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 (눅14:15-24)

예화) 독감 예방주사 이야기.
오늘 본문은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초대해서 그분의 가르침을 받는 것을 배경으로 그 이야기가 전개된다. 오늘도 누가복음 14장 말씀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 

1. 착각
 사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생애 중에 음식을 드시거나 아니면 음식과 관련된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한 내용이 많다. 그 중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가 모두 13번이나 될 정도로 누가는 예수님을 음식과 관련하여 잘 묘사하였다. 
 예수님이 사람들과 함께 한 식사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당시 이스라엘과 그 주변세계, 즉 대근동 지역의 식탁은 작은 빵 과 치즈, 무화과 말린 것 등을 포도주와 함께 나누는 것이 식탁문화였다. 예수님이 제자들 또는 사람들과 한 식탁의 교제는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이후나 아니면 주님 재림 하신 후에 베풀어진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맛보게 하는 기쁨의 자리였다. 
 세 번의 바리새인과 식사 기록 가운데 안식일에 바리새인의 집에 그것도 지도자의 집에 갔다고 기록된 것은 14장 1절이 유일하다. 바리새인과 예수님이 함께 복음서의 기록에 나오면서 그나마 좋은 이야기가 오간적은 요한복음 3장의 니고데모의 이야기 외에는 없는데 그런 좋지 못한 바리새인과의 만남 가운데서도 바리새인과 안식일이 함께 나오면 항상 그 상황에서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오며 바리새인과 당시 유대나라의 상류층들이 예수님에 대해 음해하고 생트집 잡는 모습들이 나온다. 그러기에 14장 1절에도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라는 표현이 나온다. 
 안식일에 한 바리새인 고위층의 집에 예수님께서 식사하러 들어가셨는데 바리새인들이 예의주시하며 지켜보고 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먼저 수종병 든 사람을 고쳐주시고 그 자리에 청함을 받은자들이 상석에 앉는 것을 보시고 자기를 낮추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함을 혼인잔치 비유를 통해 말씀하신다. 그렇게 상석에 앉은자들을 예수님께서 비유로 점잖게 가르치시니 분위기가 좀 어색해졌을 것 아닌가? 그 상황가운데 한 바리새인이 분위기 전환을 위해 돌발적으로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자는 복되도다” 하면서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아브라함때부터 택함 받은 선민으로서 당연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구원과 복을 받게 될 것 이라고 말을 한다. 그의 말은 그만의 착각이었고 과신이었다. 이 말에 대해 예수님께서 또 다른 잔치비유를 말씀하심으로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

2.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어떤 사람이 잔치를 하려 하는데 그 잔치를 큰 잔치라 표현하고 있다. 큰 잔치를 주관하고 그 잔치에 대해 알리는 종이 있는 것으로 봐서 이 사람은 큰 부자이다. 이 사람은 먼저 언제 잔치가 있을 것인지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하여 참석할 것을 확인받았다. 
 예수님 당시 유대나라의 잔치 초청이 이루어졌다. 예수님의 비유속의 부자는 큰 잔치를 주관하여 많은 사람에게 잔치에 대해 알리면서 참석여부를 알려달라 했고 참석하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답을 했다. 그러다 실제 그 잔치 할 시간이 되어서 종을 보내서 잔치를 위해 모든 것이 준비되었으니 이제 잔치에 오라고 연락을 했다. 그러자 처음에는 참석하겠다고 확인된 사람들이 가운데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잔치에 참석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큰 잔치의 초청을 거부하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18-20절의 표현은 독특한 한 표현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말은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라는 표현이다. 이 말의 헬라어 원어를 직역하면 ‘그러자 한 사람으로부터 모든 자들이 사양하기 시작하였다’라는 말이다. 즉 오지 못하는 세사람의 케이스가 등장하긴 하지만 이 사람들은 대표적인 경우이지 실제로 처음에 오기로 약속한 사람들이 마치 자기들끼리 짠 듯이 한꺼번에 오지 못하겠다 하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잔치 주최 측의 처지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잔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음식을 준비하였겠는가? 그런데 갑자기 요즘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표현으로 오기로 한 손님들이 전부 노쇼를 한다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첫 번째 사람은 밭을 샀기 때문에 한 번 둘러보러 가야겠다고 하고 두 번째 사람은 소 다섯겨리 즉 열 마리를 샀기 때문에 그것들이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시험하러 가야겠다며 나를 양해하도록 하시오 라고 이해를 구한다. 그런데 마지막 사람은 이해도 구하지 않고 당당히 자신은 장가 들었기 때문에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라고 강하게 이야기한다. 
 먼저 예수님의 이 잔치 비유에서 잔치에 오겠다고 선약해놓고 정작 잔치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오지 않는 이들은 먼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으면서도 정작 메시아를 눈앞에 두고도 그분을 메시아로 인식하지 못하고 받아들지 못하며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유대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의 어리석은 행위를 지적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상황 가운데 한 부자가 주관하는 잔치로의 초대는 어떤 의미인가? 이는 곧 예수님으로의 초대, 구원으로의 초대를 말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비유에 대해 풀이해주시는 24절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다. 처음 예수님께서 이 큰 잔치의 비유를 말씀하셨을 때는 어떤 사람이 주관하는 큰 잔치라 표현하셨다가 마지막에서는 내 잔치라고 정확히 말씀해 주셨다. 
 이 잔치의 자리는 주님이 주관하시는 은혜와 구원의 잔치이다! 그 자리로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고 또 지금도 부르고 계신다! 성경전체를 통틀어 하나님께로 돌이키라, 나아오라, 주님께로 오라는 표현들이 무려 1900번이나 나온다 한다. 이 놀라운 구원의 초청에 우리는 또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로 그것을 외면하며 죽어가고 있다.
  
3. 내 집을 채우라!
 이 말씀 가운데 강권(强勸)하여 라는 말은 내키지 않은 것을 억지로 권함 이라는 한자어 강권을 가져다 쓴 표현이다. 그런데 강권이라는 말로 해석된 헬라어 아낭카손 이라는 말은 신약성경에는 9번 나오는 표현으로서 강제로 ~ 하게 하다 라는 의미와 더불어 간곡하게 청하다, 재촉하다 라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간곡하게 청하고 노력을 하고 또 억지로라도 데리고 오든지 최대한 노력을 해서 내 집을 채우라는 주님의 명령이 드러나는 말씀이다. 
 주님께서는 영생으로 인도하는 천국잔치를 배설하시고 우리에게 그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사람들을 노력해서 데리고 오라 말씀하신다. 이것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이 천국에 가느냐 지옥에 가느냐 영생에 이르느냐 영벌에 들어가느냐는 죽고 사는 문제가 달려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고 강권하여 주님 앞으로 영혼들을 데리고 나와야 한다. 그것이 결실이 있든지 없든지 그것은 주님 손에 맡기고 그러한 마음으로 결심하고 행하고 노력하는 그런 실천을 주님께서 귀히 여기심을 기억하시길 바란다!
 사랑하는 여러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으시는가? 그분이 우리를 위해 천국을 예비해놓고 계심을 믿으시는가? 그렇다면 그 좋은 천국에 우리 혼자 가면 되겠는가? 여러분의 사랑하는 남편, 아내,  자녀들과 형제 들! 여러분의 목장에서 신앙의 방학을 하고 있는 잃은 양들, 그리고 구원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많은 영혼들에게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오늘도 말씀하시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그들을 데려다 이 좋은 예수 만나게 하고 또 천국시민권 받게 하는 복된 일을 이제 다시 시작하시길 간절히 바란다! 
 살면 전도 죽으면 천국! 결과는 주님께 맡기고 복음을 전하려 하고 또 전하고 있는 여러분의 귀한 모습을 주님께서는 기뻐하시고 그런 분들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말씀해 주시며 영생의 복과 은혜와 이 땅에 응답의 복으로 함께 해 주실것이다! 그 복과 은혜를 받아누리시는 귀한 주의 자녀들이 다 되시길 간절히 축원한다!