하며 예배의 장소문제로 화제를 바꾼다.
남편 다섯을 거치며 온갖 상처를 온몸과 마음으로 다 받았던 그 여인, 지금 사는 남자는 남편도 아닌 그 상황 가운데 그래도 살아보리라 다짐하며 한낮의 뙤약볕을 뚫고 구슬땀을 흘리며 우물을 찾아갔던 그 여인을 만나 그녀의 아픔을 건드려 너의 모든 것을 내가 아노라! 하며 자신을 드러내셨던 그 주님은 여러분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 아픔도 눈물도 기도의 이유도 힘들어하며 가슴앓이 하는 그 이유를 주님은 알고 계신다! 그러기에 그 주님, 그 예수를 만나야 산다! )
이 천 년 전 사마리아 여인을 수가성 우물가에서 만나주신 그 주님, 그 주님이 우리의 삶의 우물가에 찾아와 주신다! 그 주님을 만나러 가시라! 그리고 그 주님을 만나시라! 그러면 여러분의 상처가 회복되고 삶의 문제가 해결되며 기도에 응답의 문이 열리게 될 것이다. 삶의 우물가에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그 주님을 만나는 복의 주인공들 다 되시길 간절히 축복한다!
3. 그리스도가 아니냐
처음에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본 그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을 자신과 같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하기도 싫어하는 유대인 남자의 한사람으로 인식한다. 그 다음에 생수이야기를 하다가 다섯 전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깜짝 놀라서 유대인 으로 여겼던 호칭이 주여 로 변화되었다가 선지자라 바뀌었다. 여기서 말하는 주는 구세주로서의 주님이 아니라 우리 말의 선생님 정도에 해당하는 그런 표현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에 대한 여자의 인식이 변함에 따라 여자의 표현이 유대인에서 주로 또 선지자로 점점 변화됨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예배에 대해서 이야기 하다 이 여인은 급기야 자신이 우물에 온 원 목적인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뛰어가 그동안 피해다녔던 사람들 앞에 서서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증거한다. 그 여인의 말을 듣고 반신반의했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아와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여인의 성읍에 들어가 이틀을 더 유하셨다. 그때 사람들은 이구동성에게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고 말씀은 기록하고 있다. 그다지 만나고 싶지 않은 한 유대인 남자에서 세상의 구주로 까지 발전하게 된 그 여인과 사마리아 사람들의 놀라운 변화를 본다. 여러분에게 있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여러분에게 한 유대인 남자에 불과한가? 좋은 말로 우리를 격려해주시는 선생님이신가? 아니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위대한 선지자 이신가? 여러분의 삶에 예수님이 삶의 주인이요, 메시야요, 그리스도요, 세상의 구주로 온전히 자리잡게 되시길 간절히 축복한다.
그러면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에게 찾아오셔서 그의 상처를 싸메어주시고 회복시켜 주신 주님께서 우리의 삶의 우물가에도 찾아오셔서 여러분의 마음과 육신의 상처와 질고를 싸메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며 복과 은혜로 가득채워주시게 될 것이다. 그 은혜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길 간절히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